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만들어진 성』
코델리아 파인 저
이지윤 역
휴먼사이언스
448쪽 │2만 3천원

 ‘공감하는 여성, 분석하는 남성’이라는 속설은 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젠 상식이 됐다. 선천적으로 남녀 사이엔 뇌 구조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남성은 수리적 사고에, 여성은 언어적 사고에 능통하다는 것 역시 일반적인 인식이다. 하지만 심리학자 코델리아 파인은 그의 책 『젠더, 만들어진 성』에서 이런 설명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우선 뇌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남녀의 차이를 설명하는 ‘오해’의 역사를 소개한다. 17세기 철학자 니콜라 말브랑슈는 “여성은 추상적인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뇌 섬유의 예민함’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또한 당시의 뇌과학자들은 여성의 뇌가 남성의 뇌의 무게에 비해 141g이 모자란다는 측정 결과를 내세워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주장했다. 여성을 차별 대우하는 사회 분위기를 뇌과학적 이유로 정당화하는 것, 저자는 이를 ‘신경 성차별(neurosexism)’이라고 명명한다.

문제는 이런 접근 방식이 현대에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기존의 뇌과학 연구는 뇌의 구조나 활성화 정도의 차이를 통해 심리의 차이를 설명한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단순히 더 크거나 활성화된다고 해서 심리학적으로 더 활성화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어 그는 뇌 구조에서 심리적 기능으로 연결하는 의견들은 지나치게 주관에 의존한다고 비판한다. 가령 여성이 가진 큰 뇌량이 좌우 뇌의 연결을 강화시켜서 공감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한다면 자료를 분석하는 일을 할 때는 좌우 뇌의 연결이 덜해도 되는 것인가? 만약 남성의 뇌량이 더 컸다면 그로 인해 남성의 분석 능력이 우월하다는 주장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설명에 대해 저자는 “심리를 연구하는 방법으로서 뇌과학은 아직 유아기에 있다”며 “뇌 구조와 심리 사이의 모호한 연관성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너무 쉽게 쓸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말 ‘공감하는 여성, 분석하는 남성’이 허구라면 어떻게 공학이나 법학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이 적은 현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생물학적인 근거에서가 아니라 사회적인 여건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관습에 따라 ‘남성적’ 영역에 속해 있다고 여겨지는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난 여기에 어울리지 않아’라는 고정 관념화된 위협으로 인해 수행 능력과 소속감이 손상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기의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주로 여성들의 일이었다. 하지만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컴퓨터 공학계의 남성 영웅들이 등장하면서 컴퓨터 공학은 남성적 영역으로 인식됐고, 컴퓨터 공학 분야의 여성에 대해 고정 관념화된 위협이 형성된 것이다.

이와 같이 신경 성차별이 사회를, 사회가 신경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분위기 속에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평등해지는 날이 올까? 『젠더, 만들어진 성』은 성차별의 ‘객관적’ 증거로 기능해왔던 뇌과학에서 편견이라는 얼룩을 제거하며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꾀한다. 여성에 갇힌 여성을 구하고 싶은 독자들은 『젠더, 만들어진 성』을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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