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녹색당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

▲ 사진: 김유정 기자 youjung@snu.kr

녹색당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해 회계법인에 다니던 그는 돌연 일을 그만뒀다. 회계사가 되면 자본시장의 파수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 사법시험을 준비해 2년 만에 합격한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1998년 참여연대 상근변호사로 시민운동의 첫발을 내디뎠다. 공익 변호사 하승수는 소액주주운동, 조세개혁운동, 정보공개운동 등 참여연대 초창기의 굵직한 사안을 이끌더니 이번에는 지역활동으로 관심을 옮겼다. 시민운동을 해보니 중앙보다 지역이 더 엉망이었다는 것이다. 지역으로 내려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을 만들고 지역의 공동체활동을 꾸리던 그는 갑자기 2006년 제주대 법대 교수가 된다. 그의 이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08년에는 다시 서울로 올라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설립해 공공기관을 들쑤시고 다니더니, 2012년에는 녹색당을 창당해 정당인이 됐다.

“여러 경험을 많이 했는데 이제 다 전직이고 지금은 녹색당 일만 합니다. 포털에 검색해 봐도 정당인으로 나와요.” 지난 1일(월) 지하철 경복궁역 근처의 작은 녹색당사 사무실에서 하승수 위원장을 만났다. 아직 늦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녹색당사에서 에어컨의 냉기는 느낄 수 없었다.

녹색당이 제시하는 ‘근본적인 전환’

“사실 원래 저는 환경운동이나 녹색운동을 하던 사람이 아니에요.” 하 위원장이 참여연대나 지역활동에서 했던 일은 녹색의 관점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랬던 그가 녹색으로 관심을 돌린 결정적 계기는 2011년 3월에 일본에서 터진 후쿠시마 원전사고였다. “일본이라는 사회가 안전을 굉장히 강조하는 사회인데 너무나 무기력하게 무너졌잖아요. 그걸 보면서 이건 인간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거구나 생각했죠.” 그는 이 사고가 대한민국이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느끼고 지속가능한 문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2012년 3월에 창당한 녹색당의 정책엔 기후변화, 자원고갈, 원전 위협과 같이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문명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하지만 녹색당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개별 현상만을 포착하진 않는다. “원전의 경우 원전 하나만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거든요. 원전으로 전기를 싸게 생산해서 그 전기로 물건을 싸게 만들고 그것을 수출해 성장해온 우리 사회의 근저에 깔린 경제성장 중심주의를 봐야 합니다. 원전이 위험하니까 원전만 어떻게 줄여나가면 되겠지 생각하면 원전은 결코 줄일 수 없어요.” 현상의 원인이 되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현상에서조차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하승수 위원장은 녹색의 가치를 경제성장 중심의 사회나 물질소비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정의한다. 길게 잡아도 300년이 안 되는 동안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켜온 성장 중심의 방식에 근본적인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에요.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지혜나 기술은 활용해야죠. 하지만 경제성장을 계속 하면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심어주는 환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 위원장은 근본적인 전환을 위한 국가 정책의 방향으로 더 평등한 분배,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경제 구조를 제시했다. “더 이상 경제성장 목표의 달성을 국가 정책의 방향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1992년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7천 달러였거든요. 김영삼 대통령이 당시에 1만 달러가 되면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린 지금 행복한가요?” 2013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4천 달러로 1992년에 비해 3배 이상 늘었지만 동시에 자살률, 이혼율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더 공정한 게 더 좋은 삶을 만들고 더 지속 가능한 것이거든요. 급진적이기는 하죠. 근본적인 전환의 시도니까. 하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위해 더 많은 성장과 물질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녹색, 정치가 필요해

녹색당은 정당이다. 녹색당이 등장하기에 앞서 국내에는 환경운동연합이나 녹색연합과 같은 환경 관련 시민단체가 이미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많은 시민 활동가들이 정치의 필요성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정책을 변화시켜야 하고, 정책의 문제는 곧 정치의 문제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다른 일들도 필요합니다. 개인이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고 시민운동이나 지역활동으로 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아무리 제가 전기를 절약하고 지역에서 햇빛발전협동조합 같은 것을 만들어서 노력해도 정부는 원전을 더 짓고 전기를 기업들에 싸게 공급하고 있잖아요. 결국, 지금 한국사회에서 변화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정치입니다.”

하지만 중앙정치에서 정책 결정의 문제는 곧 힘의 문제이다. 유럽의 녹색당들도 독일의 녹색당을 제외하면 제도정치권에서 자리를 잡는 데 10~20년이 걸렸다. 한국 녹색당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탈핵 의제를 제시하고 몇 차례의 지방선거에 참여하는 등 지지층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 중앙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녹색당이 창당한 지 2년 반이 됐는데 아직 녹색당은 초창기라고 봐야죠.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기는 하지만 길게 갈 수 있는 정당이 되기 위해 그동안 정책과 제도를 강화해 왔습니다.” 현재 녹색당의 당비를 내는 당원은 6천 명 정도 된다. “내년 상반기까지 당원을 1만 명 정도로 늘리고, 2016년에는 원내정당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2017년 대선에서는 대통령후보도 내고 중요한 정책들에 영향을 미칠 계획입니다.”

과거 독일 녹색당은 5.8%의 지지율로 사민당과 손을 잡아 탈원전을 이끌어냈다. 한국 녹색당이 제도권 정치 현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세우고 있는 전략도 이와 유사하다. “양대 정당이 의석을 나눠 갖는 우리나라의 경우 지지율 3% 차이 이내에서 정책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우리 녹색당이 5% 정도의 지지율을 확보하면 바꿀 수 있는 것들이 확실히 많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작지만 확고한 지지층을 통해 기성 정치권에 뜨거운 맛을 보여주는 거죠.”

청와대를 노리는 원조 정보사냥꾼

하승수 위원장의 전직은 정보사냥꾼이다. 녹색당으로 오기 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서 2012년까지 소장을 맡았던 그는 정보공개법 도입 초기의 정보공개청구 및 소송을 이끌어 주옥같은 판례들을 남겼다. 그에게 걸리면 검찰청도 국회의원도 정보를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청와대를 제대로 겨냥했다.

“얼마전 청와대에 1인 시위를 하러 갔더니 오늘은 행사가 있어서 못 들어간다고 막는 거예요. 그래서 청와대 경호실에 그날 무슨 행사 했느냐고 정보공개청구를 했죠. 그랬더니 경호실 과장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 다음이 가관이다. “제가 놀랐던 거는 청와대 경호실은 이런 정보공개청구 한 번도 안 받아봤구나 하는 느낌이 바로 드는 거였어요. 아예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 몰라서 오히려 제가 알려줬다니까요. 요즘 웬만한 지방자치단체나 중앙부처는 안 이런데, 그러니까 사람들이 한 번도 청와대에는 정보공개청구를 안 해본 거죠. 우리가 안 하니까 청와대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의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얼마 전부터 녹색당은 청와대를 상대로 한 정보공개운동을 시작했다. 그 핵심은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이다. “계속 비공개로 나오고 있어요. 청와대는 모든 정보를 전산으로 생성하고 처리하기 때문에 거기만 열어보면 지금 국민들이 가진 의문이 웬만큼 풀릴 수 있거든요. 그런데 문을 닫고 안 보여주는 거죠.”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된 모든 과정 및 결과는 기록물로 생산·관리되어야 하고(제7조), 이 기록물들은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제16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 해경 등으로부터 청와대가 받은 보고 내용, 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이 대통령에게 했다는 21차례의 보고 내용, 그리고 대통령이 내렸다는 지시는 기록물로 남아 있어야 한다. 4월 16일 대통령의 일정도 물론이다. “계속 청구해보고 안 되면 행정소송 할 겁니다. 청와대도 국민 세금으로 일하는 곳인데 기본자세가 안 돼 있어요. 우리가 끝까지 해보려고요.”

거대한 정치 속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세월호 침몰사고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할 때 많은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낀다. 거대한 정치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승수 위원장은 앞으로 우리가 뭔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것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정리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인 시위 같은 경우도 참여연대에서 활동할 때 집회금지 구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여럿이 고민하다가 만들어낸 방법이었죠. 제가 나름대로 시민운동부터 여러 가지를 경험했는데 시민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책으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책의 가제는 『내게 더 가까운 권력을』이다. “거대한 정치라는 말에는 정치는 나하고는 너무 멀다는, 내가 접근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 거대한 정치와 권력을 나와 더 가깝게 만드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담으려고요.” 돌이켜보면 그가 해온 시민운동, 정보공개운동, 지역 활동은 모두 시민에게서 너무 멀어진 권력을 더 가깝게 하려고 통제하고, 질문하고, 바꿔온 시도들이었다. “그것을 통해서 삶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정치의 모습을 그려보려 합니다. 꼭 녹색당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이야기잖아요.”


청년들에게 전하는 녹색 편지

청년 여러분께.

안녕하세요. 녹색당원 하승수입니다.
녹색의 가치에 관심을 가진 청년 여러분을 만나게 돼 굉장히 반갑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요즘 많은 청년들이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청소년들까지도요. 저는 청년들, 청소년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고 경험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청년들을 조직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분으로부터 들었는데, 청년 여러분은 자기 이야기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면서요. 모여 앉아서 자기 고민, 관심사를 말하는 거요. 저는 이게 사회에 관심을 갖는 방법 중 가장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 얘기를 듣고 자극을 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자기에서 출발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 이야기 안에 담겨 있는 것이 흔히 말하는 청년 문제들이겠고요.

요즘 청년 여러분이 겪고 있는 일자리, 진로와 같은 문제는 청년들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 모든 세대에 책임이 있는 문제입니다. 때문에 다른 세대와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표를 얻기 위해 선거 때만 ‘청년’을 찾는 정당들, 정치인들이 많지만, 우리는 여러분 얘기를 많이 듣는 것부터 시작할게요. 먼저 여러분의 고민을 나누고, 같이 해결 방법을 찾아 정책으로 만들어 나갑시다.

아 참, 올해부터 서울대, 고려대에서 청년 녹색당원들의 학교별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관심 있는 청년 여러분이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생명과 평화의 소망을 담아.
2014. 9. 1.
하승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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