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참사는 모두를 절망에 빠뜨렸다. 진한 슬픔의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여전히 진도는 ‘슬픔의 땅’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날로부터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가 공유했던 좌절과 슬픔의 격렬한 감정들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비극의 재발을 막을 제도적 장치 마련과 함께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치유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이런 시기에 정치권에서 특별법을 둘러싸고 지지부진한 논쟁으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달 20일부터 23일까지 글로벌사회공헌단에서 주관한 ‘진도로 떠나는 소셜농활’ 3차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세월호 사건 이후 경제 위축과 인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진도 지역사회에 활기를 되찾아주기 위한 취지로 기획됐다. 여기 참여한 20여 명의 학생들은 농촌 일손을 돕고 어린이들에게 경제관념을 교육하고 지역 어르신들께 식사를 대접하는 등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어르신들과 함께 풍물놀이와 강강술래를 체험하기도 하고 진도의 관광명소 홍보 UCC를 제작하기 위한 영상도 촬영했다.

진도에서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진도의 아이들은 희망찬 모습으로 우릴 반겼고 어르신들은 지금까지 살아오신 모습 그대로 새벽 네 시에 밭으로 나가셨다. 고추는 실하게 익었고 깨밭 옆에는 깨가 높이 쌓였다. 고추 꼭지 따는 일을 돕는 동안 진도에서 70년 넘는 일생을 사신 할머니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날이 궂어서 고추가 잘 마르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고추 한 근에 6,500원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시는 할머니께, 진도라는 공간이 그저 슬픔의 상징으로만 남을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진도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냉혹하다. 세월호 사건 이후 진도를 찾는 관광객은 작년 대비 50% 이상 감소해 지금 상태가 지속될 경우 관광 및 숙박업소들은 도산 위기에 놓일 수 있다고 한다. 농수산물 판매수입도 줄어들고 있다. 실종자 수색과정에서 발사된 야간 조명탄 때문에 어업 수확량도 급감했고, 진도에서 수확된 농수산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판매량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도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슬픈 감정만을 기억하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진도를 ‘슬픔의 땅’에 가둬 두어서는 안 된다. 오래전부터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에게 진도는 언제나와 다르지 않은 삶의 터전이다. 진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진도가 예전처럼 풍요로운 삶의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는 진도 지역사회에 힘을 보태고 싶다면 진도를 방문해 아름다운 관광지를 둘러보고 진도의 농산물을 찾아 구매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은 깊은 상처를 대가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드러내 보였다. 많은 이의 희생을 바탕으로 얻은 교훈인 만큼 헛되이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진상을 규명하고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동시에,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기억해야 한다. 진도의 삶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그것을 기억하고 응원하는 것이 우리가 맡을 수 있는 하나의 역할이다.

이정수
미학과·10/글로벌사회공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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