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여민

국어국문학과·학사졸업

김승옥의「내가 훔친 여름」이라는 소설에서, 서울대 문리대 휴학생인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얘기하고 싶은 것은, 요컨대 내로라하는 친구들만으로써 법석대고 있는 곳이 저 거룩한 서울대학교라는 얘기다. 그래서 나의 문제는 생겼다. 둘러보니 모두 똑똑하기만 한 친구들뿐, 아무도 나보다 성적이 떨어져줄 부처님은 아닌 것 같고, … 그리하여 한 학년이 지나고 두 학년이 지나고 하는 사이에 교수님의 사랑을 차지하게 되는 몇 명을 제외하곤, 모두가 과거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열등생이 되어버리고…”

약간은 과장돼 있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나도 입학했을 때 모두가 나보다는 잘난 것 같은데 그렇다면 도대체 성적은 얼마나 나쁘게 나올 것인가 무척 걱정했다. 그런데 벌써 시간이 흘러 나름대로 괜찮았던 대학생활이었다고 자평하는 여유로운 5학년이 됐다. 그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대학시절을 떠올리면 가장 많이 살아나는 장면은 사람들과 무엇인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책 좀 읽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들어갔던 학회에서 논쟁하며 노는 것에 심취하다보니 학회장이 되어버렸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학생회장까지 맡아버렸다. 스스로 누굴 만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착각이었던 것인지 내가 변한 것인지 틈만 나면 사람들을 불러 풍류를 즐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모여서 세상 돌아가는 것에 분노도 하고, 문학을 소재로 아름다움을 논하기도 하고, 공동체에 닥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기도 하고 - “2말 3초에 없으면 안 생겨요”라는 징크스의 진실성에서부터,「설국열차」결말의 의미,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까지. 그게 무슨 주제든 끝장을 보았다. 오늘 이야기 다 못한 것은 내일 마저 하고, 말로 다 못한 것은 글로 풀기도 하고.

그 결과 내게 남은 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이 나에게,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 의미가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 의미를 나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확신. 그 확신이 있기에 성적이 다소 떨어져도, 취직에 직접 도움 될 것들을 챙기지 못했어도, 혹은 연애라도 실컷 한 것이 아님에도 이 사회에 만연한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는「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이렇게 썼다. “동물은 직접적인 육체적 욕구의 지배 아래서만 생산하지만 반면에 인간은 육체적 욕구에서 자유롭게 생산하고 그러한 욕구에서 벗어난 자유 속에서 진정으로 생산한다”라고. ‘사회가 공인한 백수’라는 대학시절 동안 이것저것 호기심을 가지고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 같아 뿌듯하다.

한편, 희망만을 품고 졸업하기엔 너무나도 뒤숭숭한 세상이다. 수백 명이 허무하게 죽었는데 그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고, 사람들은 서로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며 서로에 대한 혐오감만을 키워나간다. 조금만 더 대학이라는 안전장치 속에 숨어있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만 언제까지고 안주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사회인으로서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 나가려 한다. 지금까지 대학에서 쌓아온 것들이 단순한 ‘추억’이 아닌, 이 세상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할 근거가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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