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마 강사
정치학과

1987년 6월 10일이었을 것이다. 도서관 앞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열리는 시국 집회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랐다. 아크로폴리스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히 찬 것이다. 아크로폴리스 여기저기에 잡목이 있었지만 인파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 인원이면 8천 명이 된다느니, 1만 명이 된다더니 참석자들끼리 서로 가늠해보기도 했다. 당시 한 학년이 4천 명 정도 되었으니, 학생 2명 중 1명 이상이 집회에 나온 것이다. 그동안 아크로폴리스 집회가 수십 차례 있었지만 그토록 많은 학생들이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학내 집회가 끝난 뒤에는 집회에 나오지 못했던 학생들까지 포함해서 종로와 을지로, 퇴계로 등지의 거리로 쏟아져 나갔다. 1987년 6월 항쟁의 시작이었다.


그 해 6월은 정말로 뜨거웠다. 서울대생들은 시내 시위를 하기에 앞서 항상 아크로폴리스의 뙤약볕 아래서 사전 집회를 가졌고, 아크로폴리스의 잔디는 학생들의 발에 밟혀 자라날 여유가 없었다.


27년이 지난 요즘 아크로폴리스의 무성한 잔디를 보면 세월의 간격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학생들의 발길이 스쳐 간 아크로폴리스. 가만히 눈을 감으면 남자와 여자, 운동화와 샌들, 구두, 해진 신발과 새 신발 등 아주 다양한 종류의 신발들이 빠르게 왔다가 지나가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1987년 이후 27년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아크로폴리스를 밟는 신발의 수가 적어졌다. 아크로폴리스의 집회도 줄고 참여자도 부쩍 줄어든 것이다. 아크로폴리스를 밟는 신발은 그저 지나가는 행인의 것일 뿐이다. 다행히 아크로폴리스의 잔디는 본부 앞 잔디처럼 무성하게 자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아크로폴리스의 잔디는 서울대 학생들의 시국에 대한 관심과 반비례하려 성장한 것이다.


대학생들의 시국에 대한 관심이 감소하는 것은 사회가 그만큼 안정이 되었다는 좋은 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우리 사회 각계각층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게 된 것이리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 좀 이상하다. 언제부터인지 대학생의 목소리가 필요한 때에조차 대학생들의 목소리는 사라져버렸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 당시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대학생이 아니었다. 2008년 온 국민이 참여한 광우병 촛불시위를 촉발시킨 것도 중고등학생들이었다. 30대 이상 참여자는 많았지만 대학생들은 촛불시위 현장에 없었다. 최근 국정원 불법선거운동으로 서울광장에 촛불시위가 그치지 않고 있을 때에도 대학생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시민사회의 목소리는 커졌지만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대학생들 역시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학생은 ‘88만 원 세대’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한다. 정규직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학점을 비롯해 온갖 ‘스펙’을 쌓아야 하는 학생들, 시국에 대한 관심보다 개인에 대한 관심이 훨씬 높은 학생들, 인문교양이나 사회과학 서적보다 어학이나 경영, 법률 관련 서적에 더 관심이 많은 학생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에 누구보다 앞서 반응하는 학생들.


대학은 지성의 산실이라 불린다. 대학생들이 학문 활동에 몰두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성의 산실인 만큼 그 어느 집단보다 가장 먼저 우리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 잘못에 눈을 뜨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를 고치기 위해 자신의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 과거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대학생들로부터 우리 사회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기성세대는 다소 우려를 하면서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최근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스스로 책임을 부정하는 청와대, 무능한 정부 관료, 정권의 나팔수가 된 언론, 유가족까지 미행하며 사찰하는 경찰, 정권의 비호를 위해 종북몰이를 반복하는 여당. 이명박정부부터 시작된 우리 사회의 퇴행적 행태는 결국 시계추를 1987년 6월 항쟁 이전으로 고스란히 되돌려 놓았다. 그 과정에 한 가지는 더욱 뚜렷해졌다. 오로지 돈만 벌고 성공만 하면 된다는 ‘천민 자본주의’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 다시 아크로폴리스를 밟으며 기왕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스른 마당에 천민 자본주의의 족쇄에서 벗어나 ‘실천하는 지성’으로서의 대학생들은 언제쯤 돌아올지 몹시 궁금해진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