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5월 6일, 구치소 수감 중 얻은 부상으로 안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 병원 마당에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7층에서 떨어졌는데 외상이 거의 없이 내장이 다 파열된 상태였다. 자살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현장에선 주검을 둘러싸고 경찰과 유가족들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영안실에 주검을 안치하고, 양쪽 동의 아래 부검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경찰 1천여 명이 영안실 벽을 뚫고 박 위원장의 주검을 탈취했다. 이후 검찰의 부검 결과 발표는 다음과 같았다. “노동운동에 회의를 느껴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2014년 5월 17일,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노조 경남 양산센터 분회장이 강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생활고와 노조탄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진행 중인 단체교섭에서 노조가 승리할 때까지 자신의 시신을 안치해달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유언에 따라 조합원들은 주검을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장례식장 빈소에 안치했고 고인의 부모님도 장례 절차를 노조에 위임했다. 그런데 18일 오후 강남경찰서 경찰 240여 명이 장례식장에 들이닥쳐 고인의 주검을 확보해 구급차에 실어 보냈다. 가족장으로 치르겠다고 갑자기 마음을 바꾼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 측은 어머니와 노조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신속히 작전을 수행했다. 작별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고인의 주검은 모 화장터에서 쓸쓸히 재로 변했다.

공권력의 시신 탈취는 이제 과거의 일이려니 여겼다.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된 시신에 남아 있던 고문 흔적이 두려워 시신을 탈취, 화장해 버린 일을 비롯해 70~80년대의 숱한 의문사 시신 처리, 그리고 박창수 위원장 사건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권위주의 시대의 만행이라 생각했다. 여전히 은폐할 것이 있고,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는 것인가. 무엇이 두려워 1,20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하고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체포에 머뭇거리며, 무엇이 두려워 4천여 명의 경찰을 투입해 민주노총 사무실에 난입했는가. 신중해야 할 때는 신속하고 다급해야 할 때는 굼뜬 이 땅의 공권력.

지난 19일, 국제노조총연맹이 국제노동기구(ILO) 자료 등을 바탕으로 세계 139개 나라의 노동권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 세계 노동 권리지수에서 한국은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최하 등급인 5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OECD 국가 중,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최고 수준, 산재사망률은 1위, 사회복지는 최하 수준이다. 어디 노동뿐이랴.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제일 낮고 자살률은 9년째 1위를 기록 중이며, 언론자유지수에서는 작년보다 4계단 하락한 68위를 기록해 이명박정부 들어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퇴보한 이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한민국 사회는 ‘비정상’이다. 국가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선거 댓글, 간첩 증거 조작 등이나 일삼는 국정원, 전 총장 사생활이나 파고드는 검찰, 하나의 시민으로서 정치적 의사를 표명한 교사들을 징계하겠다는 교육부 등. 박 대통령님, 제발 ‘정상’적인 나라에서 살게 해 주세요.

장준영 간사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