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정원 16만 명 감축
정부는 정원감축에만 몰두할 뿐
대학 본연의 경쟁력은 외면해

 대학 정원이 줄어든다. 교육부가 지난 1월 발표한 ‘대학구조개혁’에는 2023년까지 대학 정원 16만 명을 줄이는 방안이 담겨 있다. 고교 졸업생이 점점 줄어들어 앞으로 10년 뒤에는 3분의 2 수준으로 급감될 예정이고 이에 따라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수도 대폭 감소하기 때문이다.

대학 정원이 애초에 필요 이상으로 증가하게 된 것은 1995년 김영삼정부가 대학의 설립을 유도하기 위해 관련 기준을 완화하는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했던 탓이 크다. 도입 이후 2005년까지 전국 80여 개의 대학이 새로 생겼고, 학생 정원은 7만 3천여 명이 늘어났다. 하지만 경쟁력 강화 없이 부실대학 위주로 양적 팽창이 이뤄져, 이제는 대학 정원 감축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정원감축에 중점을 둔 대학구조개혁 정책은 노무현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됐고 이명박정부를 거쳐 박근혜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주도하는 대학구조개혁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수신문」이 대학평가 전문가 교수 등 175명을 대상으로 정부 주도의 대학구조개혁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42.3%가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정부가 정원감축에만 몰두할 뿐 대학의 구조적 병폐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방책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부는 지난 1월 대학 구조조정에서 정원감축을 넘어서 ‘교육의 질 제고를 통한 대학 경쟁력 강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가 생각하는 대학의 경쟁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대학구조개혁이 진행되면서 그동안 지적돼온 수도권-지방대학 간 서열구조와 비인기학과 통폐합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대학서열=대학경쟁력?

이명박정부는 대학구조개혁을 위해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대학평가를 실시했다.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등 정량지표 위주의 상대평가였다. 이를 바탕으로 정한 하위 15% 대학을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분류해 정원감축 또는 폐교를 요구했다. 그 결과 2004년 이후 2013년까지 입학정원 감축의 81.9%가 지방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정부 이후 폐교 대학 역시 건동대, 명신대 등의 지방대학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지방대학이 취업률, 재학생 충원률 위주의 대학평가에서 불리한 이유는 수도권-지방대학 간 서열구조가 이미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취업시장에서 대학의 서열이 높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교육수요자인 학생이 대학서열을 중시하게 되고, 이로 인해 수도권 대학에 학생이 몰려 대학서열이 더욱 높아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 ‘수요자가 선택한 대학은 살아남고 선택받지 못한 대학은 퇴출’한다는 시장논리에 근거한 이명박정부의 대학평가가 대학을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경쟁으로 내몰아 이런 구조에서 불리한 지방대를 퇴출시키고 대학 본연의 경쟁력 배양 역시 저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런 비판을 수용해 박근혜정부는 대학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함과 동시에 정성지표를 도입했다. 또 정원감축과 연계된 특성화 사업 참가 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지방대에 ‘특성화’를 주문했다. 하지만 지방대학은 이번에도 역시 정원감축 요구가 지방대학에 집중될 것이라며 반발에 나섰다. 정성평가를 일부 도입했음에도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로 대표되는 정량평가 위주의 평가 방식이 여전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대다수 지방대학이 하위 등급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수도권 대학은 정부의 특성화 사업이 제공하는 인센티브에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한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다. 정부가 대학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195개 4년제 대학에서 정원감축과 연계된 특성화 사업을 신청받아 발표한 대학 특성화 사업 정원감축 계획을 보면, 2017년까지 줄이기로 한 입학정원의 80%가 지방대학으로 집중돼 있다. 이는 수도권의 4배에 달하는 수치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건국대, 동국대 등은 정원 감축 계획을 교육부에 제출하지도 않았다. 이런 결과는 서울대, 고려대 등 교육부 대학평가의 상위 등급은 교육수요자가 많기 때문에 정원을 감축해 받는 인센티브보다 정원 유지를 선택하는 것이 이익인 반면, 많은 수의 지방대가 속해 있는 하위그룹은 그렇지 않아서다.

2013학년도 대학 정원 미충원 인원의 96.0%를 지방대가 차지할 정도로 지방대학은 교육수요자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지방대학은 경쟁력 강화나 특성화보다는 수도권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서영대, 을지대 등 7개 지방대학은 주한미군이 철수한 경기 북부 지역에 분교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미 수도권으로 진출했거나 진출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대학의 구조적 병폐가 오히려 심화되자 시민단체와 대학 구성원 단체 등 21곳이 모인 ‘대학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전국 대학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는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중단’하라며 대학 공공성을 위해 대학구조조정 방식을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정부가 대학별 정원감축량을 일률적으로 정해줌으로써 수도권-지방대학 간 형평성을 추구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이에 대한 수도권의 반발이 커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학경쟁력 위해 희생되는 비인기학과

교육부가 대학구조개혁의 일환으로 특성화 사업을 정원감축과 연계해 추진하면서 사실상 비인기학과의 통폐합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성화 사업에 선정되길 희망하는 대학은 비인기학과를 통폐합함으로써 일석삼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률이 떨어지는 비인기학과의 정원을 감축하면 정원감축에 따른 가산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취업률도 동시에 개선해 정량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또 각 대학은 이들 학과를 희생양으로 삼아 ‘경쟁력’ 있는 학과를 특성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학생은 대학이 생각하는 경쟁력이 무엇인지 되물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강원대에서는 대학본부가 사범대 가정교육과 등 20여 개 학과의 통폐합을 일방적으로 통보하자, 가정교육과 학생들은 대자보에서 “어떠한 근거와 기준으로 39년 된 학과를 폐지한다는 것일까요? 그들이 말하는 경제논리는 무엇인가요?”라며 총장실 복도에서 항의농성을 벌이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부실대학 퇴출이 먼저다

대학구조개혁에 대한 「교수신문」의 설문조사에서 91.4%의 교수들이 ‘대학구조개혁 평가에 앞서 부실대학부터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에 동의했다. 실제로 현재 35개 부실대학들은 학생 수가 턱없이 부족하거나 재단 비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부실대학 중 상당수가 족벌체제로 운영되면서 비리혐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족벌체제는 사립대학의 설립자가 이사장, 총장 등의 요직에 가족이나 친인척을 임명함으로써 인사와 재무를 장악하는 방식을 뜻한다. 2013년 국정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사립대학 설립자 및 이사장의 친인척이 요직을 맡고 있는 법인 수는 25곳(32.9%)에 달했다. 총장(이사직 겸임 총장 포함)으로 재직하는 경우도 29곳(38.2%)이며, 이사직은 22곳(28.9%)이었다.

퇴출 유도보다 퇴출 이후 고민해야

대학 구조조정이 시급한 지금 정부 차원에서 부실대학이 스스로 문을 닫을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사립대 법인 해산 시 잔여재산이 국고로 귀속되거나 다른 학교 법인에 넘기도록 하는 현행법 때문에 부실대학이 퇴출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틴다는 것이다. 이에 지난 2일 대학 퇴출을 유도하기 위해 잔여재산을 공익·사회법인에 넘기거나 새로운 공익법인 설립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부의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이에 대한 반대여론이 만만찮다. 대학법인이 등록금을 받아 재산을 증식했기 때문에 설립자의 재산과 대학의 재산은 법적으로 분명히 분리된다는 의견이다. 교육부의 법안은 부실재단에게 현행법으로는 불가능한 보상을 해주기 위한 일종의 특례법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또 부실대학의 퇴출을 무작정 유도하는 것보다 퇴출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를 위해 퇴출대학이 발생하면 인근 국공립 대학에 대학 구성원을 편입하거나, 정부가 운영비를 지원하는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체제로 변화시키는 방안이 있다. 이런 방안은 퇴출대학의 학생, 교직원 등 대학 구성원과 지역사회가 입게 될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박근혜정부가 부실대학 퇴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대학구조조정 정책의 향방을 결정할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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