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고전이 말하는 평등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이 2주갑(周甲·120년)을 맞았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는 1860년부터 3년의 포덕기간 동안 동학이 필요한 이유와 중심 사상을 경전에 담았는데, 이 책은 최제우의 처형과 함께 불타 없어졌다가 1880년 제2대 교주 최시형에 의해 출간되며 동학농민운동의 사상적 배경을 제시했다. 동학농민운동은 안팎으로 혼란스러웠던 조선사회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중운동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여러 학자들과 사회운동가들에게 재조명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박맹수 교수(원광대 원불교학과)는 다수의 강연과 저서를 통해 동학농민운동을 촉발한 『동경대전』의 평등사상과 후천개벽 사상에 주목했고 그가 번역한 『동경대전』이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지정됐다. 『동경대전』 속 동학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박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 동학농민운동의 사상적 배경으로서 『동경대전』의 평등 이념과 민중 주체성을 설명하는 박맹수 교수  
사진: 장은비 기자 jeb1111@snu.kr

동학의 평등은 시대의 부름에 대한 실천적 응답

박 교수는 『동경대전』을 설명하기 이전에 최제우의 삶과 당시 시대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하느님과 문답을 나누는 경험을 하기 이전 최제우의 36년 인생은 개인적 고난과 사회적 갈등으로 점철돼 있었다. 과부의 자식이란 이유로 문과에 응시하지 못하고 부모도 일찍 여읜 후 최제우는 무일푼의 떠돌이 생활을 이어갔는데, 10년의 방황 끝에 그가 목격한 것은 당시 조선사회의 비극적인 실태였다. 곳곳에서 이양선이 출몰했고 국가의 재정 요소였던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 정부 보유의 미곡을 대여하는 제도)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부패했다. 콜레라가 만연하여 3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민중 사이엔 기존의 이씨 왕조를 대신할 정씨 왕조가 나타난다는 소문마저 무성했다. 초월적 능력을 갖춘 신인(神人)이 나타나 정국을 타개해주기를 바라는 민중들의 염원은 극에 달했다.

뭇 생명이 죽어가는 시대 속에서 민중들은 다양한 사상에 기대어 새로운 세상을 소망했다. 그 중에서도 조선의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평등한 사회를 주장했던 동학은 민중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질 수밖에 없었다. 박 교수는 동학의 성립을 두고 “조선 500년 역사에선 볼 수 없던, 민중에 의한 새로운 평등 공동체의 등장”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동경대전』은 동학의 평등사상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박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의 중심은 ‘시천주(侍天主)’ 사상이다. 이 사상에 의해 “모든 사람은 제 안에 가장 거룩하고 성스러운 존재인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며 “우주질서, 생명으로 대표되는 하느님이 각 개체에 깃들어 있기에 만민과 만물이 평등한 것”이다. 후에 『동경대전』의 시천주 사상은 신분의 평등과 양성의 평등에 대한 주장의 근거로 발전했다. 박 교수는 “이미 동학이 출범할 때부터 백정과 술장사들이 한데 모였고 홀아비와 과부들이 모였다”며 “동학으로 귀의한 양반이 자신의 노비를 해방하고 직접 절을 했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조선의 부조리한 시대상 속에서 동학의 평등사상을 품은『동경대전』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지는 후천개벽의 씨앗이 됐다. 후천개벽이란 평등사상에 뿌리를 두고 지배자가 아닌 민중이 주인이 되기 위해 문명 전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동학의 개벽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상생이다. 박 교수는 “『동경대전』의 후천개벽은 오랜 시간이 걸려도 작은 생명까지 구하는 변화”라고 말했다. 후천개벽의 세상에서 하느님을 모신 모든 생명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존귀하기에 개혁은 만물의 상생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다. 상생을 기반으로 하는 새 세상에 대한 염원은 동학의 ‘실천성’과 만나며 구체적으로 실현됐다. 동학에선 천도(天道), 즉 하늘의 뜻을 받들어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평등과 개벽을 사회적 실천으로 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동학은 그저 믿기만 하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배우고 실천해가야 할 도(道)이자 학(學), 즉 도학(道學)이다”며 “이 관점에서 동학은 종교(religion)를 포괄하는 ‘운동’(movement)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민중들의 협동으로 동학농민운동이 가능했고 혁명이 갑오개혁에 영향을 미쳐 신분제가 폐지됐다는 점에서 동학의 개혁성과 실천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살아있는 민중 공동체의 개벽, 오늘날에도 필요해

물론 당시 천주교로 대변되는 서학에서도 평등사상을 설파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서학이 말하는 평등과 동학이 말하는 평등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서학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수평적으론 평등하지만 하나님이라는 초월자와의 수직적 관계에선 수동적으로 평등하다. 서학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며 그렇게 구원받을 사람들은 초월자의 관점 앞에서 객체적으로 평등한 것이다. 실제로 서학은 신과의 수직적 평등관계와 내세의 존재를 강조하면서 점차 내세신앙에 치우쳤다. 그에 따라 서학은 개혁에 소극적으로 반응하며 조선의 전통적 관행이나 현실세계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동학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도 수평적이다. 시천주 사상에 따르면 동학에서의 하느님은 사람 안에 존재하며, 사람이 결국 하늘이 된다는 점에서 동학의 평등은 민중의 입장에서 훨씬 주체적이다. 서학의 평등은 마치 제사상에서 메밥의 위치를 벽에 놓으며 미래에 존재할 신, 내세를 위해 제사를 올리는 것과 같은 반면 동학의 평등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 지금 살아숨쉬는 생명을 위해 메밥을 놓는 ‘향아설위’(向我設位) 사상과 같은 것이다. 또 동학의 평등은 생명의 에너지가 순환한다는 이치를 들어 사회적 협동을 강조하는 공동체적 성격을 띤다. 동학의 이론은 민중 공동체의 실천적 에너지를 중시하며 개혁성을 띠게 됐고 후에 동학농민운동이 발현되는 원인이 된 것이다.

박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는 잘못된 기존 체제에 의해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하는 변하지 않는 현실 세태에 대한 외침”이라고 말했다. 동학농민운동 이후 120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조선 시대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사회 구석구석에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불평등이 나타난다. 하지만 박 교수는 “만민평등 사상은 미완성이지만 대한민국은 천천히 개벽하는 중”이라고 평했다.

120년이나 평등과 상생을 위한 성장통이 이어지고 있다면 이는 가만히 좌시할 수 없는 현상인 동시에 느리지만, 점차 성장해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한 것이다. 박 교수는 “모든 만물을 하늘로 모시는 동학의 정신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라고 강조하며 “동학의 평등사상을 되살려 오늘날의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는 두 번째 개벽(開闢)을 향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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