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윤 연구원
ICT사회정책연구센터

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군대를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군사정권의 마지막 4년 기간 동안 대학 생활을 했던 나에게 군대란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가서는 안 될 곳으로 각인된 탓이 컸다. 대학원 진학으로 시간을 벌었고,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이 군에 가 있는 동안 형인 내가 입대를 연기할 수 있다는 놀라운 규정을 발견하고는 또 한 번 입대를 미룰 수 있었다. 이후 병역특례 지정업체 입사를 타진하던 중 뜻하지 않은 병역비리 사건이 터졌다. 병역특례 폐지 방침이 발표되었고 망연자실해 하던 나에게 입대 영장이 날아들었다.

스물아홉, 예정에 없던 군 입대로 공포감에 휩싸여있던 신병교육대 입소 첫날 저녁. 중대장의 호출이 왔고, 군 생활이 인생살이에 도움이 된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내가 이른바 관심사병 1호 면담 대상인 걸 알게 됐다. 몇 살 위 연배로 보이던 중대장은 왜소한 체격의 나이 많은 신병이 이십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장정들 틈바구니에서 혹시 사고라도 치지는 않을지, 적이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걱정 끼쳐드리지 않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심리 상태와는 정반대로, 호기로운 대답을 끝으로 면담은 마무리됐다.

정말로 열심히 했다. 어린 동기들 사이에서 나이 먹은 티낸다고 한다고 할까봐 이를 악물고 뛰어다녔다. 퇴소식 때는 우수 훈련병에 포함되어 4박 5일 포상 휴가도 받았다. 전방 야전부대가 아닌 사단사령부 행정병으로 자대 배치된다는 귀띔을 들었을 땐, 그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견디지 못할 건 뭐 있겠냐 하는 자신감도 생겼다. 자신감이 절망감으로 변하는 데는 단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군기가 빠졌다는 미명 하에 병장이 상병을, 상병이 일병을, 일병이 이병을 차례로 내리 갈구는, 욕설과 폭력을 동반한 각종 의례들. 부당한 권위에도 무조건 참고 복종해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육체적 정신적 고단함이 극에 달했을 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인 충동과 자살 충동을 경험했다.

제대한 지 15년이 흘렀다. 그동안 군대도 많이 변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병 상호간 명령 및 지시 금지니 계급별 생활관이니 하는 병영혁신 보도를 들을 때나, 군대 기간 동안 자격증을 딴다거나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짱을 만들어 나온다는 뉴스들을 접할 때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큰 착각이었다. ‘21세기 강군을 육성하는 대한민국 선진 병영’은 참으면 윤일병, 못 참으면 임병장 시스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 관련 사고가 불거질 때마다 대책으로 내세우는 건 일벌백계의 구호다. 구타 및 가혹행위, 인격모독 및 집단따돌림, 성 군기 위반 행위자를 엄중 처벌하여 근절하겠다는 논리말이다. 이 대책은 본질을 호도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한 개인의 그릇된 됨됨이, 개인적 일탈로 돌리기 때문이다. 진정한 원인은 부당한 권위와 부정한 권력 행사를 알고도 숨기면서 체제를 보호하는 데 급급한 군 당국과 그에 저항하는 이들을 낙오자나 부적응자로 만드는 군 시스템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게 어디 일개 사병들 간만의 문제이며, 군대만의 문제인가. 오랫동안 부당함과 부정이 교정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내재화된 시스템 속에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다른 부대로 전근 보낸다 한들 제2, 제3의 임병장과 윤일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정은 다시 분주해 질 것이다. 이순신과 프란치스코 교황 같은 지도자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도 이야기될 듯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과 군대 보낸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또 다른 부모들의 눈물이 떠오를 걸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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