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6세기의 피렌체에는 정치 세력 사이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공동의 가치는 붕괴됐고 개인들은 각자의 욕망대로 행동했다. 이에 사회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군주론』은 이런 냉혹한 현실에서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쓴 책이다. 그는 사회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군주 한 명에게 권력이 집중돼야 한다고 봤다. 이를 위해 군주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충만해야 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위해서라면 군주는 몰인정하고 잔인해도 무방다고 봤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우리나라는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다. 특히 세월호 대치정국으로 국회가 멈추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권력은 더욱 집중됐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사회 갈등 조정에 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돌연 세월호 사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밝혔다. 이는 야당이 이미 정치력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유가족들이 한 달 넘게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한 뒤였다. 여당은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는 청와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국민들은 추석에 고향에 모여서도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사회 갈등으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세월호 대치정국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인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쉽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난 16일 국무회의 발언은 모든 기대를 저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자는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결단을 하라고 한다. 그것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은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사실상 수사권·기소권 문제에 대한 여야 협상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 여야 2차 합의안이 “마지막 결단”이라며 추가협상 불가침 방침을 분명히 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은 순수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담아야 하고, 외부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외부 세력으로 의미한 것은 아마 수사권·기소권에 대해 유가족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인 만큼 박근혜 대통령과는 분명 뜻이 다른 사람일 것이다.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과 뜻이 다른 사람의 정치활동은 ‘불순’해졌다. 더욱 큰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외부 세력을 들먹이며 유가족의 가슴에 멍을 남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야말로 몰인정하고 잔인한 군주였다. 그렇다고 『군주론』에서처럼 몰인정과 잔인함을 통해 얻은 권력을 사회 갈등을 조정하는 데에 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이렇게 무능한데다 몰인정한 군주는 최악의 군주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군주는 자신의 행동양식을 확신할 뿐더러 자신의 기질이 확고하기 때문에 자신의 방식을 고수한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의 주요 고비마다 불통과 독선으로 일관하며 상황을 악화시킨 전례가 있다. 이번에는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은 절대 안된다며 선을 그어 놓은 상태다.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새누리당 중진 이재오 의원은 “출구를 열어주는 정치를 해야지, 출구를 있는 대로 탁탁 틀어막아 버리면 결국 그 책임은 정부·여당에 돌아간다”고 말했다. 야권과 유가족들은 강경파를 위주로 더욱 강하게 결속하고 있다. 출구 없는 세월호 대치정국은 16세기 피렌체를 연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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