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만나는 시간, 경전선
느리게 만나는 시간, 경전선
  • 김유정 기자
  • 승인 2014.09.21 0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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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늘 빠른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여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빠른 길을 통해 여행지에 도달하고, 빠르게 인증사진을 찍고, 빠른 스마트폰으로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 다시 빠른 길로 돌아온다. 과연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는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지칠 때, 쉼을 얻고자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빠른 여행에서는 쉼을 찾을 수 없다. 느린 여행, 그곳에서 비로소 쉼을 얻을 수 있고, 낯선 삶의 터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여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빠름을 추구하는 현대에서 시속 30km로 달리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차 ‘경전선’이 있다. 경전선은 경상도의 ‘경’과 전라도의 ‘전’을 따서 명명한 간선철도이다. 광주 송정역에서 밀양의 삼랑진역을 잇는 300.6km의 길로 영호남을 연결하는 유일한 철도망이다. KTX라면 1시간이면 넉넉할 거리를 무궁화호는 5시간 걸려야 종착역에 도착하지만 그 느림 속에 미학이 있고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있다. 경전선의 철길을 따라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공간들, 경전선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경전선을 따라가 보았다.
 

역을 가꾸는 사나이

 

서광주역에서 출발한 경전선을 타고 가던 중 능주역에 이끌려 내렸다. 대합실은 매우 작고 아담했는데, 들어서니 아무도 없다는 듯 조용한 적막이 느껴졌다. 하지만 능주역으로 들어가는 길의 화분이며 주변의 꽃들은 누군가의 손을 탄 듯이 잘 가꿔져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보니 기찻길 옆 나무들의 삐져나온 가지들을 자르고 있는 아저씨 한 분이 계셨다. 바로 능주역 박희훈 역장님이셨다.

 

33년째 역장을 맡고 계신다는 아저씨는 광주역에서 부역장까지 하시다가 작년에 능주역으로 오셨다고 한다. 큰 역들만 맡다가 이용객이 거의 없는 작은 시골 간이역으로 내려온 아저씨는 경전선을 이용하는 몇 안 되는 승객을 위해 역을 가꾸기 시작하셨다. 환한 웃음과 함께 아저씨는 “능주역 오다가 옆에 정자 하나 못 보셨어요? 경전선 최고의 풍경을 볼 수 있는데… 그 풍경은 기차 창밖을 통해서 봐야 제맛이지!”라며 영벽정을 소개해주셨다.

 

일찍이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시인 묵객들이 다녀간 풍류의 산실로, ‘능주팔경’으로 꼽혀온 영벽정이 지석천 물빛에 비친 풍경은 찬란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크고 화려한 정자의 모습에 웅장함이 느껴졌다. 이곳 영벽정이 다시 세상에 알려진 건 그 주변에 기차가 지나면서부터라고 한다. 기찻길 위에 올라서 바라보는 영벽정의 모습은 마주보고 있는 연주산과 그 사이에 맑은 강물이 조화를 이뤄 더욱 빛났다.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영벽정의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우리는 7080세대

기차는 세 명의 손님만 내려준 채 다시 길을 떠났다. 대합실을 나오자마자 눈에 보인 것은 벽에 그려져 있는 이순신 장군을 시작으로 장난감가게, 만화방, 문구점, 옛 득량초등학교 교실 등 문화의 거리가 펼쳐져 있었다. 

 

득량역 주변 빈 점포와 공간을 활용한 거리는 2011년 ‘득량역 전통문화공간 조성사업’에 선정돼 만들어졌다. 기껏해야 몇십 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70, 80년대의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져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영업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행운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에는 주인 아주머니와 회상에 잠긴 부부가 앉아있었다. 조금 전 득량역에서 같이 내린 두 분이셨다. 전북 정읍에서 오신 이연석 씨, 백정화 씨 부부는 우연히 TV를 통해 이곳을 알게 돼 옛 추억을 되찾고자 오셨다고 한다.

 

이연석 씨는 “여기 길거리 구경했소이? 정말로 똑같이 잘해놨구먼. 마치 지금 학창시절로 돌아간 것 같당께. 올해 친구들과 여행가기로 했는데 여기에 와서 함께 추억을 나눠야겠구먼”하시며 다방 한쪽에 진열된 오래된 LP판으로 시선을 향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LP판을 잘 모르제. 우리 세대 때는 이 LP판이 없었다면 음악을 들을 수 없었소이. 이걸 여기서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당께. 나 때는 이미자 누나가 최고였지” 라며 아저씨는 LP판 한 장을 꺼내 텐테이블에 올렸다. 금세 다방 안에는 이미자의 아름답고 고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음악을 한참 듣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저녁이 됐다. 부부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필자에게 저녁을 같이 하자고 권했다. 몇 번을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딸 같아서 그러니께 거절하지 마소이. 든든하게 저녁을 먹여서 보내야지 우리 맘이 편할 것 같아서 그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손을 흔드는 두 분을 뒤로 한 채 경남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책 읽는 소녀를 만나다

옥곡역을 가는 다음 기차를 기다리던 중 승강장에서 책을 읽고 있는 소녀 한 명이 눈에 띄었다. 그녀가 읽고 있던 책은 윤동주 시집이었다. 김선경 씨는 윤동주 시인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윤동주 시인의 팬이셨어요. 어렸을 적 항상 자기 전에 윤동주 시인의 시 한 편을 읽어주곤 하셨죠.” 소녀의 눈에 어린 시절 추억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할머니 집을 방문한 소녀는 마침 근처에 윤동주 시인의 유고가 숨겨졌던 정병욱 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홀로 여행을 나섰다고 한다.

 역사와 함께 살아가다소녀를 따라 걷다 보니 눈앞에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공터 옆 낡은 집 한 채가 시간이 멈춘 듯 서 있었다. 바로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숨겨뒀던 정병욱 가옥이다. 

 

윤동주 시인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여의치 않게 되자 자필 원고를 하숙집 후배였던 정병욱에게 맡겼다. 윤동주 시인이 항일운동 혐의로 옥사하게 되고, 마루 밑에 보관돼 있던 원고는 해방을 맞은 후 정병욱이 다시 찾게 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이곳에 유고가 보존되지 않았다면 우린 그의 유명한 「서시」, 「별헤는 밤」 등 대표작을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원고가 숨겨져 있던 마루가 표시돼 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던 소녀는 “근대문화유산이라고 적힌 명패만 아니었다면 폐가로 볼 수 있을 만큼 덩그러니 방치돼 있는 모습이 안타깝네요. 다음에는 어머니와 함께 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아쉬운 발걸음만 남긴 채 쓸쓸히 떠났다.

 

역사와 함께 살아가다

느릿느릿한 기차를 타고 삼랑진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삼랑진은 경전선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경부선과 경전선이 만나는 삼랑진역은 1900년대에 철도 교통의 요충지였다고 한다. 그에 걸맞게 철길 옆에는 무성한 담쟁이넝쿨로 덮힌 급수탑이 우람하게 서있었다.

 

 급수탑은 예전에 증기기관차가 운행되던 시절, 기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역내에 지어진 철도 시설물이다. 삼랑진역 승강장에서 대합실을 잇는 지하통로에는 삼랑진의 옛 역사가 담겨 있다. 그 사이로 검은색 우산을 쓰고 유유히 지나가는 할머니가 계셨다. 매일 기차를 타고 진주에 장사하러 가시는 박춘선 할머니께서는 “아휴 기차가 자주 없어 불편해 죽겠어. 매일 시간도 바뀌고. 옛날에는 여기가 교통의 중심이어서 기차도 자주 있고 매일 기차역으로 오가는 사람들로 미어터졌는데…”라며 옛 기억을 더듬으며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여기 삼랑진 대부분이 철도 관사 자리였제. 내가 여기서 한 50년 살았는데, 지금은 개조한 곳도 많지만 골목길하고 겉은 옛날하고 똑같아. 한번 가봐.” 곧이어 진주로 향하는 기차가 들어오자 할머니께서는 “그래도 이 늙은이들한테는 기차만큼 편한 교통은 없어”라는 말씀을 남긴 채 기차와 함께 떠나셨다. 할머니를 배웅해드리고 삼랑진역을 나와 보니 일제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가옥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철도관사는 일부 변형이 됐지만 할머니 말씀대로 옛 가옥과 골목의 형태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집을 개조하기 위해 공사가 진행 중인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일본 특유의 축조법으로 지어져 하나같이 비슷한 모양을 띠고 있었다. 이곳의 골목길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거친 삼랑진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의 인기척이 없는 이곳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다시 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역으로 돌아오니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퍼붓던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해가 드러났다.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경전선 여행은 마무리 됐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만남’에서 찾을 수 있다. 바쁜 삶을 잠시 멈추고 경전선을 통해 마주한 공간들, 사람들과의 만남은 그 어떤 만남보다 강렬했다. 하지만 총 60곳의 경전선 역 중에 많은 역들이 이용객 감소에 따라 자취를 감추고 현재 34곳의 역만이 남아있다. 더군다나 지금은 선로를 곧게 하는 작업과 복선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기차가 빨라지는 순간 우리는 또 문화를, 역사를 무심하게 지나치게 될 것이다. 과연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지나온 과거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경전선을 타고 느린 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추천한다. 철컹거리는 소리와 시골 풍경을 배경 삼아 시간이 멈춘 듯한 오래된 역마다 갖고 있는 사연을 알아가고, 그 지역 사람들과 소통하며 장터의 푸짐한 인심의 맛집을 들러 여유로움을 즐기기를 권한다.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과 문화재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과거를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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