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축제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지역별로 다양하고 수많은 축제가 개최된다. 일본어로 축제를 의미하는 ‘마츠리’는 ‘바치다’라는 의미의 단어 ‘마츠루’(奉る)에서 파생된 것으로, 본래는 종교적 의식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점점 도시화, 산업화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종교적 의미가 축소되고 관광자원화 되거나, 단순히 유흥적인 성격이 강해지기도 하지만 많은 일본인들은 여전히 이 전통을 지켜 나가고 있다. 어쩌면 일본인들은 거의 매일 신과 만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 방문한 오사카의 ‘텐진마츠리’(天神祭)는 일본의 3대 축제로 불릴 만큼 큰 규모의 대표적 여름 축제이다. 텐진마츠리는 약 천년 전 헤이안 시대에 역모죄로 억울하게 죽은 스가와라 미치자네라는 학자를 기리는 텐만구(天滿宮)신사를 짓고 의식을 시행한 데서 비롯됐다.

 

텐진마츠리는 신의 아이가 오카와 강에 나무로 만든 창을 떠내려 보내는 장면을 재현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이후 신사에서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신령을 모시는 제사를 지내고 나서 마을 단체나 청년회들이 자기 단체의 가마를 메고 신사에서 출발해 유쾌하게 시내를 돌아다니며 주변 상점들의 복을 빌어줬다. 뒤이어 큰 북을 태운 수레와 화려한 우산춤, 사자춤 행렬이 축제의 흥을 돋우며 다녔다. 

 
 

다음날에는 텐진마츠리의 본 행사라고 할 수 있는 ‘리쿠토교’(陸度御)와 ‘후나토교’(船渡御)가 진행됐다. 두 행사는 약 3천 명 정도의 인원이 참가하는데 리쿠토교는 신령을 모신 가마를 선착장까지 옮기는 행렬이고 후나토교는 이 행렬이 배를 타고 오카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행사다. 일본 전통 복장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밤이 되면 화려하게 등불을 밝힌 배들이 오카와 강을 왕래하고, 마츠리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강변은 발 디딜 틈없이 북적인다. 현장은 유카타(일본 전통 여름 홑옷)를 입은 소년 소녀들과, 서늘한 밤에도 땀흘리며 음식을 만드는 노점상들, 뽑기를 하고 싶어 어머니에게 조르는 아이들, 공원에 앉아 서로에게 기대어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연인들로 가득하다. 

 


텐진마츠리가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의 얼굴엔 일종의 자부심과 즐거움이 묻어나왔다. 무더운 날씨, 수많은 인파 속에서 가마를 메고 춤을 추며 행진을 하다보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그보다는 내 손으로 천년의 축제를 만든다는 자긍심이 컸던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거나 그저 돈벌이 목적으로 전통이라는 명분을 붙여 진행되는 축제가 아니라, 동네 주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진행하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은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텐만구신사에서는 주변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 중 한 명을 신의 아이로 뽑아 축제를 시작하고, 행렬 중 가장 화려하고 흥겨웠던 우산춤과 사자춤 행렬도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두, 세 살배기 아이들도 축제복장을 한 부모님 손을 잡고 함성을 지르며 축제에 참여했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도 축제의 일부로 참여하면서 자라나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이 마츠리가 가진 전통적 가치와 중요성을 이야기해준다. 이렇게 자라난 아이들이 마츠리를 주도하면서 지역 문화를 일구는 것이다. 아이들은 책이나 인터넷으로 전통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직접 경험하고 자연스럽게 그 일부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이어지는 지역 전통에 대한 자부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업무 때문에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사를 간 아오이 스이조 씨는 자신의 고향에서 텐진마츠리가 열리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자신도 도쿄에 상경하기 전까진 축제에 참여했었고 고향에 있는 남동생은 축제준비위원회에 소속되어 이번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고향에 대한 애향심을 감추지 않았다. 텐진마츠리가 일본 최고의 축제라는 그녀의 얘기에 도쿄 출신 일행은 격하게 반대하며 서로 자기 동네의 마츠리가 최고라는 논쟁 아닌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 아오이 씨가 ‘한국도 이런 전통 축제나 문화가 친숙하겠지?’라는 물음을 던졌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변하기 힘들었다. 내심 부러운 마음에 ‘너희 조상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여러 가지를 망치는 바람에...’ 라며 심통을 부릴까도 생각해봤지만 우리가 전통문화와 친숙하지 않은 것을 온전히 일제시대 탓을 하기엔 뭔가 설명이 부족한 것 같았다. 일본에 다녀 온 뒤에도 그녀의 질문은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