뜬금없는 자랑 같지만 우리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은 편이다. 어머니 당신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일을 즐긴다. 이 사랑이 십수 년간 계속돼 온 일이다 보니 그런 일들이 나에겐 익숙했었다. 그런데 자취를 시작하고 타지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불규칙한 식습관, 맛과 영양이 떨어지는 식단으로 생긴 크고 작은 건강상의 문제는 물론, 어머니의 사랑을 매일 체감하지 못하니 정신적으로 지치게 된다. 가끔 자취방을 떠나 집에 내려가면, 제철에 맞는 식재료로 푸짐하게 만들어진 밥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진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이자 사랑 앞에서 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지난 주 월요일에는 무산되었던 56대 총학생회가 재선거를 통해,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들어서게 됐다. 한 번의 연장 투표를 통해 간신히 성사된 것이라지만, 아무튼 총학은 밥상을 차릴 자격과 명분을 얻게 됐다. 이제는 ‘학생사회의 위기’라는 말도 식상해진 지금, 푸짐하지 않은 식재료를 받아든 총학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해진다. 고기반찬이 없다고 투정부리는 아이 같은 행동은 보이지 않겠으나 아무래도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했으면 좋겠다. ‘잘 해야 한다.’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지 알고는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잘못 꿰어진 학생사회라는 단추를 바르게 하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잘’ 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다시 학생들에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줄 차례다. 몇 년 전처럼 비리를 저질러 학생회의 신뢰를 무너뜨리거나 귀를 닫은 채 학외 정치사안에만 몰두하는 불량식품 같은 활동말고 집밥 같은 정책으로 학생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이 학생사회에 갈수록 관심이 없어지는 많은 이유들이 존재하고, 이를 타개하고자 하는 노력도 수없이 많았다. 결국 위기를 탈출하는 방안은 진정성 있는 활동으로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번 56대 총학은 ‘서울대인의 기본권 실현’을 기조로 내세운 만큼, 그동안의 노력들에 더해서 학생들을 위한 활동을 하길 바란다. 설사 결과가 잘 보이지 않는 희뿌연한 길일지라도 표로 받은 학생들의 관심을 건실한 정책과 공약 실천으로 다시 돌려준다면 ‘학생사회의 위기’라는 말도 어느덧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총학만 ‘잘’ 한다고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건 아니다. 얼마 전 전학대회 '거마비' 지급 사안이 크게 논란이 되었을 때, 연석회의에 조롱을 보내던 지인이 있었다. 그는 공직자(?)의 청렴성 문제를 제기하며 격분했다.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건 나도 동의했었다. 다만 그렇게 해서라도 대의원들을 모아야 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웠기에, 그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더니 그는 대표의 무조건적 희생만을 강요하며 계속 분노를 표출했다. 사실 그는 학교 입학 후에 별다른 이유 없이 학생사회에 대한 의견 개진, 심지어 단과대학 학생회 회장 투표조차 한 적이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학생들이 학생 사회에 관심이 멀어질수록 피해와 불편함을 겪는 건 학생 자신들이다. 모두가 학생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거나 거대 담론에 대해 관심 갖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끔씩일지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작은 의견이라도 목소리를 내는 일은 중요하다. 많은 목소리가 모일수록 총학의 활동 명분이 강화되고, 이는 다시 학생사회에 단단한 기반이 됨으로써 학생 개인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나, 이 배는 사공이 많아야만 산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그에 맛있는 반찬이 적어도 서로에게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자. 총학의 존재 이유를 뒷받침하는 건 우리 모두이고, 우리가 준 관심으로 총학이 열심히 활동한다면 다시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선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더 이상 편의점 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기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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