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돌아다니는 시각'전

모아(MoA) 앞 공터엔 ‘돌, 아, 다니는, 시각’이란 글자가 적힌 하얀색 직육면체들이 저마다의 자리에 뽐내고 있다. 그들은 정지해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기에 어딘가로 이동하는 듯 보인다.

바야흐로 ‘노마드’의 시대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요즘,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기존의 거주하던 공간에서 탈출해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난다. 이런 현대판 ‘노마드’의 생활 방식을 ‘노마디즘’이라고 하는데, 철학자 질 들뢰즈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탈피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사유의 확장을 목표로 변신하는 것까지도 ‘노마디즘’으로 정의했다. 과거의 ‘물리적 이동’에서부터 현대의 ‘문화적 노마드’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은 ‘돌아다니는 시각’ 전이 모아 미술관에서 지난달 25일(일)까지 열렸다. 한국, 독일,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22명의 작가가 ‘이동’이라는 주제를 갖고 작품을 선보였다. 작품은 디자인에서부터 회화, 건축, 영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전시는 ‘노마드의 기원 격인 보부상’의 물품을 살피는 첫번째 섹션 ‘이동-과거와 현재’에서 시작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등짐을 멜 때 사용하던 ‘지승멜빵’과 수납용 ‘채상’이 눈에 들어온다. 빛바랜 붉은색을 띤 물건들은 이동을 삶에 지고 살아가야 했던 보부상의 삶을 생각해보게 한다. 두 번째 섹션인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에는 리케 일도우 드 용의 ‘접이식 숙소’가 전시장 한 켠에 서있다. 이 작품은 ‘접기’와 ‘펼치기’라는 변신의 기본원리를 통해 들뢰즈가 주장하는 공간의 ‘가변성’을 보여준다. 병풍처럼 세워져 있던 작품을 펼치면, 그 속에 숨겨졌던 침대와 침구류가 등장해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토마스 글리슨의 단편 다큐멘터리 ‘집 이야기’는 조립식 주택이 새로운 정착지로 이동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집을 자동차에 얹어 도로 위를 달리는 장면은 우리가 집에 대해 갖고 있던 ‘안정성’과 ‘고정성’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한다. 이동하는 집에서 바라본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우리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쉬빈의 ‘걸어 다니는 집’(그림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 여기서의 집은 육각 기둥 모양의 몸체를 갖고 있으며 6개의 다리를 움직여 자체적으로 이동한다. 덕분에 이 집은 건물과 대지의 소유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또 태양열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고, 빗물을 저장해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도시기반시설 없이도 자체적으로 생활이 가능하다.

▲그림①, 걸어 다니는 집

 세번째 섹션인 ‘사유와 공간의 확장’에서는 새로운 공간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꼭 물리적인 이동이 필요하지 않다는,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노마디즘’에 의거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노정민 학예연구사는 “작품이 제시하는 ‘노마디즘’의 ‘시나리오’를 통해 관객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새롭게 하고, ‘문화적 노마드’의 삶을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섹션3의 취지를 밝혔다. 이준의 ‘말하는 나무’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나무는 인간사회의 다양한 메시지를 해석하는 주체가 되어 그 이야기들을 나뭇잎으로 변환한다. 나뭇잎은 온라인상의 ‘뉴스 헤드라인’과 ‘실시간 검색어’를 실시간으로 추출하여 옮겨온 글자이다. 이 잎들은 때로는 속삭이고 때로는 아우성치면서 격변하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를 이동 중인 사람들에게 소리로 들려주는 역할을 한다.

차민영의 ‘Missing Link’는 6개의 서류가방이 한 작품을 이룬다. 이 안에는 각각 성, 추적, 엘리베이터, 스튜디오, 거울의 방, 호텔 등 각기 다른 주제를 담은 공간이 펼쳐져 있다. 일상적 공간들이 가방 안에 들어감으로써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독자들은 직접 가방에 부착된 렌즈로 가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독립적으로 보이는 공간들 사이에 ‘잃어버린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하나의 시나리오로 만들어내는 것 또한 관객의 몫이다.

이문환, 정영욱은 여행을 즐기고 그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물건을 기획했다. ‘시드’란 이름의 이 기기는 풍선처럼 하늘을 떠다니며 목적지로 길을 안내하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그림②) 혼자서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추천 장소를 소개하기도 하는 것도 ‘시드’의 일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그 장소의 이미지를 다시 볼 수도 있고, 공유기능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그 여행에 대한 기억을 함께 나눌 수도 있다.

▲ 그림②, 시드

 전시명의 ‘시각’은 감각으로서의 시각(視覺)이 아닌, 사물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자세인 시각(視角)을 뜻한다. 전시의 부제인 ‘이동, 그리고 새로운 시나리오’에서 ‘시나리오’란 바로 이 시각을 일컫는 말이다. 작품들이 제시하는 이동에 대한 다양한 시각은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의 틀과 시공간의 틀을 제공한다. 노정민 학예연구사는 “전시작품들은 우리의 생활과 삶에 대한 사고의 폭을 넓히고,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라며 전시의 최종목표를 밝혔다. 기술의 발전으로 ‘이동한다’는 것의 한계가 희미해져 가고 있는 요즘, 미래의 우리는 이런 다양한 시나리오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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