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세계 120여 개국 인권기구의 연합체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정기 심사에서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다. 2009년 현병철 인권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의 첫 심사에서 받은 등급 보류 판정은 다소 충격적이다. 2004년 ICC가입 이후 4년마다 실시되는 등급 심사에서 항상 A등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만약 하반기 재심사에서 등급이 강등되면 인권위는 ICC에서 투표권 박탈과 발언권 제한 등의 불이익 처분을 받게 된다.

인권위 이외에도 헌법재판소가 국민의 인권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국민권익위에도 국민권익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기능이 배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인권위가 지니는 인권보장에 대한 상징성은 매우 높으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인해 사회계층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수자와 약자의 보호를 위한 인권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렇기에 인권위의 정상화는 시급히 이뤄져야 할 중차대한 사안이다.

다만 이를 인권위원장 개인의 견책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미봉책이다 물론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직무 수행능력과 업무적합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임명 당시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우려했던 대로 현 위원장이 임명된 이후 인권위는 정부의 민간인 사찰, 용산참사, 4대강 점거농성 등의 사안에서도 인권보호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인권위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구조적인 면에서, 예컨대 인권위법의 개정을 통해 인권위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인권위 위원은 인권위법에 따라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을 국회, 대통령, 대법원장이 각각 선하거나 선출한다. 그러나 현재 11명의 위원 중 8명이 법조인, 정치권 출신으로 구성된 데서 보이듯, 법이 규정하는 위원의 자격은 다양성을 구현하기에 미흡하다. 사회의 각 계층을 아우르지 못하는 위원회 구성으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입장이 충분히 배려되고 공유되기는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해 11월 장하나 의원이 대표발의한 ‘인권위법 개정안’이 조속히 처리되기를 촉구한다. 이 개정안에는 정당, 어린이 및 청소년 단체, 장애인단체, 인권단체 등이 추천한 20명으로 ‘인권위원 후보추천위’를 구성해 위원 선정 과정의 다원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은 이임사에서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말을 남기며 정부의 인권에 대한 편협한 인식과 소통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대한민국의 국격에서 인권존중은 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을 정부와 국회가 명확히 인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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