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세계 곳곳 '극우' 세력들의 행동역학 ① 미국 '티파티'(Tea Party) 운동

오래 전 정치외교학부 외교학전공은 학부 답사의 일환으로 동북아시아 역내 안보에서 핵심 역할을 자처하는 미국 제7함대 해군기지를 돌아보기로 결정하고 방문 신청 목적을 동북아시아 역내 안보에 대한 탐구라고 명시했다. 대한민국 해군을 통해 시작한 방문 신청이 승인되어 2009년 겨울에는 일본 나가사키(長崎) 현에 소재한 사세보(佐世保), 2010년 여름에는 가나가와(神奈川) 현에 소재한 요코스카(須賀) 주일 미군 기지를 다녀왔다. 두 차례에 걸친 주일 미군 해군기지 방문을 통해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고 그 중 하나가 티파티 운동이 비공식적으로 애용하는 방울뱀과 “나를 짓밟지 말라”는 문구를 담은 Gadsden 기(旗)와 흡사한 선수기(船首旗)(그림①)가 미 군함에서 펄럭이던 장면이었다.

▲ 그림① 미국 해군 군함 선수기


전자의 경우 강습상륙함 에식스(USS Essex, LHD-2) 함에 승선한 후 당시 사세보 기지단장의 환영을 받은 반면, 후자의 경우 일본 해상자위대 기지 내 잠수대 탐방을 거친 후에야 현역 군인이 아닌 민간인 직원의 인도를 받아 주일 미군 기지에 들어갔다. 통상적으로 사세보는 일반인의 탐방을 제한하지만, 요코스카는 주변을 공원단지로 꾸며 군함이 정박한 근처까지 일반인 접근을 허용한다. 그러나 동북아시아 역내 안보 탐구가 방문 목적이라고 밝히자, 사세보에서는 일본 해상 자위대를 거치지 않은 반면, 요코스카에서는 일본 해상 자위대의 안내를 먼저 받는 조건으로 미군 해군기지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구축함 존 S. 맥케인(USS John S. McCain, DDG-56) 함에 승선해 함내를 돌아보고 나오니 한국계 제프리 김(Jeffrey J. Kim) 함장이 환영해줬다. 그리고 이어진 학부생의 질문에 답하는 함장님 뒤편에 나부끼던 미 해군 선수기(Navy Jack)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 게양했다는 초기 해군 선수기(First Navy Jack)였다. 미 해군은 건국 이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통상적으로 청색 바탕의 백색 별 문양의 선수기를 게양해왔다. 다만 2002년 범세계적 테러와의 전쟁(Global War on Terrorism)을 선포한 W.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초기 해군 선수기로 대체해 군함에 게양하기로 결정해 오늘날에 이른다.

최초로 미국 본토에서 주로 발견되는 방울뱀을 정치적으로 풍자한 사람은 벤자민 프랭클린으로 알려진다. 8조각으로 잘려진 방울뱀을 내분된 미국 식민지에 은유하며 외적으로부터 미국 영토를 지키려면 단합하라는 호소문(“Join, or Die”)과 더불어 사용했다. 이후 방울뱀은 영국의 식민 통치에 대항해 독립을 쟁취하고 이를 수호하려는 정신을 담은 표상이 되었다. 초기 해군 선수기에도 총 13개의 적색과 백색 줄이 세로로 번갈아 배치된 바탕에 꼬리를 풀고 앞으로 튀어 오르는 방울뱀 아래 역시 이 도전적 구호가 보인다. 그렇다면 방울뱀은 미국 시민이 공유하는 가치관과 국가 정체성을 수호하는 상징물이라 볼 수 있다.

“나를 짓밟지 말라”는 경고문이 방울뱀 아래에 나타난 시점은 독립 전쟁 이전부터다. 영국이 보스턴을 점령해 혁명군을 옥죄자, 무기 조달 차단을 목표로 1775년에 미국 최초 해군과 해병대가 창설됐다. 이 때 입대한 해병대원이 황색 바탕의 북 표면에 휘감은 방울뱀과 경고문을 그려 넣었다 한다. 이후 에섹 홉킨스(Esek Hopkins) 해군참모총장에게 이를 비공식적 부대기로 헌정한 크리스토퍼 개즈덴(Christopher Gadsden) 대령을 기려 게즈덴(Gadsden) 기(그림②)라고 부른다. 이후 방울뱀은 도발하지 말라는 경고문과 더불어 기득권 세력의 부당한 억압에 항거하는 미국인의 도전 정신으로 인식되어 내려온다.

▲ 그림② 미국독립운동 당시 혁명국기(Gadsden Flag)

티파티 운동의 공식 홈페이지(www.teaparty.org/about-us)에는 티파티를 “우리가 사랑하는 조국 미합중국의 안보, 주권 및 국내 평온에 도전하는 음해세력을 경계하도록 일깨우는 풀뿌리 운동”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1773년 영국의 압박에 항거한 보스턴 티파티 주역의 후계자임을 자부한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정치후원세력으로 두각을 나타낸 티파티 운동은 소위 자유의지론자(libertarian), 대중영합주의자(populist), 보수주의자(conservative) 세력이 융합된 연대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보수주의적 사회가치관 자체보다 미국 연방헌법이 표명하는 통치 원칙 중 하나인 ‘제한된 정부(limited government)’를 구현하는데 주력한다.

무엇보다 티파티 운동은 전국적 조직을 갖춘 사회운동이라기보다 ‘제한된 정부’를 지향하는 다양한 세력이 지엽적으로 결집한 연대에 가깝다. 단지 집권세력인 민주당 정권에 대항하고 심지어 동지인 공화당 지도부에 도전하기 때문에 극단적 보수 세력으로 치부해 극우파 단체와 동일시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티파티 운동이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로 양대 정당 간 양극화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즉 양극화는 미국의 다원주의적 자유주의의 근간을 흔들면서 타협과 절충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의 묘(妙)를 상실한 결과, 미국식 민주주의를 신앙으로 승격시킨 부산물로 티파티 운동이 조직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시민은 정당정체성과 별개로 정부, 특히 연방정부에 대한 의혹을 공유한다. 이는 구대륙으로부터 이주와 신대륙의 건국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돼 정부 구제보다 개별 능력 발휘를 우선시하는 개인주의 전통에 기인한다. 더욱이 미국식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 증대를 위한 법적 평등이나 기회 균등을 중시한다. 따라서 진정한 보수주의는 건국시조가 헌법에 표명한 ‘제한된 정부’를 제고하기 위한 정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런데 1980년대부터 공화당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정권 장악에 성공하면서 집권 유지에 집착한 나머지 역설적으로 미국 보수주의 원칙을 저버렸다는 배신감이 팽배해졌다.

일찍이 1970년대부터 보수주의 지지 세력은 1960년대에 민주당 정권이 과도한 자유주의를 정책으로 구현하려는 과욕을 부린 결과 건국이념인 ‘제한된 정부’ 원칙을 통째로 폐기했다고 반발하며 지엽적으로 결집했다. 아울러 1980년대 워싱턴 입성에 도취해 또 다른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된 공화당 정권의 정책노선에도 1990년대부터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변절한 자유주의자가 포진한 보수주의 아류인 신보수주의를 신봉한 소위 네오콘(neocon)과 공화당 정권을 몰아붙였다. 즉 티파티 운동의 진원지는 과도한 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한 민주당이지만, 타락한 공화당이 보수주의 지지 세력의 내폭을 초래한 결정적 빌미를 건넸다.

그럼에도 결국 네오콘이 사회적 보수주의를 정치쟁점으로 부각시킨 후광 덕에 티파티 운동 지지 연대가 정치세력으로 성공적으로 정립됐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바로 이 치명적 취약점을 극복하고자 티파티 운동은 보다 근본주의적 정치색을 띠는 정치세력으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작년에는 미 해군 특수부대의 군복 견장에서 “나를 짓밟지 말라”는 문구를 삭제하라는 대통령령(令)이 전달됐다는 오보 소동도 있었다. 그러나 올 여름 에릭 캔터(Eric Cantor) 하원의장은 결국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티파티 운동이 후원한 정치초년생 데이브 브랫(Dave Brat)에게 고배를 마셨다. 2014년 미국 중간 선거를 두 달 남짓 남긴 시점에서 티파티 운동의 잰 걸음이 어떤 정치풍경을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 이옥연 교수
정치외교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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