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월) 서울대 학생·교수·동문이 서울대 정문에서 광화문광장까지 거리행진에 나섰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청와대에 탄원서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서울대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 총학생회, 서울대 민주동문회 등 단체와 일반 참가자 200여 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광화문에 도착한 이후 경희대 정문에서 출발한 다른 행렬과 합류했다.

 ▲사진: 이혜빈 기자 beliveyourse@snu.kr

방학 중 갑자기 결정된 행진에 참여한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강건준 씨(인문계열·13)는 “평소에도 국민 릴레이 단식에 참여하는 등 세월호 사안에 관심이 많았다”며 “단대운영위원회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타당하다고 생각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참가자 중에는 일반 시민도 다수 있었다. 안양시에 거주하는 한 주부는 “참사에 대한 의문이 너무 많음에도 정부는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며 참가 이유를 밝혔다. 오후 3시 이경환 총학생회장(물리·천문학부·05), 김예나 부총학생회장(국어국문학과·10), 서울대 민주동문회 이호윤 회장 등이 서울대 정문 앞에서 성명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행진은 시작됐다. 성명서에서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라 말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중첩돼 터진 사고의 중대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무감각, 무책임, 무능력을 극복하기 위해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유가족이 동의하는 특별법만이 진상 규명의 약속을 지킬 수 있다”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아직 남아있는 실종자 10명의 이름을 부른 후 이들은 행진을 시작했다.

이날 행진 코스는 봉천고개, 한강대교, 용산, 서울역을 거쳐 광화문광장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행렬이 관악구청 앞을 지나자 상인들은 사진을 찍거나 창문 밖으로 함성을 지르며 응원했다. 오후 7시, 국민 릴레이 단식과 전국민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동조 단식 중이던 영화, 종교, 정치단체 소속 인사들과 일반 시민 약 100여 명과 행인들이 박수로 이들을 맞았다.

곧 이어 광화문광장에서 총학생회장의 진행으로 집회가 열렸다. 이화여대, 건국대, 성신여대 등의 학생들과 노동자연대대학생그룹, 청년좌파 등 청년들이 함께한 자리였다. 단원고 2학년 3반, 4반, 7반 유가족 대표는 집회를 방문해 “우리는 정치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엄마, 아빠이기 때문에 끝까지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집에 계신 엄마, 아빠를 떠올리며 다치지 말고 힘을 모아달라”고 응원했다. 학생들은 “힘내세요”를 외치며 이에 화답했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민교협 최영찬 교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우리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우리들의 제자”라며 “미래 세대를 위해서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학생들은 “대통령이 책임져라”,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청와대로 가 탄원서를 제출하고자 했다. 그러나 경찰 측 버스가 광장 주변을 에워싸고 길을 건너지 못하게 했다. 총학생회장은 경찰 측 대표에게 대화를 요구했으나 경찰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평화시위 보장하라”를 외치며 행진을 시도했지만 결국 오후 8시 삼삼오오 흩어져 청와대로 향했다.

이에 경찰은 경복궁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여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통제했다. 경찰은 주민등록증을 확인한 후 지역 주민만 폴리스 라인 안으로 들여보냈으며 이 과정에서 통행에 불편을 겪은 일반 시민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 시민은 경찰에게 “이 시간 이후부터 이 횡단보도는 이 동네 주민만 쓸 수 있는 것이냐”고 항의했다. 결국 경찰의 제지로 행렬은 9시 45분 종로소방서 앞에서 해산했다. 2차 행진은 3일에 열리며 수도권 대학생들이 각각 사당, 청량리, 신촌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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