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웹툰 「하이브」리뷰

▲ 김성훈
대중문화 평론가

현대 사회는 수천 년을 거치며 진화를 거듭해온 인간 문명의 축적된 결과물이다. 그 속에서 지금의 인간들은 매우 편리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배가 고프면 전화 한 통으로 원하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으며,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집안의 기계들이 알아서 청소와 빨래를 해결해준다. 게다가 땀 흘려 운동할 필요없이 몇 시간 수술로 몸 속에 숨어있는 수십 킬로그램의 지방 덩어리를 제거할 수도 있으니, 우리들은 ‘지상낙원’의 현실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인간이 이룩한 문명은 어쩌면 우리가 짐작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하이브」는 이런 위대한 현실이 얼마나 순식간에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경고의 메세지, 하나! 재난은 평범한 일상에서 출발한다


시작은 아주 미약하다. 평범한 가정의 아침, TV에서 들려오는 뉴스 하나로부터 사건의 단초는 제공된다. “대기 중 산소농도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앵커의 멘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출근에 나서는 주인공의 우울한 얼굴과 겹쳐지며 불안감을 형성한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홍수와 지진, 가뭄과 쓰나미 등의 소식을 시시때때로 접하는 우리들에게 고작해야 대기 중 산소농도가 높아졌다는 소식은 큰 위기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주인공에게는 오늘도 사무실에서 울려퍼질 상사의 태풍같은 잔소리와 꾸지람이 더 큰 위기일지니,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감’ 같은 얘기는 귀에 들리지도 않을 듯하다.


물론 TV 속 앵커가 전하는 소식이 조만간 나에게 닥칠 재앙에 대한 경고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한 집안의 평범한 가장으로서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아내와 아이의 평안을 책임져야 하는 주인공이 출근 외에 다른 선택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게 내 가족의 마지막 모습이란 걸 알았다면…”이라는 뒤늦은 후회를 보이는 것도 사실 부질없는 짓이다. 닥쳐올 재난을 예감했을지언정 그가 출근길 대신 피난길에 오를 수 있는 선지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그에게 피할 수 있을 때 피하라는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환경변화에 대한 뉴스와 함께 아내 역시 블로그에 올라온 ‘거미줄에 걸린 새’와 ‘뱀을 잡아먹는 메뚜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위기에 관한 전조는 제공됐고, 스스로 판단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주인공에게 있었다. 하지만 생태계의 파괴와 먹이사슬 교란에 관한 얘기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의 미련도 없이 주인공은 일상에 떠밀려 출근길에 오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가족과 헤어지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셈이다. 주인공이 직면했던 이런 상황은 고스란히 현실의 인간에게로 이어진다. 다양한 자연재해의 형태로 지구는 인간들에게 수차례 경고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택하는 단어는 변함없이 개발과 발전이다. 가족과 헤어진 주인공에게 부여된 시련이 이제 시작인 것처럼 여전히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는 인간들에게도 지금까지의 자연재해는 더 큰 재난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경고의 메세지, 둘! 벌레, 최상위 포식자 인간에게 경종을 울리다

▲ 삽화: 최상희 기자 eehgnas@snu.kr

자연이 전하는 경고의 메시지를 생태계의 교란으로 시작한 작품은 곧이어 구체적인 재앙을 준비한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벌떼’를 통해서다. 하지만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메뚜기나 거부감을 일으키는 냄새로 출몰하는 곱등이 등으로 인해 벌레가 주는 피해에 대해서는 우리들 역시 어느 정도 이력이 나있다. 게다가 간혹 뉴스에 등장하는 맹수의 동물원 탈출 소식이나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야생동물의 민가 습격 소식을 통해 인간사회를 침범하는 이종이 있다는 사실 역시 진작부터 인지해왔다. 그러니 웬만한 형태, 웬만한 이탈로는 우리의 높아진 기대치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그래서일까? 작품은 보통 벌레가 아닌 집채만한 벌레를 준비해놓았다. 그것도 한두마리가 아니라 떼로 등장시키고, 피해의 정도도 고작해야 농작물 정도가 아닌 인간을 지배하는 모습으로 출현한다. 그 출발점은 주인공의 회사다.


아내와 아이의 배웅을 받으면서 출근길에 오른 주인공이지만,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상사로부터 비난과 꾸지람만 듣는다.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옥상에 위치한 휴게실로 나온 그의 눈앞에 갑자기 집채만한 말벌의 무리가 등장한다. 그 순간, 어안이 벙벙한 주인공으로서는 기절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리고 그가 눈을 뜬 순간 작품이 우리들에게 지금까지 조심스레 보냈던 경고는 이제 구체적인 사건으로 실체를 드러낸다. 생존자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쓰러진 사람들의 몸마다 벌레의 알이 놓여있는 것이다. 즉, 주인공이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이 벌레들의 먹이로 둔갑한 현장이다. 그것은 곧 역사 이래로 항상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해왔던 인간이 먹이사슬 제일 아래로 자리바꿈하는 순간이다. 돌이켜보면, 아마존의 밀림 같은 곳에서는 모기에 한 번만 물려도 생사를 오갈 만큼 인간은 육체적으로 나약한 존재지만, 적어도 문명을 이룬 인간사회에서는 지금까지 인간에게 대적할 생명체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문명사회의 이면에 인간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들에게 희생을 강요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인간들의 안하무인과 오만방자함에 「하이브」는 반기를 들어올린다. 제목처럼 ‘벌떼’를 동원해서 말이다.


경고의 메세지, 셋! 그래도 사람이 제일 무섭다


벌레 가득한 건물에서 주인공은 직장 동료인 성 대리를 구출하여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다.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그의 눈앞에 위풍당당한 전차의 모습이 보이니, 이제 막강한 화력을 지닌 군대가 출동해 벌레들을 박멸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전차의 실체가 이미 벌레들한테 공격당한 것으로 밝혀지고, 인적조차 없는 살벌한 거리 풍경은 주인공의 생존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일이 더욱 큰 일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다면 서울 하늘 아래 거리 곳곳마다 가득했던 그 많은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의문이 풀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주인공의 손에 들린 ‘계엄령 선포’와 ‘대피소 정보’에 관한 전단지가 그 답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것은 주인공 역시 아내와 딸을 찾아 ‘탈출 대장정’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 엑소더스’의 현실을 깨닫자마자 주인공에게는 또 다른 위협이 등장한다. 서울을 미처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무리를 형성해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공격하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살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동족에게마저 죽음을 강요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꽤 견고하게 구축된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며, 그것은 곧 그 견고함이 무너질 때 ‘인간’이라는 개념 역시 부질없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침내 벌레들의 추적을 피해 주인공은 서울 외곽에 자리잡은 대피소 부근까지 도달한다. 대피소 역시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주인공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와 아이에 대한 일념으로 대피소로 향한다. 이 때, 우연히 만난 곤충연구자는 주인공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벌레들의 모습을 관찰해왔다는 그는 “곤충은 지구상에서 가장 조화로운 생명체”라는 얘기와 함께 “인간은 유일무이한 존재나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그냥 지구에 사는 한 종일 뿐”이라는 말을 전한다. 그것은 곧 현실 속 우리들로 하여금 자연 속에서 일부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요컨대 다른 생명체들과 공생하지 않고 인간 홀로 살아갈 수는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단지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라고 해서 ‘박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기심을 버리지 않는 한, 인간의 생존이 그리 오래갈 수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그 어떤 시대보다 위기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매뉴얼화 되어 그것이 주는 편리함 만큼 매뉴얼이 붕괴되었을 때 닥쳐올 위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위험보다 훨씬 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이브」는 그런 재앙의 현장을 생태계의 먹이사슬 관계를 파괴시킴으로써 미리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오만함을 버리고 생존의 비상구를 찾을 수 있기를 권고하고 있다. 물론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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