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모아미술관 '가면의 고백'전

본래 고백은 나의 은밀한 속마음을 타인에게 털어놓는 행위다. 그 ‘내밀함’이 고백을 하는 자와 받는 자 간의 긴밀한 연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SNS 공간이 확대된 지금, 우리의 고백은 과연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정작 우리는 내 옆의 친구보다도 사이버상의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생활을 보여주지 않는가? 또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지는 않는지.


이전과는 달라진 현대사회의 고백을 담아낸 ‘가면의 고백’전이 9월 14일까지 미술관 MoA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가짜 사건을 고백하는 자’와 ‘고백을 엿보는 자’의 두 개의 섹션으로 나눠 총 42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기이한 인형이 관객을 맞이한다. 겉과 속이 뒤집힌 인형은 ‘글로브’와 ‘구피’와 유사하지만, 본래의 매끈함은 온데간데없고 지저분한 솔기가 노골적으로 나 있다. 관객은 이들과 마주하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는 매끄러운 포장 뒤에 가려진 추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렇듯 정문경의 ‘Evolg-part2’와 ‘Yfoog’(그림①)는 거꾸로 읽어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 그림①, 정문경, Yfoog,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1

불편함을 뒤로하고 첫 번째 섹션에 들어서면 ‘가짜 사건을 고백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서 ‘가짜 사건(Pseudo-event)’이란 다니엘 부어스틴이 만든 용어로, 완전한 거짓이 아닌 진실에 기반을 두고 의도적으로 조작된 사건을 의미한다. 지루한 일상이 SNS 공간에서 행복해 보이게 편집되듯, 우리 시대의 ‘진실’은 어딘가 과장되고 왜곡돼 있다.


김아영의 ‘모래 욕조 속에서 발견된 영국인 교사 2007.3.28’은 기사에 나온 끔찍한 사건을 새롭게 짜깁기한다. 이 과정에서 사건의 잔혹함은 무뎌지고, 오히려 건조하게 재구성된 사건이 떠오르게 된다. 여러 진실이 몽타주 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사건이 갖던 진실의 전말은 온데간데없어진다.


이강희의 ‘수영장 2010’(그림②)은 흑백의 대비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간인 수영장에서조차 사람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지만, 곧 그들은 수영장도 일상생활만큼이나 규율의 압박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인지 포즈를 취하고, 신체 부위를 뽐내고 있는 그들의 표정은 어딘가 지루하다. 여기서 수영장은 곧 SNS라는 뉴미디어를 대변하는 공간이다. 작품 속 사람들의 권태로운 표정도 금세 SNS 공간에 회의감을 느끼는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 그림②, 이강희, 수영장 2010, 종이에 잉크, 130x162cm, 2010

두 번째 섹션에서는 ‘고백을 엿보는 자’를 다루고 있다. 첫 번째 섹션이 노출증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두 번째는 노출을 엿보는 관음증에 관한 이야기다. 조나현 학예연구사는 “가면의 고백 전시는 미디어상의 고백의 특징에 집중한 전시”라며 “고백하는 자의 심리와 더불어 그러한 고백을 엿보고 싶어 하는 심리 또한 살펴보고 싶었다”고 이 섹션의 취지를 밝혔다.


강민숙의 ‘Someone We Know’(그림③)는 제목과는 대조적으로 ‘알 수 없음’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흰색 천으로 뒤덮여있는 모양의 이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러나 누군가가 들여다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면, 조각은 움직임을 인지해 멀어진다. 흰색 천은 우리가 SNS상에서 쓰고 있는 일종의 ‘가면’과도 유사한 역할을 한다. SNS 공간 속 누군가의 고백은 마치 무언가를 털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는 흰색 천으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관음증에 걸린 것 마냥 잘 보이지 않을수록 더 적극적으로 그 안을 엿보고자 한다.

▲ 그림③, 강민숙, Someone We Know, 혼합재료, 가변설치, 2011

KKHH(강지윤, 장근희)는 ‘Chasing K’를 통해 우리의 관음증적 욕망을 실현했다. 이 영상은 두 여자가 온라인 공간에서 알게 된 K씨를 오프라인에서 쫓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은 SNS 공간에 K씨가 남긴 흔적을 따라 K씨의 걸음걸이부터 시작해 K씨가 다니는 헬스장, K씨의 여자친구, K씨가 사는 곳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K씨를 만나지도 못하고,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다. 이는 온라인 속에서 누군가의 내밀한 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사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서는 본인에게 다가가지도 못한다는 ‘관계의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


에필로그 섹션에서는 황연주의 ‘장소감 연구’를 통해 우리 시대의 고백이 더 이상 내밀한 개인의 고백이 아닌, 다른 이들에 의해 변형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미디어라는 특별한 공간 안에서 개인의 추억은 타인에 의해 증식된다. 참가자들이 SNS에 올린 특정 장소에 관련된 추억이 다른 사용자에 의해서 첨가되고 수정되듯이 말이다.


조나현 학예연구사는 “SNS상의 고백은 과거의 고백처럼 개인의 진심을 담은 치유나 회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면’을 쓰고 만든 타인을 의식한 고백”이라며 “과거의 진실한 고백이 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서 어떻게 변화되는지 생각해 볼거리를 던지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소설 『가면의 고백』을 집필한 미시마 유키오는 ‘누구도 자신의 진짜 얼굴을 내놓지 못하기에, 고백의 본질은 불가능’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말처럼 이 시대의 새로운 고백법에서 진실의 자리는 이미 작아졌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우고 있는 것은 가짜를 꾸며내고,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새로운 욕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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