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보장법, 첫걸음 뗐지만 장애계의 비판 쏟아져
장애인권리보장법, 첫걸음 뗐지만 장애계의 비판 쏟아져
  • 권순희 기자
  • 승인 2014.09.21 05: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론회] 장애등급제 전면 개정을 위한 토론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은 한목소리로 ̒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권리보장법)’의 제정을 약속했다. 이는 기존 장애인복지법이 장애인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자 장애계에서 대안으로 요구한 법안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당선 후 권리보장법 제정을 장애인 관련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으면서 정부 차원의 논의가 활기를 띠는 듯했다.

그러나 집권 2년 차인 지금도 박근혜 정부는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장총)은 지난해부터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권리보장법의 초안을 직접 마련했다. 그리고 이를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난 18일(목)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복지법 전면 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장총이 제시한 권리보장법은 장애인의 정의를 새롭게 하는 데서 출발한다. 장총 이문희 사무차장은 신체나 정신의 기능이 제한된 사람이 삶의 전 영역에서 경험하는 제약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장애인을 정의했다고 소개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신체나 정신의 손상이라는 의학적 관점에서 몇몇 장애유형에 해당하는 사람만을 장애인으로 정의해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복지서비스는 개인적 필요가 아니라 의학적 진단에 따라 부여되는 장애 등급만을 고려해 제공되고 있다. 이문희 사무차장은 “의료적 기준에 의한 장애등급재판정이 시행됨에 따라 많은 장애인의 등급이 하락해 각종 복지서비스 신청이 근본적으로 제한됐다”며 “세계보건기구(WHO)는 장애에 대한 관점을 생활환경에 대한 분석, 사회참여 제한 등을 반영한 사회적 관점으로 전환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기존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대통력 직속 상설기구인 장애인위원회로 격상시키는 조항도 마련됐다. 법안에 따르면 장애인위원회는 관계부처 간 의견을 통합적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는 국무총리 산하의 기존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우주형 교수(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는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는 1년에 한 두어 차례 열리는 데 그쳐 현실적으로 정책 간 연계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며 “장애인 정책을 통합, 조정하는 기능이 부재해 자원투입의 중복과 낭비가 발생하고 수요자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에 손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법안은 주거, 일자리 제공 등 장애인 복지서비스가 장애인의 권리임을 명문화했고, 복지서비스를 현금 형태로 지급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해 장애인의 선택권을 강화했다. 또 장애인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해 장애인 지원을 총괄하도록 했고, 장애인이 자립생활 훈련을 통해 지역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규정도 신설했다.

이날 토론자들은 권리보장법의 필요성에 대체로 동의했지만,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우선 장총이 마련한 법안이 장애등급제 규정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장애등급제는 이미 정부가 폐지하기로 한 정책임에도 법안에서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법안은 복지서비스의 수립부터 제공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여전히 장애인의 참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정책이 장애인 본인의 수요와 필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해도 정작 장애인에게 돌아가는 실질적 혜택은 크지 않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안타깝게도 법안의 기대 효과는 장애인 개인에 대한 복지서비스의 확대가 아니라 신설기관 설치비용이 대부분일 것이다”고 혹평했다.

권리보장법의 내용이 현행 장애인 관련법과 중복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진우 교수(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는 권리보장법의 방향성이 불분명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존의 차별금지법 등과 중복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원론적 수준에서 정책 추진의 기본방향을 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짚었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윤삼호 정책위원은 장애인 정책의 기본법은 장애인복지법을 대폭 손질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장애인의 권리는 차별금지법을 강화해 보장할 것을 주장했다. 윤삼호 정책위원은 “이원화가 단일한 권리보장법을 마련하는 것에 비해 법의 안정성, 효율성 측면에서 더 낫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토론을 마무리하며 앞으로 권리보장법에 대한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리보장법 제정 노력이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법안의 방향성과 철학을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승기 교수(성신여대 사회복지학과)는 “오늘이 구체적인 법안에 대한 첫 토론인 만큼 앞으로 치열하게 논의가 이뤄지면 완성된 법안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