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학생 생활법률 ③ 명예훼손

누구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터넷은 표현의 자유가 만개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익명성의 가면을 쓴 일부 네티즌들의 ‘악플’이 명예훼손 등의 사회적 문제가 된 지금, 인터넷은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말해선 안 되는 곳이 됐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표현의 자유고 어디부터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것일까?

#사례1: 경제학부 양승웅 씨(가명, 21세)는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닉네임만 공개한 채 익명으로 자신의 소개팅 경험을 쓴 양 씨에게 ‘글 쓴 거 보니까 진짜 무식해 보인다’, ‘에휴 병X’, ‘왠지 못생겼을 듯’과 같은 익명의 악성 댓글이 달린 것이다. 양 씨는 악성 댓글을 단 이용자에게 한 차례 경고를 했으나 악플은 오히려 심해졌다. 화가 난 양 씨는 상대방의 아이디(ID)를 통해 신상을 알아낸 뒤 인터넷 게시판에 ‘OO대학교 OO학과 OOO은 지난달에 성추행으로 경찰서까지 갔다’라는 제목으로 허위의 비방글을 올렸다. 1주일 뒤 양 씨는 경찰서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는 전화를 받았으나 오히려 자신이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례2: 공대 석사과정 나혜령 씨(가명, 26세)는 얼마 전 동료 권석원 씨(가명, 30세)에게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평소 사이가 나빴던 동료 김악녀 씨(가명, 27세)가 카카오톡으로 권 씨에게 자신에 대한 험담을 심하게 했다는 것이다. 권 씨의 휴대폰을 통해 확인해보니 ‘나혜령은 술집을 나가서 성형 수술비를 마련했다’, ‘엄마가 집 나가서 가정교육을 못 받았는지 인성이 완전 바닥이다’와 같은 발언이 있었다. 알고 보니 김 씨는 권 씨 외의 다른 대학원 동료에게도 사적인 자리에서 나 씨에 대한 험담을 하고 다녔다.

#사례3: 대학생 정시인 씨(가명, 20세)는 대학생 새내기다. 입학하기 전, 학과대표 선배 조현재 씨(가명, 25세)로부터 MT 비용과 OT 비용, 학과 잠바 등의 명목으로 30만 원을 내라는 말을 듣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 해당 금액을 냈다. 하지만 OT와 MT를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 씨가 MT 비용 일부를 유용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조 씨는 경찰에 입건됐다. 화가 난 정 씨는 조 씨에 대한 횡령 의혹, 입건 사실을 다른 학우들에게 알리기 위해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조 씨를 풍자하는 시(詩)를 게시했다. 이를 본 조 씨는 정 씨의 글로 인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정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명예훼손 = 공개적인 곳 + 대상의 특정 + 사실의 적시

▲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명예훼손을 규정한 형법 제307조에 따르면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 쉽게 말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공개적인 장소에서(공연성), 한 대상을 콕 집어서(특정성), 구체적인 사실을 통해(사실의 적시) 사회적 평가를 저해시켜야 한다. 만약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망을 통해 명예훼손적 발언을 했다면 특별법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가 적용돼 일반적인 명예훼손에 적용되는 형법보다 더 강한 처벌을 받게 된다. 정보통신망을 통한 명예훼손은 전파성이 강해 피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또한 진실을 적시한 경우보다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을 때 처벌 강도가 더 세다.

사례에 직접 적용해보자. <사례1>은 양 씨가 익명으로 게시한 글에 악플이 달려, 양 씨도 허위 게시글로 비방한 경우다. 익명의 글쓴이인 양 씨를 대상으로 비방했을 때에도 특정성이 충족될까? 만약 닉네임이 아닌 양 씨의 실명을 거론하거나, 주위사정과 종합해 볼 때 양 씨를 지목하고 있다고 알 수 있는 경우에는 양 씨를 특정한 것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누리꾼들이 닉네임만 알 수 있을 뿐 주위사정을 종합해보더라도 해당 닉네임으로 글을 올린 사람이 현실의 ‘양승웅’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다면 특정성이 부정되고 양 씨에 대한 명예훼손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명예훼손죄는 그 사람이 느끼는 개인적 명예가 아닌, 남들이 양 씨를 바라보는 사회적 명예를 보호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한편 구체적인 정보가 아닌 ‘에휴 병X’, ‘무식해 보인다’와 같이 단순히 모멸적인 언사를 사용한 것은 명예훼손의 구성요소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 않는다. 대신 형법 제311조 모욕죄의 ‘모욕’에는 해당될 수 있다. 때문에 명예훼손과 마찬가지로 공연성, 특정성 요건을 갖췄다면 모욕죄가 성립한다.

그에 비해 양 씨가 상대방의 신상을 이용해 인터넷 게시판에 허위글을 게시해 비방한 것은 명예훼손을 피하기 어렵다. 인터넷 게시판은 공개된 장소라는 점(공연성), 실명을 거론했다는 점(특정성), 허위사실인 ‘성추행 혐의’를 유포했다는 점(사실의 적시)에서 명예훼손의 요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공개적인 장소가 아니라도 공연성이 충족될 수 있다

공연성은 반드시 공개적인 장소에서만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몇몇 사람만 있는 자리에서 비방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이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비방을 들은 사람이 피해자와 보호관계, 예를 들어 친한 친구 관계나 부부 관계라면 전파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아 공연성이 부정된다.

<사례2>에서 김 씨는 공개적인 장소는 아니지만 다수에게 나 씨에 대한 험담을 했기 때문에 나 씨에 대한 사회적 명예는 훼손됐다. 핵심은 험담을 들은 직장 동료가 나 씨와 특별한 보호관계에 있는가 여부다. 만약 보호관계가 없다면 공연성이 충족되기 때문에 김 씨는 명예훼손죄로 처벌된다.

명예훼손이 항상 위법한 것은 아니다

허위사실이 아닌 진실을 말하더라도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을까?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진실이더라도 사회적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하지만 진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을 언제나 처벌한다면 사회의 비판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 형법에선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형법 제310조에 따르면 ‘공익’을 달성할 목적으로 ‘진실’을 적시해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엔 위법성과 공익을 저울질해서 공익이 더 크다면 ‘위법하지 않은 명예훼손’이 성립한다.

한편 시와 같이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사실을 적시했을 때도 명예훼손의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 사실을 적시하는 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사례3>에서 정 씨는 학내 커뮤니티 사이트에 조 씨의 횡령 의혹을 풍자한 시를 올렸다. 한정된 사람들만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라도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으면 공연성이 충족된다. 조 씨에 대한 진실한 사실을 시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했어도 주위사정을 종합해볼 때 조 씨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면 특정성과 사실의 적시에 해당된다.

그럼 정 씨는 꼼짝없이 명예훼손으로 처벌받게 될까? 정 씨의 행동이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인정되면 위법하지 않은 명예훼손이 돼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익은 반드시 국가적 이익에 한정 지을 필요가 없고 특정한 사회 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 씨가 게시한 글은 다른 학우들을 위한 글이라는 점에서 공익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데다 게시글의 내용이 진실하기 때문에 정 씨는 무죄다.

 

감수: 인권센터 이혜원 변호사 wolly9@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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