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하루 만에 열 채의 집을 지어달란 의뢰를 받은 건축가라고 가정해보자.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이 의뢰를 당신은 어떻게 들어줄 수 있을까? 해답은 ‘3D 프린터’에 있다. 최근 중국의 한 건설 시공재료 회사가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하루 만에 열 채의 집을 만드는 모습을 공개해 화제가 됐었다. 이미 3D 프린터가 기반인 ‘오레오 자판기’, 3D 프린터로 만든 옷으로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가 개최된 것을 볼 때 3D 프린터로 의식주 모두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머지않아 보인다. 그동안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도 이처럼 쓰임새가 무궁무진한 3D 프린터와 관련된 기술 개발과 활용 방안을 넓히기 위해 박차를 가해 왔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학계에서도 3D 프린터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 인터뷰 중인 김호영 교수(기계항공공학부). 그의 연구팀은 나노 단위의 구조물을 3D프린터로 출력해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사진: 장은비 기자 jeb1111@snu.kr

3D 프린터는 입력된 설계도에 따라서 액체나 가루 형태의 소재를 극도로 얇은 층으로 쌓아올려서 3차원의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기기다. 기존의 프린터처럼 인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컴퓨터로 입력된 데이터를 구체적 사물로 출력해낸다는 의미에서 ‘프린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3D 프린터에 대한 논의는 80년대 후반부터 의료용 장비 개발을 목적으로 진행돼왔으며 최근에는 건축, 항공우주, 전자, 디자인 등 폭넓은 분야에서 논의되고 있는 추세다. 또 전통적으로 플라스틱이 소재로 주로 이용돼왔지만, 최근 다양한 활용 방안이 강구되기 시작하면서 종이, 왁스, 고무, 금속 심지어는 식품까지 소재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무엇이든지 출력해낼 수 있게 된 3D 프린터는 제조업 분야의 혁명을 일으킬 불씨로 주목받고 있다. 한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여러 공정을 3D 프린팅으로 일원화시킬 수 있으며,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시제품을 사내에서 직접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즉각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소비자가 구매한 상품을 3D 프린터로 직접 출력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물류과정 전체를 생략할 수 있는 파괴력이 이 기술에 잠재돼있다. 한국연구재단의 관련 보고서는 “미래 신산업 패러다임인 다품종 소량생산을 가능케 하는 핵심기술로서 신산업 창출 등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됨”이라는 소견을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3D 프린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의회 연두교서에서 3D 프린팅 기술의 허브 증설 및 이를 통해 제조업 혁신을 추진하겠다는 국가적 비전을 제시했다. 이와 더불어 우리나라 정부도 지난 달 23일 ‘3D 프린팅 산업 발전 전략’을 발표했으며 이를 통해 2020년까지 세계적 선도기업 5개를 육성하고, 세계 시장점유율 15% 달성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렇듯 산업계와 학계가 3D 프린터에 주목한 가운데 김호영 교수(기계항공공학부) 연구팀이 3D 프린터로 나노 단위의 구조물을 만들어내 이목을 끌었다. 기존 3D 프린터 관련 연구는 소재의 다양화와 더불어 제조 속도 향상, 구조물 모양의 정교화에 초점이 맞춰져서 이뤄져왔다. 그렇기에 이번 김 교수 연구팀의 성과를 통해 현재 주로 밀리미터 단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구조물보다 더욱 정교한 구조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 교수팀이 3D 프린터로 만들어낸 것은 나노 크기의 ‘성벽’이다. 이런 이름은 머리카락 약 만분의 일 크기의 구조물 한 단위를 확대해서 봤을 때 전체적인 모양이 마치 성벽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이 성벽을 만들기 위해 그들은 먼저 나노 단위의 ‘실’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다. 김 교수는 “우리는 마이크로 혹은 나노 단위의 물체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지만 기존의 소재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고분자 용액을 이용해 나노 실을 뽑아내는 방법을 이용했다”고 전했다. 주사기에 고분자 용액을 넣은 후 이에 강력한 전압을 걸면서 주사기를 밀어내면 일정하게 나노 단위의 섬유가 분사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실을 3D 프린터를 이용해서 좌우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서서히 쌓아올리면 성벽 모양의 나노 단위 구조물이 완성된다.

김 교수는 “사실 나노 실을 만드는 기술을 이전부터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원하는 대로 조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 이를 조작하는 원천 기술을 확보하게 됐다”며 의의를 밝혔다. 나노 섬유는 자체적인 운동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그것을 미세하게 조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 연구에서 좌우로 나노 섬유를 쌓아올리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나노 섬유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그는 “이번 연구 성과가 보다 복잡한 나노 단위의 3D 프린터 구조물을 만드는 데 씨앗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개발된 기술은 차세대 광학소자 제조, 전자회로 도면을 수정하는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광학소자는 매우 미시적인 차원에서 표면에 돌기를 그려 넣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현재 나노 단위의 3D 프린팅을 이용해 그런 돌기를 그려 넣기 위해서 전자공학자들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으며 같은 방법으로 태양전지의 효율을 높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또 현재까지는 전자회로가 일단 제조되면 그 표면에 있는 도면에 새로운 구획선을 긋는 등의 수정을 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 교수의 연구팀은 그 도면 위에 새로운 선을 프린트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 교수는 “현재까지 개발된 3D 프린터로는 완만한 변화를 갖는 둥근 모양은 만들 수 있지만 급격한 변화를 갖는 각 모양은 만들기 어렵다. 이를 위해서는 나노 섬유가 분사되는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다”며 개선돼야 할 점을 밝혔다. 강력한 전압의 의해서 나노 섬유가 분사되기 때문에 그 속도가 매우 빠르며 이 때문에 나노 섬유를 원하는 모양으로 조작하는 데 제약이 있는 것이다. 추후 이 점이 개선된다면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후속 연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습도에 따라 움직이는 ‘액추에이터’를 개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액추에이터는 쉽게 말하면 온도와 습도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이다. 식물은 습도가 높으면 팽창하고, 낮으면 수축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김 교수도 이처럼 습도에 의해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기계가 습기를 잘 빨아들여야 하는데, 아주 미세한 단위에서 기계의 표면이 복잡하고 표면적이 넓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때 3D 프린팅을 통해서 이 기계의 표면적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습도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액추에이터를 통해 궁극적으로 소규모의 발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사람 피부의 습기를 이용해서 그 위를 움직이는 작은 로봇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장 미시적인 세계로부터 이끌어낸 김 교수의 기술은 향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전반적으로 바꿔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3D 프린터 관련 연구가 미국, 유럽, 중국과 같은 국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원천 기술을 확보해나가고 있는 그의 연구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의 연구를 시발점으로 우리나라의 기술이 3D 프린터 분야 산업을 선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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