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시’의 운명이 위태롭다. 지난달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폐해를 근절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공무원 채용 제도의 큰 변화를 예고했다. 예고는 현실이 됐고 정부는 지난달 23일 행정고시로 불리는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5급 공채)의 선발인원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민간 경력자의 선발 인원을 늘려 현재 4대 1인 양자의 채용 비율을 2017년까지 5대 5로 조정하겠다고 했다. 1950년 고등고시제도가 시행된 지 64년만에 고위직 채용제도가 변화의 기로에 선 것이다.

▲ 그래픽: 강동석 기자 tbag@snu.kr


그러나 대국민 담화를 통한 갑작스러운 발표는 논란을 일으켰다. 안전행정부는 직무별 채용 시스템을 구축해 궁극적으로 고시를 폐지하겠다는 개략적인 방향 외에 구체적인 축소 규모 및 과정은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5급 공채 제도가 폐지돼야 관피아를 뿌리 뽑을 수 있다는 주장과 5급 공채의 폐지는 도리어 민관유착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 그래픽: 강동석 기자 tbag@snu.kr

폐지나 존속이냐, 갈림길에 선 5급 공채

현행 5급 공채제도는 공직사회의 비전문성과 폐쇄성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많은 전문가들은 특히 5급 공채시험의 타당성이 낮다고 입을 모은다. 시험의 타당성은 응시자의 업무능력이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되는지를 의미한다. 때문에 시험의 타당성이 높아야 시험 성적이 좋은 사람이 실제 업무능력도 좋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암기 위주의 필기시험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5급 공채는 실제 각 직위에 필요한 전문성과 실무경험을 반영하지 못해 타당성이 낮다. 이종수 교수(연세대 행정학과)는 “5급 공채의 경우 시험을 통해 평가하는 내용이 실제 업무와 상관성이 적다”며 “시험을 준비하는 3, 4년이라는 기간이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실제 경쟁력을 키우는 데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짚었다.

5급 공채가 ‘그들만의 리그’로 이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매년 대규모의 인원을 일괄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에서는 전문성이나 다양성보다 기수와 서열이 중시된다. 김재일 교수(단국대 행정학과)는 “5급 공채 출신들이 부처 내에서는 선후배끼리, 범 부처 차원에서는 동기들끼리 연을 맺어 하나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며 “선의의 경쟁보다는 이번에는 몇 기가 승진할 차례가 됐다는 식으로 자리를 나눠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 결정을 담당하는 고위 공직자가 승진이라는 공통 욕구를 가진 하나의 거대한 이익집단을 형성하면서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높아진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까닭에 5급 공채제도를 축소 혹은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이미 외환위기를 거치며 고시 출신 관료들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전문성 부족이 도마에 올랐고 이에 김대중정부는 1999년 공무원 인사개혁을 추진했다. 핵심은 공직사회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고 실․국장급 직위를 외부 전문가에게도 개방하는 것이었다. 2010년엔 신규 채용되는 5급 공무원의 최대 50%를 민간 전문가로 충원하겠다는 방안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외교부장관의 딸이 외교부 5급 특채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져 무산됐다. 이번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제시된 5급 공채 축소 방안 역시 공직 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온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무사안일주의를 타파하려는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5급 공채 폐지, '관피아'의 해결책일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민간 전문가 채용제도를 도입한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 진재구 교수(청주대 행정학과)는 “외부 인사 임용을 통해서 경쟁 체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서열문화와 같은 조직의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며 “민간 채용 제도는 공직의 충원 경로를 다양화해 관료들의 색깔을 다양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민간 전문가 채용제도의 도입 취지는 인정하지만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급 공채를 축소하고 민간 전문가의 채용을 늘리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5급 공채제도를 폐지해야 관피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측은 관피아의 원인을 일괄 채용에서 비롯된 기수 문화에서 찾는다. 선배 기수가 끌어주고 후배 기수가 밀어주는 기수문화는 고위 공직자가 퇴직 후에도 자신이 몸담았던 부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김재일 교수는 “소위 고시 커넥션 없이는 공무원 혼자서 유관 단체의 편의를 봐줄 수가 없다”며 “일괄 채용이 우리가 소위 이야기하는 관피아의 근원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5급 공채의 폐지는 관피아 문제의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관피아 문제는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을 허술하게 관리한 탓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고위 공무원은 퇴임 후 민간 기업이나 정부 부처 산하의 각종 협회에 고문 등으로 재취업 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재취업 후 해당 기업이나 협회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완화시키거나 정부 정책을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사실상의 로비스트로 활동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퇴직한 고위 공무원은 재취업 전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돼 있으나 지난 6년간 1,819건의 심사 중 7.4%만이 취업 제한 판정을 받았다. 이종수 교수는 “퇴직 관료의 재취업 심사를 같은 관료가 주도하다보니 심사는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심사를 거치지 않았을 때의 처벌 수준도 미약하다”며 “두 가지가 보완되지 않으면 관피아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준비 안 된 공채 축소, 예상되는 부작용

현재 정부는 민간 전문가 채용 제도로 크게 ‘5급 민간 경력자 일괄 채용 시험(민경채)’과 ‘개방형 직위제’(실․국․과장급 이상)를 실시하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5급 공채 선발인원을 축소하는 대신 민경채와 개방형 직위제의 선발 인원을 늘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경채와 개방형 직위제의 운영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두 제도를 도입한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우선 민경채가 5급 공채의 한계로 지적된 낮은 전문성을 보완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민경채는 직위별로 전문가를 채용해 행정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따라서 해당 제도의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직무 분석을 통해 해당 직위에 요구되는 책임이나 업무의 난이도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각 직위에 대한 직무 분석과 평가가 선행돼있지 않기 때문에 민경채 선발 인원부터 늘리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개방형 직위제 역시 취지와는 달리 우수한 민간 전문가가 공직에 지원할 유인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개방형 직위제는 실․국․과장급에 해당하는 고위 공직의 문호를 개방하고 민간과의 교류를 통해 공직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민간 부문에 비해 보수가 적고, 계약직으로 임용되는 탓에 신분이 불안정해 유능한 인재들이 지원을 꺼린다. 게다가 조직 내 고시와 비(非)고시출신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문화는 채용된 민간 전문가들이 공직에서 이탈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종수 교수는 “애초에 우수한 인재가 지원할 인센티브가 낮은데 민경채와 개방형 직위를 확대 시행한다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전문성과 개방성이 얼마나 높아질 것인지 보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민간과 공공부문에서 요구되는 업무방식이나 가치관의 차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민간부문에서 오래 근무한 지원자들은 부처 간 혹은 부서 간 협업이 요구되는 업무방식이나 공익과 봉사정신으로 대표되는 공공부문의 가치관을 생소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진재구 교수는 “지원자들은 업무 현장에서 내가 공익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공직자로서의 자세를 심어주는 교육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부작용들을 방치한 채 일단 민간 채용비율부터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도리어 민관유착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발표에서 민간채용제도의 운영과정에서 드러난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 교수는 “민간채용이 잘못 운영되면 민관유착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 며 “정부에서 2, 3년 일한 경력을 활용해 다시 민간부문으로 돌아가 사적 이익을 위해 쓰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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