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으로 갔다. “늘”이라고 말하자 지난 3개월간 동선의 평균값에 맞춰 주방이 알아서 움직였다. 포트가 놓여 있는 수납장에 불이 들어오며 물이 끓기 시작했다. 세 달 동안 주방에서 한 일이라곤 커피 끓이는 것 외엔 없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추억의 노래가 듣고 싶어져 전신거울 앞에 섰다. 전신거울은 내 표정을 빠르게 스캔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노래를 틀기에 앞서 거울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사항들을 보여줬다. 내 머리카락이 작년보다 길어졌고 미용실 방문이 늦어졌다는 것, 그리고 최신 헤어스타일과 단골 미용실의 예약 가능한 시간을 표시해 줬다. 거울은 내가 학생 시절 자주 듣던 노래를 선곡해 틀어줬다. 거울은 머리카락에 대한 데이터는 헤어드라이어로부터, 노래에 대한 데이터는 스마트폰으로부터 전달받았다.

이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미래의 생활상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사람의 지시 없이도 사물들은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헤어드라이어와 스마트폰은 각자가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거울과 소통했다. 사물들이 알아서 소통하는 기술, 사물인터넷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모바일 포럼 커넥팅랩의 구성원 4명은 그들의 책 『사물인터넷』에서 “사물인터넷의 목표는 인간의 개입 없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물들이 알아서 소통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물인터넷 시장은 최근 급격히 성장하는 추세다. 올해 구글이 홈오토메이션 업체인 네스트랩스를 거액에 인수하면서 ‘스마트 홈’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계획을 내비쳤다. 2011년 안드로이드를 활용한 가정용 기기 연동 플랫폼인 안드로이드앳홈(Android@Home)을 발표한 구글이 네스트랩스 인수를 통해 홈네트워킹 관련 기술력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갤럭시기어나 구글글래스와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의 급성장도 눈길을 끈다. 감각을 가진 사물들이 증가하면서 사물인터넷의 하드웨어 기반이 다져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활발히 개발 중인 무인 주행이 가능한 자동차도 지혜를 갖춘 사물의 좋은 예다.

이렇듯 첨단 기술처럼 보이는 사물인터넷은 최근 등장한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석유 절도와 테러에 의한 시설 파괴를 감시하기 위해 송유관에 통신 모듈이 탑재된 센서를 심은 적이 있다. 1998년 사물인터넷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되고, 2년 뒤에 한국도로공사는 하이패스 시범 실시 계획을 발표했다. 하이패스는 차량에 부착된 카드 단말기와 톨게이트 안테나가 ‘소통’해서 통행료를 자동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사회 및 산업 인프라가 우선 구축된 후에 오는 것이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개인 서비스 및 상품이다. ‘자동으로 복용 시간을 알려주는 약병’ 등이 여기에 속한다.

사물인터넷의 다양한 분야 중 최근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건강관리 분야다. 저자들은 향후 사물인터넷 기술이 발전하면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진단과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건강 모니터링 제품 ‘스카우트’는 블루투스 동글을 몸에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혈압, 심전도, 스트레스 수준까지 다양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손목시계 형태의 ‘헬스트래커’는 사용자의 운동량이나 심박수, 피부 온도 등을 측정할 수 있다. 스마트 약병 ‘글로우캡’은 결핵과 같이 꾸준한 복약 관리가 필수인 질병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있다. 우유를 ‘밀크메이드’라는 제품에 따라두면 내부에 있는 PH 센서와 온도 센서가 우유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우유가 얼마나 남았는지, 상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알려준다.

사물인터넷은 단지 신기한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사물들이 연결되면 그냥 버려지는 정보에 생명력을 부여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전등을 켜고 끄는 것은 1차적 정보의 활용이다. 그리고 다른 정보를 융합해 사람이 언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안다면 새로운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편 사물인터넷이 수집한 빅데이터를 이용하면 더 효과적인 상품 기획이 가능해진다. 많은 기업은 빅데이터의 저수지로 SNS를 활용하고 있지만 SNS만을 통해 고객의 모든 면을 포착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대중성을 띠는 SNS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고, 실제 존재하는 이야기를 모두 하지도 않는다. 이미 가공된 정보보다는 사물인터넷이 가감 없이 전해주는 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의 정확한 수요를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사물인터넷의 시대가 오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인간의 개입 없이 사물들이 알아서 소통하는’ 사물인터넷을 위해선 먼저 기술적인 문제 해결이 필수적이다. 수백억 개의 장치가 인터넷에 연동되려면 네트워크상에 접속돼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주파수는 충분한 것일까? 사물인터넷 디바이스가 LTE 등의 이동통신망에 직접 접속 시에는 주파수가 추가로 필요하다. 기존의 주파수 발굴 계획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과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 엇갈린다. 사물들이 소통하는 데 필요한 전력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전력을 원거리에서 무선 전송하는 기술은 사물인터넷 디바이스에게 필수지만 현재 상용화된 무선충전 기술은 3cm 내의 근거리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사람의 개입 없이 사물들이 스스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플랫폼이 일치될 필요가 있다. 표준 플랫폼을 통해야만 다양한 사물들이 ‘표준어’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글래스를 통한 촬영이 사생활 침해에 해당한다며 착용자의 카페 출입을 금지한 사건은 앞으로 사물인터넷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문제를 제시한다. 사물인터넷에 연결된 사물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일상은 클라우드에 복사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해킹과 정보 보호, 사생활 보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누구에게 어떠한 정보가 전달되고 사용되는지를 본인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확보될 필요가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이 자국민의 전화통화 정보를 수집한 전과가 있듯이, 사물인터넷 시대에 모든 개인정보는 ‘공유’정보로 변화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정보를 독점한 개인이 이를 활용하여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사물인터넷 비즈니스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가령 누적된 수술 데이터와 3D 네비게이션을 활용해 원격으로 의사나 수술 전문 기계가 수술을 한다고 했을 때 거리낌 없이 수술대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또, 이때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 보험체계와 법안은 마련돼 있을까?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물인터넷은 그저 세련된 공정기술의 하나로 그칠 수도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G20 국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사물인터넷 준비지수 조사에서 1위인 미국에 이어 한국이 2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사물인터넷이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가 매우 클 뿐더러 아직 지배적인 세력이 등장하지 않았으므로 사물인터넷은 매력적인 차세대 성장 동력이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과 같은 사물인터넷의 핵심 기술 분야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은 취약한 형편이다. 또한 본격적으로 사물인터넷이 도입됐을 때 사회가 겪을 시행착오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정부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 사물인터넷 시대가 몰고 올 사회 변화에 대해 미리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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