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별을 잇는 ‘소설’이라는 징검다리
나와 너의 별을 잇는 ‘소설’이라는 징검다리
  • 김유문 기자
  • 승인 2014.05.17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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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위해 찾은 소설가 조현의 집필실은 미로처럼 빽빽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 분야를 불문하고 서가를 채운 책들은 무궁무진한 그의 상상력을 말해주는 듯했다. 2008년 순수문학의 전당이었던 신춘문예에 SF 풍의 소설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으로 신선한 파장을 일으킨 후 2012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조현 작가. 어떤 평론가는 그를 라틴문학의 거장 보르헤스와 비교하기도 한다. 조현의 소설, 그의 상상력에 문단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클라투행성 지구 주재 특파원, 지구인을 탐사하다

어쩌면 사랑은 존재의 본질에 어울리는 참다운 이름을 찾아 미세한 부유물처럼 존재와 존재 사이의 빈 공간을 떠도는 브라운 운동일지도.(「옛날 옛적 내가 초능력을 배울 때」)

리만 기하학, 브라운 운동, 넵투늄 중성미자 발전기 등 과학 학술지에나 나올 법한 전문 지식들이 조현의 소설엔 빈번히 등장한다. 이런 자연과학적 개념들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조현만의 독특한 서사 방식을 만들어낸다. 많은 평론가들이 그의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자연과학의 의미에 주목한 가운데, 김대산 평론가는 진리를 탐구하는 이성적 의식이 상상력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음을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지속적으로 과학 개념을 차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과학의 탐구과정이 신학적 탐구와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가 소설을 통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신학적 탐구’이다. 신학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자연스레 인간이 세상에 어떻게 뿌리박고 살아가는가를 묻는 존재론적 탐구로 이어진다. 그런데 조현은 “끊임없이 인간의 미래와 운명을 묻는 SF소설이 오히려 종교소설보다 신학적 탐구에 충실할 때도 있다”며 존재론적 탐구과정에서 과학의 역할을 눈여겨보게 된 이유를 말했다. 일례로 그의 소설 「옛날 옛적 내가 초능력을 배울 때에」에선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존재와 존재 사이를 떠도는 사랑을, 예측할 수 없는 입자들의 불규칙한 운동인 ‘브라운 운동’이란 개념으로 포착해낸다.

물리학 외에도 화학, 기하학, 천문학 등 광범위한 영역의 과학이 등장한다. 특히 ‘외계인’ 및 우주 이론과 관련된 지구과학적 요소들이 그의 소설에 가장 빈번히 나타난다. 이에 대해 그는 “외계인의 시선으로 보면 지구인의 본질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 속 외계인의 역할을 ‘은유의 원리’로 설명했다. 그는 “은유는 전혀 다른 층위의 A와 B를 같다고 등치시킴으로써 기존의 개념을 흔들고 새로운 미적 감흥을 이끌어낸다”며 “외계인으로 은유되는 지구인을 통해 평소 당연시됐던 지구인의 윤리나 양심 등의 특징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라 팜파, 초록빛 유형지」에선 월등한 지성체인 외계인이 저열하다고 생각되는 외계행성을 임의로 파괴하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이를 통해 지구인은 스스로가 다른 종(種)에 가하는 행태를 비판해볼 수 있는 것이다.

자칭 ‘클라투행성 지구 주재 특파원’인 조현의 ‘지구인 탐구기획’은 단순히 외계인의 시선으로 존재들을 관찰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다른 존재들의 삶을 ‘문학’을 통해 직접 살아봄으로써 그들에 공감하고 그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 인터뷰 중인 소설가 조현. 그의 소설을 특징 짓는 풍부한 자연과학적 은유는 서재에 꽂힌 수많은 책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사진: 김유정 기자 youjung@snu.kr

공감을 통한 영혼의 진화

그리고 나서 난 의식을 확장해 주변으로 흘려 보냈지. 마치 잔잔한 연못에 조약돌을 던져 동심원을 끊임없이 흘려 보내듯이. 처음 맞닥뜨린 건 낮은 향나무였어. 그리고 그 아이를 지나 그 옆의 나무로 스며들었지. (중략) 그리고 정원 안에 있는 나무들이 되어 그 존재들이 느끼는 대로 우주를 바라볼 수 있었지. 하여 나는 신비롭기 그지없는 우주의 비밀을 깨달았어.(「생의 얼룩을 건너는 법, 혹은 시학」)

이처럼 다른 존재로 의식을 전이 혹은 확장하는 과정은 ‘윤회’라는 그의 소설의 주요 키워드로 나타난다. 이는 원래 종교적 개념인 윤회를 변용해 ‘존재에서 존재로 옮겨 다니며 여러 시각과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으로 쓴 것이다.

조현은 윤회의 과정을 “생의 확장이란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정체성으로만 살아온 사람은 타인의 심연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윤회를 통해 타인에게로 정체성을 확장해갈 수 있는 것이다. 또 그는 윤회가 “다양한 소설을 읽으며 직접 살지 못한 주인공들의 삶을 두루 체험하는 독서의 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자는 그의 소설 속 풍부한 주인공들의 삶을 윤회하며 ‘우주의 비밀’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

윤회를 통해 자신이 몰랐던 미지의 우주 영역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것을 조현은 ‘심령의 진화’ 과정이라고 서술했다. 그는 “종교적 개념인 ‘심령’과 다위니즘에 기반을 둔 과학 개념인 ‘진화’는 사실 충돌하는 두 개념”이라며 “윤회의 과정에서 심령(영혼)을 능동적으로 계발해갈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진보라는 단어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이나 자유연애 등의 개념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이런 개념들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 불과 몇백 년 전에야 만들어진 것이며, 그 과정엔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능동적인 노력이 있었다. 「라 팜파, 초록빛 유형지」에선 지구보다 월등한 지성체가 지구인의 삶을 윤회하며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넘어서” 다원적인 가치가 중요함을 깨닫게 되는데 그런 공감과 이해의 과정에서 영혼은 한 걸음 더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공감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미감의 번역’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미감(sense of beauty)은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으로 어떤 사람이 발레에서 느끼는 미감을 다른 사람은 음악에서 느낄 수도 있고 혹은 다른 사람은 아예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따라서 다양하고 새로운 미감의 체험이야말로 공감과 이해라는 윤회의 목적과 상통한다. 「라 팜파, 초록빛 유형지」에 등장하는 외계에서 온 영혼은 새로운 존재를 풍성하게 체험하기 위해 미감의 번역을 필요로 하는데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 바로 그의 소설 속 ‘소울마스터’이다. 그는 소울마스터를 “하나의 영혼을 다른 영혼에 덧대어 존재의 영적 지각을 돕는 조정자”로 소개한다. 「돌고래 왈츠」에선 외계인이 자기 행성의 석양의 풍경을 사랑하는 지구인에게 전하기 위해 소울마스터에게 번역을 의뢰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쩌면 존재는 이런 식으로 모두 자신의 촉각과 경험의 범주 안에서만 타인을 이해하는 법인지도 모른다. (중략) 하여 난 이곳 지구의 풍경을 고향 행성의 감각으로 번역해내고 싶었다. (중략) “당신이 마음에 새겨 놓은 고향 행성의 스펙트럼을 지구의 여성에게 가장 적절하게 번역하는 방법은 같이 황혼을 바라보던 때 그녀에게 깊고 따뜻한 키스를 하는 것이었습니다.”(「돌고래 왈츠」)

소울마스터의 일은 또한 작가 자신의 일이기도 하다. 그는 “예술의 가장 근원적인 기능은 다양한 감각의 번역을 통해 한 존재의 심연을 다른 존재의 심연으로 옮겨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들의 삶으로 윤회하게 되는데 이때 소울마스터로서의 작가는 각 등장인물의 내면과 미감을 번역해주며 독자의 풍성한 체험을 돕는다. 그는 “향후 쓰고자 생각하고 있는 소설도 과거와 현재, 미래의 각기 다른 미감에 대한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소설 「초설행」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조선 시대 정형시라는 형식이 가졌던 미감을 간접체험할 수 있게 된다. 각운을 엄격히 맞추는 것은 신분제라는 사회구조에서 발달된 미감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현의 등단작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은 미국 하버드대의 한국학연구소(Korea Institue)에서 발행하는 한국문학 저널에 영역(英譯)돼 실리기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심연을 통해 우주로 뻗어나가는 조현의 상상력. 지구인들이 그의 소설에 공감하고 우주의 비밀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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