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는 현재까지도 유교식 제례인 종묘제례 행사가 치러지는 건물로 지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중에서도 종묘의 중앙에 위치한 ‘정전’은 500년 동안 조선왕조를 이끌었던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중요한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이 정전에서 바라본 풍경은 숲과 산이 둘러싸고 있어 종묘의 장엄함을 더해준다. 그러나 지난 2004년부터 논의돼 온 세운상가 재개발 4지구에 고층빌딩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지난 15일(목) 발표됐다. 이 계획이 문화재청 심의에 들어가면서 종묘의 주변 경관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경관 가리고 아웅하기=지난 3월 서울시는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을 확정했다. 그리고 171개의 분할 개발 지역 중 종묘와 가까운 세운상가 재개발 4지구의 경우 약 20층 정도의 높이인 70m 이하의 건물만 허가하기로 했다. 이에 재개발 시공사인 SH공사는 지난 4월 70m 높이의 고층 빌딩을 짓겠다는 계획안을 만들고 문화재청에 심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에서는 정전에서 바라봤을 때 빌딩의 4층 정도가 종묘 주변의 나무들 위로 노출됐다며 심의를 부결했다. 종묘의 역사 문화적 경관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따라서 SH공사는 건축계획을 수정해 다시 심의를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지난 15일 SH공사는 다시 세운 4지구에 고층의 특급호텔을 짓겠다는 안을 발표하고 문화재청에 심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새로 제출된 SH의 계획안도 건물이 노출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음에도 문화재청에서 통과 여부를 놓고 논의에 들어가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문화정책연구소의 황평우 소장은 “만약 이번 계획안이 문화재청의 심의를 통과한다면 종묘의 주변 경관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역사적 가치가 공존하는 공간=이번 세운상가 4지구 재개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화재의 주변경관’이란 한 문화재의 주변에 역사적, 미적, 기능적 의미를 가진 총체적인 공간을 지칭하는 말이다. 기존에는 문화재 자체만을 보존하는 데 치중했다면, 최근에는 그 주변의 환경까지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화재의 역사적 의의가 단순히 문화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의 주변 환경에도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 산하의 자문기관인 문화재위원회의 강동진 교수(경성대 도시공학과)는 “문화재라는 개념은 단순히 단위대상물만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며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선 문화재 주변의 역사적, 미적 의의를 가지고 있는 주변 경관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대의 고층건물이 문화재에서 바라본 풍경을 침해하게 되고 종묘의 역사 가치를 훼손한다고 볼 수 있다. 강동진 교수는 “세운상가 4구역에 경관을 해치는 높은 건물이 들어설 경우 이들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강승 교수(충남대 고고학과·전 문화재위원)는 “서울 도심권의 경우 종묘, 경복궁 등 우리나라의 고건축물이 모여 하나의 역사적 경관을 이룬다”며 “고층 빌딩이 들어서면 종묘뿐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역사적 경관을 해치게 된다”고 말했다.

한편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취소될 가능성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례로 종묘와 같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었던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 계곡’이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취소된 경우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 도시유적이 잘 남아있었던 계곡에 현대식 다리가 건설되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에서 등록 취소를 결의한 것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커뮤니케이션팀의 김지현 대리는 “문화유산의 주변 경관이 훼손된다는 문제가 불거질 경우 유네스코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영향성 평가가 진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의 주변 경관, 왜 중요한가=문화재의 주변경관에 대한 보호문제는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유네스코는 2011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각국이 문화유산의 주변 경관을 보호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역사도시경관 보존 권고문’을 채택했다. 김 대리는 “세계 각국에서 문화재의 주변 경관을 보호할 필요성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문화재의 주변 경관 보호에 대해 한국의 인식은 부족한 현실이다. 강동진 교수는 역사적, 미적 요소를 가진 문화재의 주변 경관을 관리할 법적인 제도 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강동진 교수는 “파리나 런던의 경우 문화재 주변 경관에 대한 관리체계가 제도화됐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건물 높이를 제한하거나 디자인을 수정하라는 등 권고 규정은 있지만 그것을 필연적으로 따를 필요가 없다”고 법적 제도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한편 문화재의 주변 경관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앞으로 더 많은 논의가 깊이 있게 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준정 교수(고고미술사학과)는 “주변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건물의 높이나 규모 등을 규제하는 것이 개발 당사자들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이 되는 것도 사실”이라며 “어느 한쪽 편만 들기는 힘든 문제인 만큼 현실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의 문화재가 가진 역사적, 미적 의미를 이어나가기 위해 문화재의 주변 경관까지 보호하자는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번 세운상가 4구역 심의에도 이와 같은 관점이 반영돼 종묘의 문화경관이 보존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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