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수 박사과정
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덧 다섯 달 가까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세월호는 도저히 떨쳐 버릴 수 없는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다. 아직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의 시신이라도 수습하기 위해 수색이 계속되고 있고, 사고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특별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수취인 불명인 채 광화문 광장을 헤매고 있다.

대형 여객선의 침몰 자체도 좀처럼 현실 같지가 않았지만, 이후의 과정은 더욱 초현실적이었다. 지지부진한 구조 과정에 분노하고, 도무지 종잡을 수도, 믿을 수도 없던 언론 보도에 괴로워하면서도 계속해서 진도 앞바다를 주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이 사고에 모종의 책임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임에는 여러 의미가 있어서, 개인적 책임이 제 몸과 주변 사람들의 안위를 챙길 수 있는 역량쯤을 의미한다면 법적 책임은 법의 잣대로 잘잘못을 가려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러나 참사를 바라보며 느꼈던 그 책임의 정체는 개인적 책임도, 법적 책임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간 알게 모르게 몸담아온 현실의 부조리, 몸에 익은 온갖 ‘관행’들이야말로 이 참혹한 사고를 낳은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불시에 다가온 그런 책임이었다. 직접적 형태가 아니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어떻게든 타인의 삶에 연루되어 있음을 일러주는 책임이었다. 많은 이들이 참사를 지켜보며 “미안하다”를 되뇔 때 담고 있던 불편함은 일정 정도 이런 책임에 기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임은 다섯 달이 지난 지금도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 인사들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참사에서 이런 책임의 흔적을 지우고 그것을 개개인의 비극으로 만들고자 하는 듯하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바다에서 일어난 대규모 교통사고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발언을 내뱉고, 유가족 집단이 정치적으로 ‘오염’되고 있다는 분리의 언어들도 망설임 없이 쏟아낸다. 그들의 발언은 이렇게 들린다. 분명 세월호 참사는 측은히 여겨 마땅한 일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고하고 순수한 개개인의 비극에 대한 애도여야 한다고. 세상에서는 간혹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이런 언사에 동의하는 사람이 적잖이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은 ‘현실’이 있고,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 현실을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이라는 인식은 지긋지긋할 만큼 익숙하다. 그런 틀로 세상을 볼 때, 유가족들은 불순한 괴물로 보이거나 뻔한 수작을 부리는 사익집단쯤으로 보일 터이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책임의 상징이 아니라 어느 운 나쁜 이해집단의 비극으로 격하되고, 덤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임을 탕감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를 잊지 않는다는 것은, 이처럼 익숙한 도식으로 돌아가는 대신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그 책임을 응시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와 유가족들의 문제가 다르지 않다는 출발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법을 통해 침몰과 구조, 그 이후의 모든 과정을 되짚는 것은 물론이요,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온갖 부조리들을 거울삼아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는 관행들을 되돌아보고 그런 관행들을 넘쳐나게 하는 조건들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면 세월호 참사는 언제고 최악의 모습으로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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