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 이예슬 기자 yiyeseul@snu.kr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미국 부동산 시장의 극단적인 버블이 붕괴되며 시작된 금융위기는 이와 연계된 금융상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며 ‘리먼 브라더스’ 등 대형 금융기관의 파산을 연이어 불러왔다. 당시 미국 정부는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구제금융을 실시했다. 다행히 이런 양적완화 정책에 힘입어 증시는 회복세로 돌아섰고 시장은 안정됐다. 최근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양적완화를 점진적으로 종료하고 있음에도 시장은 큰 동요를 보이고 있지 않다.

과연 위기는 극복된 것일까? ‘대공황’을 운운하던 5년 전의 공포는 그저 호들갑이었을까? 이에 대해 답하기 위해 당시 금융위기의 본질을 파악해 현 상황을 규명한 두 권의 책이 최근 출간됐다.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가 공저한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화폐전쟁』의 저자로 유명한 쑹훙빙의 『탐욕경제』가 그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신자유주의의 위기』에서 뒤메닐과 레비는 자본가와 노동자로 대변되는 계급들 사이의 권력 형세에 따라 당시의 금융위기를 분석한다. 맑스가 일찍이 금융을 자본의 (제도적) ‘관리자’라 서술한 것이 책에 인용된 것처럼 자본가계급은 금융을 중심으로 이윤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지배체계를 구성해왔다. 이것이 저자들이 규정한 금융헤게모니다. 그러나 당장의 이윤을 좇아 움직이는 자본의 근시안적인 특성상 제어되지 않은 이윤추구는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운다는 특징을 가진다. 저자들에 의하면 금융헤게모니는 1920년대와 2000년대 후반 절정에 다다랐는데 이들은 모두 1929년에 발생한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파국을 맞았다.

이렇듯 금융헤게모니의 형성과 파국은 계급 투쟁의 결과인 권력 형세로 분석할 수 있는데 『신자유주의의 위기』에서 뒤메닐과 레비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아닌 ‘민중’, ‘관리자’, ‘자본가’로 이루어진 계급 분류를 통해 이런 분석을 진행한다는 독창성을 가진다. 민중계급이 전통적인 노동자계급과 거의 같은 개념이라면 관리자계급은 민중계급보다 높은 지위에서 다른 노동자들을 감독·관리하며 고소득의 임금을 받는 계급으로 정부의 관료를 포함한다.

뒤메닐과 레비는 국가의 관료를 포함한 관리자 계급이 어떤 계급에 타협하느냐에 따라 다른 사회질서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로 붕괴하기 전의 금융헤게모니는 관리자계급이 자본가계급이 주도하는 질서에 편승해 자본가계급으로의 부의 집중을 적극적으로 돕는 형세였다. 이런 형세의 문제점은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증식이 관리자계급에 의해 규제되지 않아 불안정성을 키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금융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연계되어 국부적 위기라도 대규모의 경제위기를 초래할 위험이 있었다. 또 증권시장의 성과는 곧 임금 보상으로 직결됐기에 관리자계급은 위험성을 과소평가, 이윤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럼으로써 나타나는 증시의 호황은 자신감을 더해줘 위험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방해했다. 2008년 당시 이런 상황에서 일어난 미국 부동산시장의 붕괴는 미국 금융시장의 파국을 통해 세계적 규모의 금융위기를 촉발하게 됐다.

다른 한편 『탐욕경제』에서 쑹훙빙은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을 양적완화로 인한 자산가격의 상승과 이로 인한 부의 집중으로 파악한다.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부의 집중이 유발된 구조적 취약성을 강조했다면 『탐욕경제』는 나아가 부의 집중이 실물경제의 위축을 촉발해 불황으로 귀결된다는 필연성을 강조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양적완화로 인해 유동성이 충분히 주어졌을 때 일관적인 자산가격의 상승이 기대된다면 시세차익을 노린 금융시장의 수익성이 실물시장의 수익성을 초과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적 부는 실물경제에서 금융시장으로 이전되는데 이런 부의 집중으로 인해 대다수 국민의 구매력이 위축된 결과 불황이 일어난다.

이 과정을 이해할 때 중요한 점은 저금리일 때 투자의 증가로 실물경제가 살아난다는 케인즈주의적 관점과는 달리 금융 기술의 발달로 몇 초 단위로 시세차익을 얻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오히려 저금리가 금융시장을 크게 확대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도 자본이 실물경제가 아닌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탐욕경제』도 1929년에 일어난 대공황과 2008년 금융위기가 같은 원인으로 인해 일어난 것으로 파악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탐욕경제』가 제시한 문제의 시작은 근시안적인 탐욕에서 비롯한 양적완화다. 1차 대전 이후 침체된 유럽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실시된 양적완화정책은 미국과 유럽의 자산 거품을 늘렸고, 늘어난 자산은 실물 투자보다는 수익이 높은 금융시장에 몰렸다. 이런 투기의 급증을 억제하기 위해 연준이 금리를 상승시키자 예상치 못한 유동성 위기가 도래했고, 이것이 연이은 채무불이행 선언을 불러 대공황이 터졌다.

21세기의 금융시장에서의 양적완화는 환매채 매매의 발달로 인해 훨씬 심해졌다. 환매채 매매란 보유 중인 국채를 저당 잡히고 돈을 빌리면서, 동시에 일정 기간 뒤에 빌린 돈보다 높은 가격으로 저당 잡힌 국채를 재매입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 때 담보의 원소유자이면서 돈을 빌리는 수요자는 대차대조표 상 빌린 돈과 저당 잡힌 국채 모두를 자산으로 보유하게 된다. 동시에 채권자 또한 빌려준 돈을 자산으로 갖는데, 결과적으로 수요자와 채권자의 총 자산이 늘어난다. 뉴욕과 런던의 두 금융기관이 돈을 주고받을 때 실제 돈이 비행기를 타고 넘어가는 것이 아닌 만큼, 장부상의 통화량 증가일지라도 실제 유동성의 확대로 기능했다.
이번에도 역시 양적완화가 불러온 금융자산 가격상승기대는 시세차익을 노린 무분별한 투기를 유발했고 실물 경제는 위축됐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시장 붕괴가 이와 연계된 금융상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유동성을 줄이는 동시에 상품의 가격을 하락시켜 금리상승과 같은 효과를 내며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위기는 끝이 났을까?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위기의 원인을 해소하기 위해 관리자계급의 주도로 이뤄지는 민중계급과의 타협을 방안으로 내세운다. 이 타협은 2차 대전이후 ‘반독점법’을 통해 완화된 시장경제 노선을 따르거나 ‘고용법’에 따라 완전고용을 당위적 목표로 잡는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 바 있다. 저자들은 이를 본받아 앞으로의 과제를 금융시장의 통제와 실물경제에의 투자를 들고 있다. 이는 금융에 대한 은행의 자기자본 증식활동을 금지하는 볼커법 등의 규제를 통해 자본가계급을 억제하고, 또 관리자계급이 자본가계급에 협조하는 동기로서의 고소득을 봉쇄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율성을 확보함으로서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탐욕경제』에서 볼커법이 발의된 지 수 년이 지났지만 아직 시행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오바마 대통령이 애플사(社)에 미국으로의 공장 이전을 요청했지만 깔끔히 거절당한 모습은 관리자계급이 자본가계급을 전혀 주도하지 못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국가는 금융자본을 규제하는 데 실패했으며 늘어난 유동성은 여전히 금융시장에 집중되고 있다

『탐욕경제』에 의하면 오히려 연준의 강력한 저금리 의지와 계속된 양적완화정책은 금융위기 이전의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양적완화정책은 앞서 언급했듯이 쑹훙빙이 주장한 위기의 핵심 원인이지 해결방법이 아니다. 또 금융시장은 연준의 저금리 기조를 토대로 평소였다면 더 위험했을 거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하고 있다. 결국 증시는 회복됐지만 이것이 경제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회복세는 금융위기 이전의 거품과 같은 구조로 형성된 것이다.

결국 단순한 금리정책만으로는 이 위기를 탈출할 수 없다. 저금리 기조는 『탐욕경제』에 의해 이미 문제의 원인을 반복하는 것으로 판명됐고 금리의 상승은 시장에 크나큰 충격을 주거나 실물경제로의 투자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시장으로 자본이 집중되는 현상 자체를 문제 삼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탐욕경제』와 대략적으로 관점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뒤메닐과 레비가 제시한 ‘관리자계급’ 개념은, 위기를 불러온 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금융자본의 역량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화폐전쟁』의 다섯번째 시리즈로 기획된 『탐욕경제』의 부제는 ‘폭풍전야’다. 쑹훙빙은 경제위기를 불러온 원인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누적·확대되어 2008년 때보다 더 큰 폭풍을 불러오리라 예측한다. 과연 구조는 변화될 수 있을까? 쑹훙빙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그런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한다. 그러나 뒤메닐과 레비가 지적했듯이 지금의 민중계급은 2차 대전 이후에 노동세력이 보여준 강력함을 상실한 지 오래다. 두 책은 이처럼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만들어가는 것도 바로 우리들일테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