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한복에 대한 이미지는 비싸고, 거추장스럽고, 예스럽다는 느낌이 강하다. 2011년에 이혜순 한복디자이너가 신라호텔로부터 입장을 저지당한 사건은 우리 옷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런 시선 속에서도 우리의 전통 의복인 한복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한복의 일상화’를 실천하고자 세워진 동호회 ‘한복 세상을 꿈꾸다’의 홍경아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대학에서 전산을 전공하고 현재 로펌에 근무 중인 ‘현대인’이자 ‘한복 비전문가’였던 그가 본격적인 ‘한복 알림이’로 거듭나게 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한복은 참 다양하고, 편하게 입을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홍경아 씨, 이 날 인터뷰에 입고 온 한복은 단아하고 고운 빛깔이었다.
사진: 장은비 기자 jeb1111@snu.kr


◇주체성 잃어가는 현실, 우리 것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홍경아 씨가 본격적으로 한복을 입게 된 시기는 이혜순 한복디자이너가 신라호텔에서 한복 입장을 거부당한 사건 이후부터다. 그는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주체성이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우리 것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한복 동호회에 가입해서 일상 속에서 한복을 입게 됐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한복 차림새를 비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았고, ‘기생 같다’고 비하하는 어르신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홍경아 씨는 단순히 한복을 예쁘게 입고 사진을 찍는 동호회가 아닌, 본격적으로 ‘한복의 일상화’를 목표로 한 모임을 꿈꾸게 됐다. 그렇게 2012년 12월에 ‘한복 세상을 꿈꾸다’(한꿈) 동호회가 탄생했다.


하지만 현대식으로 편리하게 변용한 ‘개량 한복’이나 ‘생활 한복’이 한복의 전통성을 훼손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는 거 아니야’는 홍경아 씨가 한복을 맞추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한복 바느질 하시는 분 중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한복 개량을 안 좋게 보세요.” 그러나 홍경아 씨는 “옛날 그대로의 고증도 물론 필요하지만, 한복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안 입고 사라지는 것보단 사람들이 좋아하게 해서 전통을 이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개량 한복을 지지했다.


홍경아 씨는 또 ‘전통’의 의미가 왜곡돼 알려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가 흔히 전통한복이라 생각하는 건 일제의 손이 가미된 조선 후기 모습이다. 홍경아 씨는 “사실 조선 초기엔 후기의 모습과는 다르게 저고리도 가슴이 안 가려질 정도로 짧게 입었다”며 “그럼 과연 뭐가 전통일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기성세대에게 전통을 훼손한다는 비판 외에도 문제가 되는 또 다른 부분은 ‘개량 한복’을 사실상 만들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생활한복으로 변신하려면 양장과 한복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꿈’의 회원들은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한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문학을 전공 중인 한 학생은 직접 디자인을 해보기도 하고, 독일어과 교수로 재직 중인 한 회원은 자신에게 맞는 의상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다함께 강강술래=홍경아 씨의 전통에 대한 애착은 한복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한꿈’은 1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친 끝에 지난달 30일 남인사마당, 31일 세종대로에서 ‘2014 다함께 강강술래’라는 행사를 벌였다. 작년에 시작해 벌써 2회 째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강강술래를 해본 적도 없었고, 정식으로 배울 형편도 안 됐던 홍경아 씨는 행사 준비를 위해 국립무용단 공연을 100번 이상 돌려봤다. 참고 삼아 다른 강강술래를 하는 공연에도 가봤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보통 강강술래 행사에 가면 손잡고 뱅뱅 돌기만 하다 집에 가라 하더라”며 “그때의 아쉬움을 기억했다가 관객 입장에서 이 행사를 기획했다”고 전했다.


‘2014 다함께 강강술래’에서는 진강강술래 외에도 개고리타령,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기와밟기 등의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다. 사전에 협의가 없으면 힘든 몇 가지 외에는 전부 관객이 무대를 리드할 수 있도록 기획해 큰 무대를 펼쳤다. 홍경아 씨는 “관객들 100명 정도와 같이 강강술래를 했는데, 뛰면 힘들 텐데도 무척 좋아해주셨어요”라고 당시의 벅찬 마음을 전했다.


우리나라의 훌륭한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를 알리는 것 외에도 이 행사를 기획한 목적은 ‘한복 입을 기회를 마련해 주자’는 데에 있었다. 그는 “‘한복이 예쁘긴 한데, 난 입을 기회가 없어서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그러면 내가 입을 일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며 “추석 때만이라도 한복을 입고 강강술래를 하다 보면 언젠가 나중에 또 입고 싶은 맘이 생기진 않을까 기대하는 거죠”라 말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실제 ‘한꿈’은 이날 행사에서 한복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하루 동안 한복을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2014 다함께 강강술래’에서 열렸던 또 다른 행사인 ‘한복패션쇼’는 ‘한꿈’의 회원들이 직접 자신의 한복을 뽐낸 무대였다. “패션쇼를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진 옷이 한 벌도 없다”며 “그냥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을 통해 한복은 참 다양하고, 편하게 입을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나는 저 옷을 꼭 입어보고 싶었다’라 말해 준 사람들의 말이 보람을 가져다주었다”고 전했다.


◇한복, 더 가까이 다가가야=사람들이 한복을 너무 멀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홍경아 씨. 그는 “일반 원피스를 입었을 때보다 한복을 입고 다녔을 때 훨씬 예쁘단 말을 많이 듣는다”며 웃어 보였다. 사람들이 한복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가까이 대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도록 ‘한꿈’은 앞으로도 꾸준히 정기모임을 열 계획이다. 경복궁, 도서관, 극장 그리고 패스트푸드점까지 그들이 찾아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아직 한복이 가야 할 길은 멀다. 아동용 한복, 남자 한복 시장은 특히 다양성이 더 부족하다. 일상 속 한복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 무엇보다도 극복해야 할 우선과제다. 그러나 이 많은 산을 앞에 두고도 “한복만큼이나, 한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넉넉하더라”고 말하는 홍경아 씨의 입가엔 피곤함보다도, 즐거움이 더 묻어나 보였다. 어쩌면 전통이라는 것도, 그저 무거운 옛것으로 남기보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그 무엇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막 한 걸음을 뗀 홍경아 씨의 다음 발자국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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