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발체제의 이면을 살펴보다
중국 개혁개발체제의 이면을 살펴보다
  • 박치현 기자
  • 승인 2014.05.31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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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행사] 중국연구소 창립 10주년기념 학술회의

지난 23일(금) 아시아연구소(101동)에서 「중국 개혁개방체제의 사회·문화적 성격과 변화」를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렸다. 현대중국학회와 중국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학술회의는 중국연구소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것으로 한국의 중국 연구자들이 한데 모여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를 소개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이 회의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국가였던 중국이 겪은 구조적 변화와 이에 따라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중국의 대응방식이 논의됐으며 그 방식이 한계를 갖는다는 점이 공유됐다.

첫 발표를 맡은 장영석 교수(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는 한 사회의 구조가 그 구성원들을 제약하면서 동시에 구성원들의 반응에 의해 형성된다는 이중성을 언급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이 이중성에 따라 중국의 개혁개방이 가져온 거시적인 변화는 중국 인민들의 사회적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그들의 미시적 변화에 의해 재구성된다. 따라서 그는 중국의 현재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선 개혁개방체제로의 이행이 야기한 구조적 변화와 이에 대한 사회의 미시적 대응이 무엇이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단위체제로 보는 거시적 변화

이어진 발표에서 백승욱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는 ‘단위체제의 해체’를 주제로 중국 개혁개방체제의 거시적 변화를 설명했다. 백 교수에 따르면 ‘단위체제’란 개혁개방 이전에 “중국 노동자들의 생활과 재생산의 조직적 형식을 지칭하는 용어”로 “도시와 농촌을 이원화하고, 이동을 최소화하는 조건하에 단위 내에서 안정적인 사회 관리 체제를 수립하고, 사회 관리의 책임 대부분을 국가로부터 단위로 이전한 체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즉 행정구역 내에서 도시와 농촌은 따로 관리됐으며 상호 이동도 제한됐다.
이런 단위체제는 개혁개방 전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기반인 자조·자립을 강조하는 성격이 컸다. 우선 중국 국내경제는 시장원리가 아닌 관료적 방식에 의존했기에 손쉬운 통제를 위해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이 제약됐다. 또 당시의 중국경제는 세계경제와 분리돼 작동되고 있어 국제적인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한편 단위체제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영역으로 ‘단위’를 유일한 정치적 공간으로 삼는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 특징을 이해하려면 단위체제가 ‘문화대혁명’을 통해 정치적 의미를 획득한 과정을 살펴야 한다. 자본주의 정책을 타파하고 계급정신으로 재무장하려 했던 문화대혁명 시기에 혁명의 물결은 지역적 단위를 넘어서 광범위하게 진행됐고 이를 주도했던 노동자 계급이 주요 정치적 주체로 부상했다. 이를 두고 백 교수는 농민들이 주 구성원이던 중국에서 노동자가 최초로 실체를 얻게 됐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의 기간 동안 벌어진 정치적 억압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상처는 단위를 넘어선 대규모의 정치 행동에 대한 트라우마를 낳았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혁명 이후 사회 갈등의 조정이 일어나는 공간은 단위로 제약됐다. 또 문화대혁명을 통해 획득된 노동자로서의 계급적 권리는 단위의 틀 안에 축적됐지만, 단위 내의 개개인의 권리는 혁명 중에서도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 단위만이 유일한 정치공간으로 남았다.
그런데 개혁개방 이후 해외로부터 유입된 자본과 이에 따른 경제부문의 증가는 단위 바깥에서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을 활성화시켜 단위체제의 약화를 야기했다. 또 중국경제는 세계경제에 녹아들어갔고 그 결과 자립적 요소를 강조하는 단위체제가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다. 다른 한편 단위체제가 해체된 상황인 ‘포스트단위체제’에서는, 단위를 대신할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 확보되지 못했다. 백 교수는 개혁개방으로 인해 단위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 노동자들은 “단위가 보장하는 집단적 권리로부터 배제되는 동시에 개인적 권리의 보장으로부터도 배제된다는 문제를 지닌다”고 말했다.

미시적으로 나타난 문제점들

백 교수가 거시적인 시점에서 중국의 변화를 설명했다면 윤종석 박사(사회학과)와 이현정 교수(인류학과)는 중국의 개혁개방체제로의 이행이 어떤 미시적 현상을 가져왔는지 분석했다. 윤 박사는 농업, 농촌, 농민에게서 나타나는 삼농(三農)문제에 주목했다. 삼농문제는 농촌에서 농민이 농업에 종사했던 단위체제 내에서는 통합된 문제였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도입과 단위체제의 약화로 농민공 즉 농민의 신분을 가졌지만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비(非)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늘어났다. 그럼에도 농민 신분을 나타내는 ‘호구제도’는 사라지지 않고 지속돼 농민공과 도시노동자 간의 차별이 형성되는 문제가 생겼다. 이에 더해 그는 도시와 농촌 간의 빈부격차, 농촌의 열악한 인프라 등이 개혁·개방 이후의 삼농문제를 한층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 이 교수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 농촌에서 보고되는 여성의 높은 자살률을 분석해 중국의 변화가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발표했다. 그는 농촌 여성의 자살에 대해 가부장적 억압, 도농 간 빈부격차, 이웃의 자살이 주는 영향, 우울증 등 정신질환의 관리 부족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음을 지적했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농촌 여성의 자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의 해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태도는 국가 정책인 개혁·개방이 야기한 빈부격차와 이에 따른 상대적인 박탈감 등의 부작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원인을 개인에게 돌림으로써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고 평했다.

이행기의 중국 그 '모호함'의 길에서

단위체제의 해체는 단위가 담당하던 사회기능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문제를 일으키지만, 아직 단위체제의 특성이 여전히 남아있어 이를 완전히 대체할 체제가 도입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도농의 지역적 분리가 이뤄졌지만 ‘농민공’이란 표현이 시사하듯 농민과 노동자의 구분은 여전하며, 국제적으로도 세계경제에 편입된 중국이지만 여전히 자본조달의 상당 부분이 시장이 아닌 정부로부터 이뤄지는 등 단위체제의 특성이 잔재하고 있다. 백 교수는 결국 “포스트 단위체제는 단위체제의 특성이 일정하게 유보되는 이중 체제”라며 “문제를 봉합할 조직적 구도가 불분명함에서 생기는 불안정성이 두드러진다”고 밝혔다.

마지막 세션에서 박충환 강사(경북대 문화인류학과)는 이런 불안정성을 “사회주의 정신과 자본주의 정신의 어색한 동거”라고 평했다. 예를 들어 과거 사회주의 정신의 상징으로 남아있던 도시 ‘따자이(大寨)’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은 ‘따자이’의 자력갱생·고군분투의 정신을 자본주의적 기업가 정신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따자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평등주의’, ‘공동체주의’ 등 다른 사회주의적 정신은 자본주의의 영리추구를 비판하는 근거가 된다. 이런 이중성은 마치 단위체제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고 포스트단위체제에 녹아있는 것처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얽고 있다. 단위체제의 통제가 약화됐지만 대안적인 재생산 체제가 형성되지 못한 것처럼 중국은 사회주의적 가치를 잃었으나 자본주의의 단점을 견제할 복지체제를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박 박사는 따자이가 “자본주의 정신을 구현하는 장소로 탈바꿈할 것인지” 또는 “사회주의 정신을 구현하는 박제화된 장소로 남아있을 것인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이 서있는 길은 단지 이런 갈림길만은 아닐 것이다. 중국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체제를 표방하며 급격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어,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이 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모호함’이 세계를 휩쓸던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다. 거시적 지표에서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신자유주의적 변화는 ‘모호함’이 대처하지 못하는 빈 공간으로 스며들어 빈부격차에서 비롯한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복합적인 과정을 겪고 있는 중국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선, 하나의 이론적 틀을 강조하는 단편적인 시각을 버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 박사는 “중국인들의 사회적 삶과 문화적 가치체계에서 발생한 변화의 미세한 결들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그것을 거시적 구조와 과정이라는 맥락 속에서 총체적·학제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거시적으로 명시적 제도만을 탐구하거나 미시적으로 텍스트만을 해석하는 좁고 소극적인 시야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학술 회의는 이런 시야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자세로 실증적 탐구를 수행하려는 노력이 돋보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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