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관악의 영화동아리 '씨네꼼, '얄라셩'

낮밤 가릴 것 없이 불이 켜진 시간보다 꺼진 시간이 더 긴 동아리방이 있다. ‘씨네꼼’의 사람들, 이른바 ‘꼼인’들은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매일 암전된 스크린 앞에 앉는다. 한편 스크린 뒤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무거운 카메라를 지고, 이곳저곳을 종횡무진 하는 ‘얄라셩’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그러나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은 관악의 영화광 6인을 만나봤다.


암실 속 스크린 앞의 사람들

오늘도 꼼인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꼼방’(두레문예관 401호) 대상영실의 불을 끈다.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어 중1 때부터 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다녔다던 문상효 씨(영어영문학과·석사과정), 두기봉의 「미션」을 보고 영화에 푹 빠졌다는 최소연 씨(식품영양학과·11),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동아리에 들어왔다가 1년에 영화를 230편씩 보는 영화광이 됐다는 박지태 씨(기계항공공학부·09)에게 이미 영화는 삶의 대부분이다.

▲ 씨네꼼의 최소연(왼쪽), 박지태(가운데), 문상효(오른쪽) 씨가 영화를 고르고 있다. 동아리 방 내부에는 언제든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영화가 책꽂이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사진: 신윤승 기자 ysshin331@snu.kr

◇영화를 ‘체험’하기 위해 이곳으로=“「인디아나 존스」에서 굴러오는 돌을 피해 사람들이 도망치는 장면이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첫 이미지에요”라고 말하는 문상효 씨는 영화적 체험에 도취된 영화팬이다. 그가 말하는 영화적 체험이란 화면 자체가 뇌리에 박히는 것이다. 단순 줄거리뿐이 아닌, 시각적 요소, 음악 그리고 관객들의 호흡까지도 이 총체적 체험에 영향을 준다.


꼼인들은 이 영화적 체험을 위해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시대에 굳이 상영실이 있는 꼼방에 모인다. 꼼방은 그들에게 내 옆 사람의 웃음과 울음이 섞인 공기를 마시며 영화를 다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체험의 공간이다.


◇우리는 영화 컬렉터=영화를 단돈 몇백 원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시대에 꼼인들은 영화를 소장하기 위해 그보다 몇백 배의 값을 지불한다. 출시가 기준으로 DVD는 약 1~2만 원, 그보다 화질이 4배가량 좋은 블루레이는 3만 원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컬렉션을 모으는 한편 남의 컬렉션에 참견하는 것도 좋아한다.

누군가가 관심 있어 하던 영화가 세일을 하면 기꺼이 정보를 제공해준다. 최소연 씨는 “본래 30만 원에 나왔던 ‘찰리 채플린 컬렉션’이 10만 원에 시중에 풀린 것을 보고 꼼인 중 하나가 홍보를 했었다”며 “이 때문에 동아리 사람들이 대량 구매를 한 적이 있다”고 일화를 털어놨다.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를 보기 위한 ‘해외직구’도 성행하고 있다. 11월마다 열리는 미국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기간에는 꼼인들끼리 서로 구매목록을 비교한다. 한글 자막이 없는 외국영화를 보기 위해, 자막을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문상효 씨는 “영어 자막에 장벽을 느끼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크」의 자막 번역을 시도한 적이 있다”며 “그러나 대사에 욕이 많아 번역이 생각보다 까다롭더라”고 지난날의 경험을 털어놨다.


◇영화 볼 수 있는 기회 제공돼야=영화광들이 생각하기에 한국은 아직 영화를 볼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아니다. 블록버스터에 집중한 멀티플렉스와, ‘다양성 영화’를 타겟으로 삼은 예술영화관 사이에서 소위 ‘중형 영화’들이 갈 곳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태 씨는 “잘 만든 오락영화, 그러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엔 어려운 작품들이 피해를 많이 봤다”며 “얼마 전 사망한 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마지막 작품인 「모스트 원티드 맨」이 대표적인 사례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동아리 외부에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씨네꼼은 매학기 영화제를 기획한다. 22일(월)에 개최하는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제’는 8개월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열린 행사다. 박지태 씨는 “기획을 위해 영화계의 거장이 만든 37편의 영화와 그의 일생을 다룬 책 ‘히치콕’을 읽었다”며 “히치콕은 평생 동안 영화를 만든 감독이니만큼, 그의 삶에 대해 되돌아보는 기회가 됐다”고 기획소감을 밝혔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은 영화광이 되기 위해선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같은 영화를 2번 이상 본다. 둘째, 영화평을 쓴다. 셋째, 영화를 만든다. 그의 말대로라면 영화를 ‘만드는’ 얄라셩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영화광이 아닐까? 좀비물의 세기말적인 분위기에 매료됐다는 남궁준 씨(물리천문학부·11), 세상을 알기 위해 영화를 본다는 김수림 씨(정치외교학부·10), 그리고 방황하던 시절 하루에 3~4편씩 영화를 봤다던 천병국 씨(철학과·08)를 만나봤다.

▲ 얄라셩의 남궁준(왼쪽), 김수림(가운데), 천병국(오른쪽) 씨가 자신이 제작한 영화를 설명하고 있다. 영화를 설명하는 그들의 말해서 영화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사진: 김희엽 기자 hyukmin416@snu.kr


◇참을 수 없는 창작의 즐거움=남궁준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영화 동아리 ‘씨네필’에서 활동하던 ‘씨네필’이다. 그의 첫 영화는 당시 다니던 학교를 무대로 한 공포물이다. ‘왕따를 시키면 안 된다는 교훈적인 내용’이었는데, 잔인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상영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당시 그는 가짜 피를 연출하기 위해 건어물 가게에서 산 빨간색, 녹색의 식용색소를 물엿에 탔다. 남궁준 씨는 “입에 피를 머금고 있으면, 이상한 단맛이 나더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창작에 대한 욕구는 대학에 와서도 계속됐다. 남궁준 씨는 입학과 동시에 얄라셩에 가입해 3년 반 동안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영상미보다도, 최대한 사실적으로 피사체를 잡아내는 데 주력하자는 것의 그의 촬영관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소품을 챙기는 것부터 짐을 옮기는 것까지 사소한 부분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그는 장비를 지하철로 옮기다가 감전을 당할 뻔한 적도 있다. 넘어야 할 우여곡절이 많은데도, 그는 왜 영화를 찍는 걸까? 이에 “그냥 재밌어서”라고 단숨에 답하는 그의 모습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특유의 기쁨이 묻어났다.


◇나를 알리기 위해, 세상을 알기 위해=“어렸을 때부터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컸다”는 김수림 씨. 유년시절에 「사운드 오브 뮤직」 비디오를 계속 돌려보다 못해 영화를 거의 외우다시피 했던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할 수단으로 자연스럽게 영화를 택했다. 김수림 씨는 고등학생 때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일상을 각색한 영상물을 찍어보는 수준에서 그쳤다가 대학에 와서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잡았다. ‘영상과 현실’ 수업에서 머리가 파랗게 될까봐 두려움에 시달리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B급 영화「머리」를 연출했다.


영화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그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처럼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저의 마음을 움직여요”라고 말하는 김수림 씨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며 현실에 발붙이고 살기 위해 오늘도 영화를 본다.


◇영화란 소통이다=천병국 씨의 첫 작품인 「안식처」는 신변잡기적으로 풀어낸 자신의 ‘기억’에 대한 기록물이다. 그는 하루만에 시나리오를 집필해 바로 다음날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장에서도 무엇을 엄격히 지시하기보다는 스태프들이 찍고 싶은 대로 찍게했다. 천병국 씨는 “영화는 ‘나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지만, ‘다른 사람의 기억’과도 비슷하기에 촬영감독이 자유롭게 찍게 했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영화는 ‘말을 대신할 수 있는 언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에게 영화는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무언가를 강하게 의도한 연출보다 자연스러운 연출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노력한다. 소통 그 자체에 매력을 느낀다는 천병국 씨는 자신의 말을 전하기 위해 얄라셩에서 벌써 5년째 영화를 만들고 있다.


‘영화’라는 공통점 하나로 뭉친 그들은 저마다의 아지트에서, 자생적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오늘도 6명의 영화광들은 스크린의 앞과 뒤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를 사랑하고 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