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연이은 졸전을 펼친 끝에 엿 세례라는 초유의 환영 인사까지 받으며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많은 축구팬들은 이것이 한국 축구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전환점이 되기를 바랐지만 날 선 비판은 대개 이미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른 바 있는 홍명보 감독의 ‘의리 축구’에만 집중됐고, 결국 개혁은 홍 감독을 비롯한 축구협회 관계자들이 줄사퇴하는 한편 차기 사령탑에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겠다고 결정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런 시점에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로드맵을 제시하고자 한 『대학신문』의 시도는 나름 의미가 깊은 편이다. 특히 그 어떤 내홍도 없이 순탄하게 예선을 치른 일본이 체력과 신체조건의 열위, 걸출한 중앙수비수의 부재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해내지 못해 예상 이하의 성적을 거둔 점을 돌이켜보면 국제대회에서의 호성적이 단순히 협회 지도부나 감독을 갈아치우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더욱 타당하게 들린다. 더구나 기사에서도 언급했듯 독일은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스페인과 달리 월드컵 이전부터 선진적인 축구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명망이 높았고 이를 바탕으로 꾸준히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만큼 본보기로서 손색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 명의 축구팬으로서 지금껏 경험해 온 한국 축구의 현 주소를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 기사에서 부각시키고 있는 독일의 사례는 단지 요원한 이상일 뿐 당장 봉착해 있는 난국을 타개하는 데 결정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소년 육성이나 연고 의식 확보 등은 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이미 십수 년 가까이 부단히 노력을 쏟아 온 부분이지만 사실 한국 축구의 가장 시급하면서도 큰 문제는 매스컴을 통한 프로 리그에의 관심 환기 실패와 그로부터 비롯된 각 구단의 관중 부족, 재정난에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백여 년가량 특정 계층으로부터 변함 없는 지지를 받아 온 독일 축구와 달리 한국 축구는 그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해 안정적인 관중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특별한 방법 없이는 외부 스폰서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에 구단의 운영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모기업이 없는 많은 구단들이 이미 만성적인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일본·중동 리그로의 주요 선수 유출과 성적 저조로 인해 그나마 있던 관중들도 떨어져나가는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스컴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유럽과 달리 계층이나 연고 의식이 희미한 한국에서는 특정한 선수나 구단에 대한 대중 매체의 스포트라이트가 관중 수를 크게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당장 중국 수퍼리그의 몇 팀은 모기업의 공격적인 투자로 숱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성과를 거뒀다. 특히 광저우 헝다는 1부리그와 2부리그 사이를 전전하는 그저 그런 팀이었지만 2010년 헝다 그룹에 인수된 뒤 스타급 플레이어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평균 관중이 4만여명에 이르는 중국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자리 매김했으며 급기야는 2013년 숙원인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하기까지 했다. 과감한 투자가 리그의 위상과 수익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셈이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매스컴과 기업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일부 종목에 대해서는 중복 중계까지 감행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지만 이를 제외한 여타 스포츠 종목들에는 사실상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한 스포츠 전문 채널과 대형 포털들이 K리그 중계를 개시하면서 중계가 없어 경기를 관람하지 못하는 일은 가까스로 면했지만 그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은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 기업들은 추가적인 투자를 꺼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존의 후원마저도 철회하려 하고 있다. 최근 서울에 새로운 기업구단이 들어서게 되면서 축구계의 숨통이 다소 트이게 됐지만 이미 국내 유수의 기업을 모기업으로 하는 한 구단은 운영의 비효율성을 이유로 구단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감축했으며 수도권의 다른 한 구단은 최근 모기업이 축구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시민구단으로 전환한 바 있다. 이처럼 매스컴과 기업들은 사실상 한국 축구가 고사할 수밖에 없는 여건을 스스로 조성하고서는 되려 축구의 수익성 부족과 퇴보를 비난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가까운 답은 내부적 개혁보다도 매스컴과 기업들의 선행 투자에 있지만 불행하게도 지금껏 이와 같은 문제와 그 대안을 심도 있게 다룬 매체는 거의 없었다. 『대학신문』 역시 유의미한 청사진을 제시하기는 했어도 이와 같은 정황에 대해서는 다소 고려가 부족했던 듯 보인다. 한국 축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다분히 원론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들보다는 축구 선진국에서의 스포츠 매체의 역할과 수익 제공 방안, 중소 구단들의 투자 유치 방식과 같은 구체적인 대안들일 것이다. 진정으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원한다면 우리가 직접 처해 있는현실의 근간에 더 주목해야 할 때다.

전명준
자유전공학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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