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유적을 발굴하고 박물관에서 유물을 정리하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유물을 접하게 된다. 그중 석기와 토기는 나무나 뼈, 금속 등 다른 소재에 비해 다소 가혹한 환경 조건에서도 비교적 잘 살아남기 때문에 빈도와 수량에서 다른 유물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유물을 전시하고 연구하는 작업도 대부분 이 두 가지 유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발굴, 전시, 보고서 작업은 가장 기본적인 고고학 성과물로서, 모두 한 개인의 힘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각각의 임무를 완수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게 되는데, 공동 작업이 늘 그렇듯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사람일 때가 많다. 때때로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거나 그들의 무심한 말에 마음이 상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인지 작업을 하다 보면, 간혹 유물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이것이 인간관계 혹은 인생에서의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돌을 다듬고 제거하면서 만들어지는 석기와 흙을 반죽하여 빚으면서 만들어지는 토기는 재료를 다루는 데 있어서 상반된 제작공정을 따른다. 석기의 경우, 돌 조각이 떨어진 부분에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남으며, 일단 제거된 부분은 원 상태로 되돌릴 수 없지만, 돌 일부를 제거해야만 비로소 하나의 도구가 완성된다. 여기서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는 깨달음, 그리고 당장은 괴롭게 느껴지더라도 불필요하다면 쳐내고 버려야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된다는 역설을 어렵지 않게 연상할 수 있겠다. 반면 현장에서 대부분 깨진 상태로 발견되는 토기는 접합면이 꼭 맞는 조각을 찾아서 붙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며, 이렇게 복원된 토기는 더욱 특별한 주의를 요구한다. 한번 금이 가고 깨진 관계는 다시 원 상태로 복구하기 힘들며, 웬만한 노력으로도 어림없음을 깨달은 경험이 누구든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간혹 망쳐버릴 가능성과 덜 가공한 미완성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만들어진 빼어난 석기 혹은 무작위로 흩어졌던 조각들을 모두 맞춰 완전한 형태로 잘 복원한 토기를 만날 때면 유물 자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한편으로, 완벽해지기 위해 쓴소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산산 조각난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지, 이것이 가능하기는 할지 등등 해답이 잘 나오지 않는 현실적인 고민이 잠깐이나마 ‘눈으로라도’ 해소된 것만 같은 위안이 들곤 한다.
이렇게 유물의 복원 작업이 끝나면 실측도를 작성하고 사진을 찍고 각각의 형태적, 기술적 특징을 서술해야 한다. 2차원 평면에 3차원 물체에 대한 정보를 온전히 담아내기란 물리적, 기술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도면과 사진에서는 얼마간 정보의 누락을 감수하더라도 유물의 개성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을 선택해야 한다. 그 밖에 치수, 색상, 재질, 제작 기법 등 관찰 가능한 요소를 총망라해서 표로 정리하지만, 분리된 칸을 채워갈수록 동시에 그만큼 많은 정보를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도 커진다. 한정된 지면에 실린 나의 이력과 자기소개가 온전한 나를 모두 담아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수작업에서 컴퓨터 작업으로, 각종 고성능 기기가 동원된다고 해도 ‘정보의 불완전성’이라는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흔히 고고학의 이미지를 ‘유물과의 대화’로 표현하곤 한다. 나는 유물이 주는 메시지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면서 나의 상황을 유물에 투영하는 수준에 머무르기 때문에 아직 ‘대화’라고 부르기가 멋쩍다. 그럼 이제 다시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대화는 어떠해야 하겠냐고. 그 대상이 유물이든, 주변 사람이든. 어디서든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기자명 대학신문
- 입력 2014.09.21 04:52
- 수정 2014.09.2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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