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석사과정으로 대학원에 입학한 95년은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각종의 언설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박사논문을 마치고 졸업할 시점이 다가온 지금, 다른 사회적 이슈들에 묻혀 어느덧 이 문제는 위기에 수반되기 마련인 긴급함과 절박함이 사라진 채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듯하다.

 

생각해보면 석․박사 10년의 기간동안 국내․외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두 번의 대통령 선거, 두 번의 총선, 한일 월드컵, 남북정상회담, IMF 구제금융사태, 9․11 폭탄테러,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과 같은 사건들에 견줘볼 때 ‘인문학의 위기’쯤은 1990년대의 문턱에서 요절한 어떤 시인의 말처럼,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과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 더욱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에서 겪게 되는 상시적인 ‘경제위기’는 ‘인문학의 위기’를 위기의 ‘목록’에서조차 사라지게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 생각만 해도 신기한 것은 석박사 10여 년 동안 3년의 조교생활을 빼면 무직자 신세를 전전하면서도 특별한 곡절 없이 대학원을 마쳤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는 공부를 중간에 그만두기도 했고, 어떤 이는 유학을 가기도 했고, 아무튼 무슨 사정에서인지 대학원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뚜렷한 신념을 간직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면서 공부했다고 자부하지도 못한다. 고백컨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디며 살아온 나날이 많았다. 나는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글을 썼으며, 누구를 만났고, 무엇에 희열과 절망을 느꼈는지 세세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내 몸과 마음 어딘가에 그런 기억이 침전되어 있을 것이다.

 

 

원래 영문학을 업으로 삼은 것은 객기가 상당부분 작용한 탓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겠지만, 인문학도에게 ‘사회적 인간’으로서 거쳐가야 할 통과의례는 성장소설 주인공이 늘 그렇듯이, 공부의 장애물이자 발판이었다. 스핑크스 앞에선 오이디푸스처럼 알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듯한 해답을 힘들여 찾은 대가 내지 선물로 얻는 ‘자기앎’이란 세계와의 직접적인 대면에 다름 아니었다.

 

 

졸업이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는 장이라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갓 입학한 대학생이 된 기분이다. 졸업이 설렘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리라.


김재오

영문과ㆍ박사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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