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시작 전 휴대폰을 꺼주세요.” 막이 오르고 주의사항이 전달됐다. 그런데 이 연극, 아무래도 수상하다. 안내를 하러 온 배우가 갑자기 자기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수다스러운 배우가 무대 뒤로 끌려간 다음엔 어느새 다른 사람이 나와 밑도 끝도 없이 노래를 부른다. 이상한 나라로 가고 있다는 내용의 이 노래는 가사 그대로 우리를 이상한 세계로 인도한다.

공연 「지극히, 퍼포먼스 (Quite a Performance)」의 막이 지난 13일(화) 두레문예관(67동)에서 열려 사흘간 무대에 올랐다. 인문대학 협동과정 공연예술학전공 소속 대학원생들이 만든 공연단체 ‘스누파 프로덕션’은 이번 공연을 통해 가장 일상적인 것들이 어떻게 연극이 될 수 있는지를 탐구했다. 연출 최희범 씨(공연예술학전공 석사과정)는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연기하지 않고 ‘진짜’를 보여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공연의 출발점이라 말했다. 그들은 4개월 가까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 답을 찾는 여정을 떠났다.

▲ 사진제공: 스누파 프로덕션

일상과 연극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는 그들의 가장 큰 화두였다. 우선 그들은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배우들에게는 공통된 과제가 주어졌다. ‘자신의 5일 치 식사 기록을 적어오세요’, ‘참을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시를 써오세요’. 똑같은 과제를 내줘도 표현방식은 각기 달랐다. 누군가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막춤을 추기도 하고, 어떤 이는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기획 김재영 씨(공연예술학전공·석사과정)는 “원작의 텍스트가 없었기에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자신들만의 소스를 마련하는 데 더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 사진제공: 스누파 프로덕션

이러한 4개월간의 준비 과정은 무대 위에서 꾸밈없이 드러난다. 연극에는 총 6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이들은 기존의 서사 전개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혼자 나와 자신의 기량을 뽐내기도 하고, 여럿이서 각자 다른 운동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한 사람이 낑낑대고 있으면, 다른 배우들이 그를 보며 마치 관객이 된 것 마냥 웃기도 한다.

가장 연극적이지 않은 소재에서 출발했던 이 연극은 역설적으로 가장 연극적인 것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무대 위에 일상이 재해석돼 올라오는 순간, 그 낯선 광경이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인사하기, 낑깡으로 공놀이하기, 두유에 시리얼 부어 먹기, 수학문제 풀기, 식사 후 양치질하기, 담배 피우기…. 외출할 때 옷을 고르고 입는 흔한 일조차 반복, 변주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새로운 재미를 느낀다. 그야말로 ‘일상의 재탄생’이다.

배우 박선미 씨(심리학과·13)는 “무대 위에서 나 자신으로 있어도 된다는 것이 상당히 많은 제약을 없애줬다”며 “연기를 하는 동안 ‘살아있다’고 느꼈다.”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관객 이채린 씨(독어교육과·13)는 “배우들이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는 모습이 부러웠다”고 느낌을 말했다. 다 같이 신나게 한바탕 뛰놀고 난 뒤, 마지막에 그들은 장기하의 노랫말을 빌려 이렇게 소리친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공연을 보고 난 뒤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 그래서 일상을 하나의 ‘지극한 퍼포먼스’로 만드는 것. 그것은 이제 남은 우리의 몫이다.

▲ 사진제공: 스누파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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