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지 않아도 기사를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난 3월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시사IN」 기자의 수상소감이다. 그들은 파업 이후 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손해배상이 청구되는 현실을 지적한 기사로 상을 받았다. 손해배상 청구는 노동자의 파업을 막는 오랜 탄압 기제였다. 하지만 너무나 고질적인 문제였기에 언론은 이를 주목할 수 없었다. ‘뉴스’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 문제가 기사화되는 것은 오직,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이들이 목숨을 끊을 때뿐이었다.

「시사IN」의 기사는 이런 관행에 대한 도전이었다. 뉴스를 만들기 위해 국내 손해배상 판례뿐 아니라 해외 판례도 뒤졌다. 해외 노동조합과 법관에게까지 연락해 그곳에도 ‘무자비한 손해배상제도’가 있냐를 물었다. 단순히 질문에서 멈추지 않았다. 손해배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해 ‘4만 7천 원의 기적’ 모금 캠페인을 벌였다. 2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금에 참여했고 쌍용차 등 손해배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며 손해배상제도 개혁을 위한 사회기구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출범했다. 사람이 죽지 않았지만 기사를 썼고, 그 기사는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한 움직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손해배상제도 기사가 죽음 없이도 만들어낸 기사라면, 세월호 참사는 ‘사람이 죽고 나서야’ 기사를 쓸 수 있었던 경우다. 참사 발생의 원인을 언론에 돌리는 것은 과하지만 분명 아쉬움은 있다. 공무원 재취업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을 때 한 번이라도 ‘해피아’의 문제점을 지적했더라면 어땠을까. 고질적인 선박 화물 과적 문제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복원력 부족으로 지난 5개월 새 2번이나 사고가 난 세월호 문제를 기사화했더라면 이 끔찍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지 않을까. 285명이 희생되고 19명이 실종된 상황(2014년 5월 17일 기준)에서야 관련 기사를 줄줄이 써 내는 언론을 보면서 안타까운 가정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그 가능성을 지적하고 그를 예방하는 것이 언론의 오랜 역할이었다. 유감이지만 『대학신문』의 이번 보도는 두 예시 중 후자에 가까운 듯하다. 500동, 83동, 220동 건물의 안전성 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적돼왔지만, 보도가 이뤄진 것은 건물 이용자들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직접 본부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뉴스’가 생긴 후였다. 다행히 여태 큰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대학신문』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꼭 사람이 죽는 ‘사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학내 환경의 감시자로서 사건만을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지 않아도 기사를 쓸 수 있는 밝은 눈과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기사거리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시의성’이지만 문제 예방의 차원에서는 보도하기에 너무 빠르거나 적절하지 않은 시기란 없음을 알아야 한다.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도, 사람이 죽지 않아도 기사를 쓸 수 있는, 그래서 그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대학신문』이 되길 바란다.

이소영
소비자아동학부·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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