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 프로그램

요즘 우리나라에는 인문학 관련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소위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문학에 대해 생각할 때 어려운 말만 하는 철학자, 심오한 표정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미학자를 떠올리고는 ‘어렵다’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인문학, 여기 인문학의 즐거움을 느끼게 할 강연이 있다.

▲사진제공: 백상경제연구원

◇도서관, 강의실로 변신하다=‘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고인돌) 프로그램은 작년 11월에 지역의 커뮤니티 활성화와 지역주민들의 지적소양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서울시교육청과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주최하여 시작했다. 서울 시내 각 구에 위치한 공공도서관에서 열리는 이 프로그램은 해당 도서관이 위치한 지역구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다. 총 5주에 걸친 기간 동안 ‘고전 탐구’, ‘전통 건축에 담긴 의미 찾기’ 등 특정 주제에 대한 전문가의 강연이 진행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프로그램이 주로 공공 도서관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과의 정미연 사무관은 “도서관은 사회적 소외 계층부터 장애인,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다”며 “따라서 지역주민 모두를 위한 ‘낮은 자세의 인문학’을 실천하기 좋은 곳이다”고 도서관에서 고인돌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프로그램을 최초로 제안한 백상경제연구원의 장선화 연구원은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양질의 강연을 도서관에서 제공하여 지식 탐구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의 의미를 알리고 싶었다”라고 고인돌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기존 인문학 강연의 문제점을 해결하다=또 고인돌 프로그램은 기존에 도서관에서 열리는 강좌들의 문제점을 찾아보고 이를 개선하려 노력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강좌를 열기 위한 강사료가 턱없이 낮다는 것이었다. 현재 시립도서관 기준으로 강사 초빙에 드는 비용은 강연 1회당 평균 10만 원으로 책정돼 있다. 비용의 문제는 강연의 질적 문제로 이어진다. 강사료가 적으니 강연를 하겠다는 전문가들을 구하기 어려웠고 설사 모집이 됐다 해도 여러번 강연해야 하는 주제가 비용 문제로 인해 일회성 강연으로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반면 서울시교육청이 백상경제연구원과 공동으로 진행했던 고인돌 프로그램은 교육청의 도움으로 공공도서관에 비해 예산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고, 강연료를 1회당 30만 원까지 올릴 수 있었다. 덕분에 여러 번 진행해야 하는 강연 주제에 대해서도 강연자들을 구해 심도 있는 강연을 할 수 있었다. 장선화 연구원은 “30만 원도 강연료로서는 낮은 액수다”라며 낮은 강연료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강조했다.

▲ 사진제공: 백상경제연구원

◇친구처럼 다가온 고전=고인돌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대중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인문학적 지식들을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고인돌 프로그램은 찾아가는 인문학을 지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강연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평소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이용자는 물론, 도서관에 등록된 회원들에게 지속적으로 홍보해 자연스럽게 강연을 접할 수 있게 했다.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을 위해선 도서관 인근 지역 학교와 연계해 학교 도서관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강연 내용에 있어서도 이론과 실제를 접목할 수 있는 주제를 고려했다. 예를 들어 별주부전 등 판소리계 소설에 대한 강연을 기획할 때 마지막 시간에 이론을 겸한 박사 출신 명창을 섭외했다. ‘고(古)정원과 문화’ 강연의 경우 경복궁 내 정원들을 강사와 수강생이 함께 돌아보면서 이론이 어떻게 건축에 반영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영화 속 고전읽기’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던 동화작가 강안 씨는 “고전 읽기를 지루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전을 각색한 영화를 감상하고,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강연을 통해 수강자들에게 고전의 의미를 책으로 읽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문학적인 지식을 최대한 쉽고,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던 만큼 청중들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정년퇴직 이후 공부를 하고 싶어 친구들까지 데려온 수강자도 있었다. 어떤 강연은 수강신청 1시간만에 정원을 훌쩍 뛰어넘는 100여명의 신청자가 몰리기도 했다. 2013년 서울시교육청에서 발표된 ‘2013 고인돌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수강자들 중 성인층의 90%가 다시 고인돌 프로그램을 신청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수강자의 반 이상이 강연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고전을 접할 수 있었고, 내용 역시 유익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강연 후 진행됐던 설문에서 수강자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연속적으로 전달해주는 고인돌 프로그램 덕분에 여러 분야의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표현했다.


강연에 보람을 느낀 것은 수강자들뿐만이 아니었다. 한국고전을 주제로 강연을 했던 설성경 명예교수(연세대 국어국문학과)에게 고인돌 프로그램은 새로운 지식을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새로운 계기였다. 설성경 교수는 “고인돌 프로그램의 강연들은 대학생들에게 늘 가르치던 옛 지식이 아닌 최근에 연구된 새로운 부분의 성과들을 수강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수강자들의 반응 또한 긍정적이여서 강연자와 청중 모두에게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열린 강좌’가 나아갈 길=그렇다면, 앞으로 인문학 강연이 깊은 지식을 전달하며 꾸준한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장선화 연구원은 단기에 성과를 얻을 수 없는 인문학을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꾸준히 강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고급 인문학 강좌를 계속 개최하여 다양한 아이디어가 도출되도록 해야 한다”며 강연 이외에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함을 역설했다. 설성경 교수는 “주민들에게 지혜를 줄 수 있는 강연이 필요하다”며 “인문학 강연들이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는 데 최전선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고인돌 프로그램은 올해 7월부터 시즌 2를 시작, 다시금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인문학의 즐거움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긴 세월 동안 우뚝 서 있는 고인돌처럼,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 프로그램의 앞으로가 기대된다.

▲ 사진제공: 백상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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