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영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박사졸업

28살.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박사졸업을 한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생각했던 목표를 이루었으니 참 수고했다는 생각과 함께 학위과정 속 지나가버린 나의 20대 대한 연민도 함께 든다.

적성과는 관계없이 성적에 맞춰 입학한 학과에서 내가 한 것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해오던 것처럼 옆에 있는 동기보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한 노력뿐이었다. 전공 수업에서 비전을 보기보다는 옆에 있는 동기보다 더 똑똑하고 잘 났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학업에 대한 흥미요인도 있지만 남들보다 더 높은 학위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맘껏 기댈 수는 없었던 가정형편 그리고 고학력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성장환경 속에서 불확실한 고시나 돈이 많이 필요할지도 모를 유학, 전문대학원은 다른 세계 이야기였다. 서울대학교 일반대학원은 그 당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안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진학한 대학원에서는 연구를 통해 성과를 바로 보여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연구실에 대한 충성을 통해 ‘열심히 하는 놈’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고자 했었다. 그렇다보니 가족행사도, 친구들 모임도, 여가시간도 연구실 업무보다는 후순위였다. 먼저 잡은 약속들도 뒤에 생긴 연구실 업무나 일정으로 취소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주말이나 연휴에도 연구실에 있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가족은 일로 바쁘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내 생활을 이해해주었지만, 연구실에서 내가 ‘열심히 하는 놈’이 되어가는 사이 여러 지인들에게는 ‘주변사람 참 못 챙기는 놈’이 되어있었고, 20대에 만난 거의 모든 지인들을 친구로 만들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그런 대학원 생활이 지속되는 동안, 몇 편의 저널 논문을 포함한 성과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생각보다 빨리 학위모를 쓰게 됐다. 학위논문을 작성하며 내 대학생활 그리고 20대를 돌아보니 인간적으로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든다. 일꾼이 아닌 사람으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고민해보니 내가 받을 졸업장이 참 부질없게 느껴졌다. 연구할 능력이 있다고 증명해주는 그 서류 한 장이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졸업하고 곧 있으면 학교를 떠나야만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될 시기에 직면해있다. 자조(自照)를 통해 내 20대 그리고 대학생활에 대한 연민을 느꼈음에도 역설적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지난 시간 내가 ‘잘 보이고자 했던 일’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지금처럼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꽤나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고삐를 잡은 손을 놓기만 하면 천천히 갈 수 있는데 주저앉는 것만 같아 쉽지가 않다.

졸업과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고민은 깊어가지만,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시기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난 10년간은 삶의 방향에 대한 큰 고민 없이 확실히 보이는 길, 위험하지 않은 길을 따라서만 걸어왔다면, 어쨌든 지금은 최소한 그 길을 따라갈지 말지는 결정할 수 있는 시기니까 말이다. 치열한 고민 끝에 어떤 결정을 하든 부디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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