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변하는 공간, 그곳을 기억하려는 음악
쉼 없이 변하는 공간, 그곳을 기억하려는 음악
  • 강수원 기자
  • 승인 2014.09.21 0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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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신림의 음악공간

신림(新林), 이름 그대로 숲처럼 펼쳐진 주택 단지가 있고 매년 이파리가 새로 돋아나듯이 거주자들이 들고 나는 곳이다. 뜨내기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분주한 동네는 한 곡의 노래를 들을 여유도 없을 만큼 음악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렇지만 신림에서도 바쁜 사람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공간이 곳곳에 있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일상의 한 자락에 자리 잡고 있던 신림동의 음악 공간들은 어떤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추억의 라이브 쉘브르=‘쉘브르’는 우연히 신림에 와서 정착한 강진 선장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다독여주는 노래를 11년간 이어온 곳이다. 그는 “요즘 ‘힐링’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데 알고 보면 이곳은 생겼을 때부터 ‘힐링 캠프’였다고 할 수 있다”며 “좋은 음악으로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을 천직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추억의 라이브’에 걸맞게 쉘브르는 포크, 올드팝과 같이 향수를 자극하는 음악들을 생생하게 들려주기 위해 노력해왔다. 붙박이처럼 카페에 상주하는 강 선장은 오후 2시부터 문을 열고 음악 공부를 하거나 노래를 연습하며 손님 맞을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저녁 식사가 끝나는 9시 무렵부터 3~40분 간격으로 서너 번 반복되는 무대는 별도의 음향 장비를 사용하지 않아 진정성이 담긴 목소리를 직접 느낄 수 있다.


작은 배처럼 아담한 카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제 한 가족처럼 함께 카페를 가꾸고 있다. 강 선장은 “애니메이션 감독, 영화감독, 회사 사장,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 등 직업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며 “모두가 음악을 많이 듣고 조예가 깊은데다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친구처럼 서로를 형·동생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면 손님들과 강 선장 사이에선 서로 사람 사는 이야기나 사적인 이야기가 오가며 밤이 깊어간다. 매년 10월 마지막 토요일에 강 선장은 손님 30여 명을 초대한다. 이날 그는 ‘식구들’에게 맥주를 쌓아 놓고 무대에서 노래를 직접 부를 기회를 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쉘브르는 당분간 이곳에서 ‘소중한 문화공간’을 지켜나갈 예정이다. 강 선장은 “신림은 집값이 싸고 이동이 많은 동네”라며 “1년도 지나지 않아 떠나다보니 이곳의 특색을 만들며 정착할 사람들이 없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어 그는 “오너로서 욕심은 내려두고 여기 있는 동안 끝까지 음악을 고집할 것”이라고 말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이거는 JBL4344인데 구입할 당시로 치면 집 한 채 값이죠. 이거는 멕켄토시 MC2500 앰프고….”
디제이 35년 경력의 나승환 대표는 그가 아끼는 스피커와 앰프 하나하나의 모델명과 특징을 말한 후 LP판을 바꿔 재즈 음악으로 바를 가득 채웠다. 이어 그는 19살 때 영등포에서 시작해 한국에 얼마 없는 3세대 디제이가 되기까지 걸어온 음악 이야기를 풀어갔다.

 

신림의 외진 곳에 위치한 ‘별이 빛나는 밤에’는 올드팝과 가요를 포함한 8·90년대 음악을 모두 레코드판으로 직접 틀어주는 것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서울 전역에서 교수나 방송국 PD들을 비롯해 음악을 듣는 귀가 있는 마니아들이 택시를 타고 찾아올 정도라고 한다. 나 대표는 “여기는 그럴듯하게 장식용으로 LP판을 1만 장, 2만 장 쌓아놓고 젊은 디제이가 컴퓨터로 음악을 틀어주는 곳이 아니다”며 “내가 손수 음악을 틀며 30년 전 느낌을 그대로 담고 있는 정통 LP바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음악을 더욱 분위기 있게 즐길 수 있는 요소들도 눈에 띈다. 가게 한 쪽 벽에는 그가 열아홉 살 때부터 모은 5천여 장의 고급 LP판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음악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아날로그 느낌의 인테리어는 모두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곳곳에 놓인 8개의 스피커는 식사를 마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고음질의 음악을 들려준다. 바 한편에는 작은 무대와 스크린이 있으며 매년 겨울 미사리에서 활동하는 통기타 가수들을 섭외해 공연한다.


나 대표는 신림에도 다른 곳과 차별화된 ‘고품격 문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호프집, 막걸리집, 분식집들이 많은데 이렇게 한 쪽으로 쏠리면 무슨 재미가 있겠냐”라며 운을 뗀 나 대표는 “재즈, 샹송, 라틴 음악 등 80년대 다양한 음악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이런 곳도 필요하지 않겠냐”며 웃으며 말했다.

 


◇라이브 DMZ=‘라이브 DMZ’의 시작은 신림에 통기타 라이브 카페가 곳곳에 들어서던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곽덕신 사장은 “신림은 값이 싸서 집을 구하기 쉬운 만큼 90년대 지방에서 음악을 하던 분들이 많이 상경해 대학가에 정착했다”고 설명했다. 이 시기 정착해 20년 넘게 자리를 지켰던 ‘뮤직 아트 갤러리(MAG)’의 명맥을 잇고자 만들어진 곳이 ‘라이브 DMZ’다.

 

강아지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이곳에서는 80년대 후반부터 최근에 이르는 폭넓은 음악을 수입맥주를 곁들여 직접 들을 수 있다. 공연은 매시 정각에 시작되며 ‘가수가 부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신청곡도 받을 수 있다. 곽 사장은 “노래방 문화가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라이브 카페는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오는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곳에서는 김광석이나 김현식처럼 90년대 유명한 가수들의 노래는 물론 최신 알앤비나 발라드도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이브 DMZ’는 그야말로 모두에게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실용음악을 전공했지만 음악을 할 공간을 찾지 못한 아마추어들에게 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거나 밴드들에게 무대를 대관해주기도 한다. 또 곽 사장은 “우리 카페는 반려 동물 문화를 장려한다”며 “일반적인 카페와 다르게 애완동물이면 개든 고양이든 소든 데려올 수 있다”며 장난기 있게 말했다.


물론 신림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는 데는 어려움도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있었던 라이브카페들이 경기 침체로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라이브 DMZ’도 자유롭지 않다. ‘라이브 DMZ’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6년 전에는 유흥업소로 착각한 손님들이 카페를 어지럽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라이브 DMZ’는 그동안 신림동 사람들의 삶에 묻어있었던 것처럼 ‘숨쉬는 듯 자연스러운 음악’을 이어가고자 한다. 곽 사장은 “주인이 바뀌더라도 계속 음악을 하는 공간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둘러보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자리한 신림의 음악 공간들을 보고 놀랄지도 모른다. 바쁜 일과가 끝나고 매번 집이나 고시촌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만 했다면 이번 주는 마음을 아늑하게 해주는 음악 공간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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