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게 개인 공원에서 턱수염 난 화가 아저씨~”로 시작하는 노래를 아는가? 나는 ‘미술작가’라 하면 동요 속에 있는 화가 아저씨처럼 공원에 평화롭게 앉아 그림 그리는 사람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현실 속 ‘화가 아저씨’는 이런 평화로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2012년 실태조사에서 미술 분야 작가 중 월 소득 100만 원 이하라고 답한 비율은 79%로 나타났다. 하지만 예술인들을 정말로 힘들게 하는 건 단지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다. 예술과 예술가를 바라보는 인식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현실이다. 자본주의 시대인 만큼 사회에서 돈이 되지 않는 예술은 그 가치를 존중받지 못한다.

문제는 이와 비슷한 인식, ‘돈이 되는 게 최고다’는 사고가 미술계 내에도 존재한다는 데에 있다. ‘(돈 되는) 작가’로 인정받지 못하면 속된 말로 천대받기 마련이다. 안 그래도 예술인을 가볍게 보는 현실에서 ‘작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건 꽤 서글픈 일이다. 몇 달 전 광화문 국제 아트페스티벌이 열렸다. 과 동기들과 함께 참여 작가로 작품을 제출했었던 나는 전시 오프닝에 참석하기 위해 전시장으로 향했다.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오프닝행사에 참가하러 전시장에 들어가기 위해선 작가라도 입장료를 내야한다는 것이다. 이미 앞서 입장한 다른 대학교 작가들도 입장료를 냈었기 때문에 우리들도 내야한다는 게 행사팀의 주장이었다. 결국 나는 입장료 5000원을 내고서야 전시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시위원장들에게 항의했더니 “시비거는 거냐?”며 되려 화를 냈다. 사실 5,000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작가로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 일이 있고 조교님은 “너희들이 미술계로 나가면 이보다 더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며 “지금 겪은 일이 기분 나쁠지 몰라도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대학교라는 틀 안에선 최소한의 ‘방어선’이 있지만 대학을 나와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신진작가들은 전시의 기회를 제공받기도, 수익을 보장받기도 힘들다. 전시 공모전이 있다고 해도 자격 요건을 보면 결국엔 전시 경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작가들은 개인적으로 활동하기보단 화랑이나 갤러리에 소속돼 활동한다. 화랑에 소속된 작가의 작품이 팔리면 유명작가의 경우 7:3으로 분배가 된다지만, 대다수의 경우 수익이 5:5로 분배된다. 표면적으론 수익이 5:5로 분배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마저도 제대로 챙기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구체적인 자료를 찾을 수는 없지만 젊은 작가일수록 상업 화랑에게 휘둘리기 쉽기 때문에 계약할 때 잘 확인해봐야 한다는 말이 파다하고 얼핏 생각하기로도 화랑, 투자자, 작가 간의 이해관계도 복잡할 테니 말이다.

밖에서는 물론이고 미술계 내에서조차 신진작가를 경제논리가 아닌 그 자체로 존중해 주는 시선이 부족한 상황에 정부에서 외치는 문화강국은 그저 공허한 외침으로 들린다.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진 중장년층 작가, 뜨고 있는 소수의 유명작가 위주로 돌아가는 ‘츄파츕스’와 같은 구조는 결국 그 밑을 받쳐줄 신진작가층 형성을 부실하게 한다. 어떤 집단이 잘 운영되기 위해선 중간층이 두터워야 한다고들 한다. 미술계에서 그 중간층을 담당하고 있는 게 신진작가계층이라 생각한다. 미술계가 중장년층과 스타작가 소수가 대두되는 기형적 구조가 아닌 중간층의 확보된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신진작가의 처우개선에 대한 논의가 안팎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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