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본은 망했다” 이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면서 유행했던 구호다. 이웃 나라에서 벌어진 대형 사고에 아연실색한 국민들은 일본산 생선은 물론이고 모든 일본산 제품에 대해 거부감을 표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붕괴했는가? 후쿠시마 현의 주민들은 생활터전을 잃었고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전 세계에 퍼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암의 발병률에 미친 영향을 명확히 증명할 수는 없기에 그 피해를 축소해 인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정상적인 국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일본인들도 자신의 삶을 잘 꾸려나가고 있다.

물론 사고 초기에 나타났던 구호들과 이후에 나타난 현상들의 괴리가 그리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미래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선 모든 가능성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후쿠시마를 통해, 또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계속해 드러나는 사실이다. 그러나 ‘만약’이라는 우려에 따른 주장과 막연한 두려움은 구분돼야 한다. 실제 기사에 필요한 취재를 진행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원전의 위험성과 안전성에 대한 주장들이 막연한 외침인지 올바른 근거를 가진 것인지 구분하는 것이었다. 막연한 외침은 ‘신화’와 ‘괴담’을 만들어내고 이를 ‘정치화’한다. ‘좀비’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이에 따른 것일 터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장은 그것이 옳다는 점뿐만 아니라 지지받아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하나의 주장이 올바른 근거를 가질 때 그것은 논리의 문제다. 이런 논점은 서로에게 쉽게 동의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여러 주장이 얽혀있는 큰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는 것은 미래를 향하는 큰 방향을 결정한다. 이는 단지 논리의 문제로 치환될 수 없다. 큰 주장에 얽혀있는 세부적인 가지들은 서로 다른 차원을 갖기 때문에 논리적인 계산을 적용해 답을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 정치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의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서 단편적인 근거들은 능동적인 시각으로 종합돼야 하기 때문이다. 종합된 시각은 근본적인 생각으로 남아 향후 내려질 세부적인 결정들의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형성된 근본 생각은 장기적인 계획을 결정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 기사를 취재하며 내가 갖게 된 근본적인 생각은 원자력발전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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