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창립된 「허핑턴포스트」는 지난 10년 간 언론계에 몰아친 가장 혁신적인 바람이었다.    

  2011년에는 급기야 「뉴욕타임즈」의 웹사이트 조회수를 추월했고 3800억원 규모의 가격으로 AOL에 인수된다. 현재도 미국 언론사 웹사이트 중 최고 수준의 트래픽을 자랑한다. 레오 로스텐의 명언은 이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개를 물면 그것은 뉴스다.” 「허핑턴포스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창립자 아리아나 허핑턴의 유명세, 자유로운 작성 및 댓글 기능 등이 언급되지만 가장 강력한 이유는 사실 뻔하다. 새로운 필진과 시스템에서 비롯된 기사의 차별화다. 독자들이 기사를 선택하면서 새로운 소재나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사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싣고 싶은 것이 있다면 새로워야 하고 새로움이 부족하다면 바라보는 방향이 참신해야 한다. 1876호의 대학면은 어떠한가. 3년 전은 반값등록금으로, 2년 전은 고등교육 공공성 확보를 위한 재정확충으로, 직전 해엔 새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으로 대학의 공공성과 독립성의 4월은 뜨거웠다. 그렇다면 오늘의 4월은 『대학신문』의 한 면을 차지할 만큼 충분히 '핫'한가?

  피사체도 불만스러웠지만, 카메라앵글, 즉 사각(寫角) 또한 아쉽다. 해당 기사에서 『대학신문』의 분석은 안타깝게도 기성 언론이 읊어대는 ‘시장논리 대 교육공공성 프레임’, 다시 말해 색깔론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틀렸다기보단 다름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대학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아닌 ‘무엇이 대학을 가게 하는가’에 답해 보는 건 어떨까. 신입사원을 찍어내는 현재 대학의 사회적 역할이 고착돼있고 이 때문에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시장논리에 줄을 서는 한 교육 공공성 확보는 아무래도 우선순위가 낮은 외침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사 내 제시된 ‘사립대의 공립화’나 ‘노나메기 대안대학’을 보면 식상함을 넘어 설득력이 떨어지진 않는지.

  고민의 부족은 이내 취재부족으로 이어졌다. 해당 기사의 취재원은 김누리, 고부응 교수에서 김세균 명예교수까지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의 목소리로 들어차 있다. 설득력은 다각적인 취재에서 생긴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당해 제도를 도입하게 된 취지는 무엇인지 정부 관계자의 목소리는 빠진 채 1876호 『대학신문』의 대학면은 ‘기업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기업 의존도를 높이도록 부추기고’ 있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쯤 되면 해당 기사의 취재원 선택 과정이 양질의 기사를 내는 것이 아닌 수월한 취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2013년 말 「허핑턴포스트」가 「한겨레」와 손잡고 한국 언론계에 발을 들인지 6개월이 지나가는 지금, 1876호 대학면에게 묻고 싶다. 해당 소재는 지면에 실을 충분한 이유가 있는가. 취재는 양과 질에서 충분했는가. 마지막으로 최고의 치열함과 마주해 시대정신이라 자신 있게 내걸 만큼 열렬했는가. 이 뻔한 질문을 매주 마주하기란 정말이지 「허핑턴포스트」지든 여러분이든 누구에게나 고역일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함께하던 『대학신문』에선 가장 뻔한 방법론에서 가장 세련된 시대정신의 작품이 탄생하곤 했다.

양호민
원자핵공학과·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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