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목 교수
언론정보학과

2011년 가을, 후지산(富士山) 기슭의 야마나카코(山中湖)는 늦은 오후의 햇살로 반짝이고 있었다. 호수 주변의 울창한 삼나무 숲은 인적도 없이 고요했지만 도쿄(東京)대학 세미나 하우스 내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전면에 걸린 스크린에 대지진의 참상을 보도하는 TV뉴스를 보여주며 이시다(石田) 교수는 말했다. “3.11 동일본 대지진으로 우리 일본인은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인생의 행로를 결정짓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인들은 원자력 발전은 말할 것도 없고 전후 일본 사회가 유지해온 ‘매뉴얼 일본’에 대한 생각을 재고하기에 이르렀다.

비슷한 예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국 본토는 남북전쟁 이후 140년 동안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적으로부터 공격당한 적이 없었다. 그런 미국의 심장부라 할 뉴욕과 워싱턴이 알카에다의 테러 공격을 받았으니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미국 현대사를 9.11 전(前)과 후(後)로 나눌 정도로 미국인들의 삶과 의식에 큰 영향을 준 이 사건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논란 많은 ‘애국법’(Patriot Act)을 제정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세계를 이른바 테러세력과 문명세력으로 구분하며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에 나선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이나 9.11 테러와 같은 사건이 우리에게도 발생했다.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6.25전쟁 이후 한국인이 겪은 최대의 참극이다. 사망자 수에서는 501명이 희생당한 1995년의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비극성과 문제의 심각성은 훨씬 심하다고 본다. 우선 302명의 희생자 가운데 대부분이 꿈같은 수학여행 길에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버린 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이 아침 선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차디찬 물속의 원혼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원통하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기업의 탐욕과 우리 건설업계의 고질적 관행 문제로 치부할 수 있지만,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 시스템의 구조적 약점들과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총체적으로 빚어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과거 1960년대나 70년대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최소한의 변명이라도 가능하겠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IT기술을 자랑하는 OECD국가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한류(韓流)다 뭐다 하며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고 뿌듯해한 우리의 자부심이 엉터리였음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세월호 참사를 빚게 만든 원인들, 즉 정부의 무책임과 공무원의 무사안일주의, 업계의 부조리와 관(官)과의 유착, 부도덕한 기업의 탐욕, 직업윤리 실종 등이 비단 해운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60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대한민국의 ‘불균형 성장’이 그 민낯을 생생하게 드러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절체절명의 역경을 어떻게 성장의 계기로 삼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진다. 한국은 20세기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다는 칭송을 받았으나 진정한 선진국으로 보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면밀히 점검하고 혁신하여 사회 전체를 선진국형으로 개조해야 한다. 안전 불감증의 사회를 안전 제일주의 사회로, 무원칙과 편법의 사회를 원칙과 정도(正道)의 사회로, 후안무치의 사회를 품격의 사회로 바꾸어야 한다. 이는 대통령의 사과와 정부 조직의 개편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의식과 행동이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다.

내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49일째다. 우리 풍습에 따르면 49재는 죽은 이의 영혼을 떠나보내며 명복을 비는 날이다. 희생자 302위 영령들의 명복을 충심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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