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어린 시절, 만화 주제가 첫 소절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푸른 바다 저 멀리”를 들을 때면 절로 은하수를 건너고 새 희망이 넘실거렸다. 그 중에서도 “슈파 슈파 슈파”를 좋아했다. 서로 다른 개성과 특기를 가진 독수리 5형제들은 티격태격하다가도 힘을 합쳐 악당 알렉터를 쓰러트렸다.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것은 나이가 한참 든 후였다. 첫째는 독수리지만 나머지는 부엉이와 제비같이 전혀 다른 새였다. 게다가 셋째인 백조는 여자였다. 어쩌면 그 때는 가장 강한 존재인 독수리가 모두를 대표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었나보다. 구성원들간의 차이를 배제한 채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던 시대였다.

  총장 ‘선출’이 진행되고 있다. 12명이 지원한 가운데 5명이 추려졌고, 다시 3명으로 좁혀졌다. 이제 이사회가 차기 총장을 선택할 것이다. 법인화 이전에 비해 총장의 권한이 한층 더 강해진다는 점에서, ‘선출’은 서울대의 미래와 직결된 중요한 사안일 것이다. 그런데 처음이다 보니 과정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5인과 3인의 선정 과정에서 무엇보다 1인의 선택에 있어 서울대 외부에 의해 좌우된다는 비판이다. 반면 옹호하는 이들은 외부 인사의 참여가 개방성과 다양성 그리고 투명성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폐쇄적 ‘내부’가 문제가 있음은 당연하리라. 그렇다면 관건은 참여하는 외부 인사가 과연 다양하고 투명한가에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 관료와 기업인 그리고 변호사가 주축인 그들은 대부분 동일한 지향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대학 고유의 가치를 인정하기보다는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믿으며, 대학이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다. 대학을 기업화해야 한다는 사회 전반에 퍼진 믿음은 이사회를 통해 그리고 총장 선출을 통해 구체적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의문은 법인화 도입 당시부터 제기돼왔다. 법인화의 목적은 자율성이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지고의 선으로 간주되다 보니 정작 자율성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논의되지 못한 듯하다. 법인화가 완료되었지만 그리하여 분명 ‘이사회’의 자율성은 확보되었지만, 과연 그것이 ‘대학’과 ‘학문’의 자율성인지, 무엇보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대가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윤이라는 가치가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많은 이들은 대학도 별반 다를 수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울산의 조선소에서, 서울의 철로에서, 그리고 남녘의 바다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비극들이 반복되고 있다. 자율성 자체가 선이 될 수 없음을, 오히려 치명적 재난이 될 수 있음을 우리는 크나큰 슬픔 속에서 깨닫고 있다. 국가와 민간으로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임을 또한 목격하고 있다. 이윤이 인간보다 우선되는 조건에서 자율성은 그것을 합리화하고 극대화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관과 민의 연계는 이익 앞에서 너무나도 끈끈했고, 그들의 협력은 큰 불행이 되었다.

  시장의 원리만이 존재할 때, 그것이 사회와 대학처럼 전혀 다른 공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때,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만다. 우리 사회는 그것들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님을, 실은 매우 소중한 것임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하는 듯하다. 진리, 진실, 인간, 성찰과 같은 대학 고유의 가치들이 사라져 버리지 않기를, 그러한 가치‘도’ 소중히 여기는 총장이 선출되기를, 그런 인물을 찾을 수 있는 서울대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김경근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