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소방관 A씨는 직장 동료와 동성애 관계를 맺어 공무원의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서울시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징계가 부당하다고 느낀 A씨는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행정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재판부가 제시한 판결 이유는 “동성애를 이유로 징계처분을 할 수 없다”가 아니라 “원고가 동성애자라고 볼 근거가 없다”였다.

성소수자가 일터에서 경험하는 노동권 침해는 청소년이나 장애인의 노동권 문제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해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련) 성소수자노동권팀은 지난 9일(금) 서울시 종로구 민주노총교육원에서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가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요구되는 변화들’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토론회는 성소수자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과 이를 실천하는 데 필요한 노동조합의 역할을 고민하기 위해 마련됐다.

성소수자는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노동권을 침해받더라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성소수자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이 밝혀지면 취직이나 승진이 불리해질 것을 우려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대신 직장을 옮기는 것 등의 방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성전환자인권실태 조사기획단의 2006년 조사에 따르면 성전환자는 가족관계등록부상의 성별을 변경하지 못한 경우 서류상 성별과 외모가 달라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과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한 레즈비언은 근무 성적이 좋았음에도 언론에서 커밍아웃을 한 이후 회사로부터 ‘근무 불성실’이라는 이유로 해고당한 바 있다.

법적으로 실효성 있는 차별시정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도 성소수자가 차별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원인이 된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현행법 중 유일하게 ‘성적 지향’을 차별금지사유로 규정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시정권고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법적 강제력이 없어 피해자 구제에 한계가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조혜인 변호사는 “성소수자기 때문에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법적,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 꼽힌다”며 “고용 영역에서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시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해외의 노동조합이 제도적으로 부족한 성소수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온 사례도 소개됐다. 미국에서는 1970년 미국교사연맹(AFT)이 동성애 행위를 한 교사에게 가해진 인사 조치에 항의했고, 이는 성소수자 단체와 노동조합이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후 미국노동총연맹(AFL-CIO, 한국의 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유사한 지위를 가진 노동조합)은 1983년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 입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해 공식적으로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했다. 나아가 미국노동총연맹은 전국 동성애자 노동자 조직인 ‘일터의 자긍심(PAW)’의 가맹을 승인하고, 성소수자가 노동조합의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당연직 대의원 6명을 성소수자에게 할당했다. 이처럼 미국의 노동조합은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이들의 권리가 신장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왔다.

이에 한국의 노동조합 역시 성소수자에게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동조합은 사측과의 협상을 통해 법과 제도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 직장에서는 이성 간의 혼인관계에 대해서만 가족 수당이나 경조사 특별휴가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동인련 곽이경 활동가는 한국도 성소수자가 사측에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곽 활동가는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에 성소수자 차별금지조항을 삽입할 것을 촉구하며 “직장 내 민주주의와 평등을 옹호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주요한 책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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