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갖습니다. 떠남과 만남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자기의 성(城)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며 만난다는 것은 물론 새로운 대상을 대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여행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떠남과 만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스모스 졸업이라는 아름다운 단어가 따라붙은 이번 졸업 역시 모든 선배님들에게는 자신의 삶에 있어 또 다른 여행이라는 의미로 다가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유로웠던 교정, 치열했던 아크로폴리스, 최선을 다했던 도서관을 떠나 또 다른 서로의 공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떠남과 만남의 낭만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재발견입니다.

 

 

대학인, 지성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었던 입학식 날 바라본 하늘이 세상에서 제일 파랗게 느껴졌던 처음의 기억을 돌이켜봅니다. 누군가가 지성인을 회색인으로 규정지었듯이 아크로폴리스와 중앙도서관 사이 회색빛 아스팔트에서 엉거주춤하게 자신을 위치시키고 혼란스러워했던 새내기 시절, 하지만 그 회색빛에만 머무를 수 없어 무너진 대학공동체의 진정한 모습을 회복시키기 위해 함께 존재하는 이들의 인생을 음미하기도 하고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사회와 자아에 대해서 물음을 제기했던 수많은 나날들, 이상과 고뇌가 사라져버린 시대에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화,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꿈꾸었던 시간들, 이 모든 것들이 선배님들의 대학시절 구석구석을 의미 있게 채우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독재타파, 민주주의 수호 등 대학의 구성원들 모두를 거리로 뛰쳐나가게 했던 거대한 공적 담론들이 사라지면서 대학에서 공적인 것에 대한 관심 역시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우리는 대학의 위기, 학문의 위기라는 무서운 말들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의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간직하고 있고 이것은 사적 영역을 벗어나 공적 영역에서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지향이나 정체성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는 잠재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나약한 지성들은 그러한 자신의 능력을 수면아래 감추어두고 드러내기를 꺼려합니다. 모두가 공유하면서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 할 이 시대의 중요한 갈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부대끼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종종 그런 갈등을 무의미한 점잖음과 잘못된 공감으로 조심스레 억눌러 버리곤 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비판받고 또 공감을 얻어야 할 그 대학사회에서 우리들은 쉽게 이렇게 무의미한 점잖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공간 안에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시선이 항상 불편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학교 밖에서 학교를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좀 더 객관적으로 이러한 문제의식들을 대면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배님들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후배들과 함께 공유했던 이러한 치열한 문제의식을 학교 밖 ‘사회’라는 공간 속에서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고 충고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한 친구는 서울대 정문을 들어서서 보이는 널찍한 도로를 보고 활주로를 떠올린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선배들이 졸업과 동시에 저 활주로를 타고 서울대 정문을 지나서 자신의 비행(飛行)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저희 역시 몇 년 후엔 자신만의 비행을 시작할 것입니다. 선배님들의 비행은 누군가의 조종에 따라, 혹은 기계음을 안고 날아가는 비행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계기판을 조종하는 자유로운 비행이리라 믿습니다. 젊은 날의 청춘, 사랑, 그리고 자유로운 배움과 지식에 대한 갈구, 이 모든 것들을 안고 두렵지만 힘차게 자신만의 은빛 비행을 준비해온 모든 선배님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유혜영

외교학과ㆍ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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