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1세기 자본』번역본 출간 및 피케티 방한 토론회 개최

▲ 사진제공: 세계지식포럼

지난 12일(금)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교수(프랑스 파리경제대)의 『21세기 자본』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방대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실증적 탐구를 개진해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간결하게 제시한 『21세기 자본』은 학술적 설득력과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서 전세계에 피케티 광풍을 불러왔다. 세계 여러 나라의 30여 명에 달하는 공동 연구에 바탕을 둔 그의 통계는 최대 300여 년에 이르는 범위를 다루고 있어 시공간적으로 상당히 방대한 규모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700페이지를 넘는 책의 분량은 독자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저자의 신념에 따라 수식이 ‘거의’ 배제돼 인내심만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이것만 알면 돼요 'r>g'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케티가 배제하지 못했던 수식은 ‘r>g’라는 부등식이다. 여기에서 ‘r’은 자본수익률(return of capital)로, 이는 자본의 총액과 이로부터 얻는 이윤, 배당금, 이자, 임대료 등의 비율이다. 그리고 ‘g’는 경제성장률(growth rate)로 피케티에 의하면 인구의 증가와 기술의 발전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r>g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21세기 자본』의 내용은 거의 모두 이 부등식에서 시작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r>g가 성립하면 불평등이 심화되고, 나아가 그가 제시한 통계적 자료에 의하면 r>g는 역사적으로 ‘거의’ 항상 성립돼왔다. 이 두 가지가 『21세기 자본』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피케티는 책 전반에 걸쳐 이런 핵심 내용이 성립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실증적 자료를 제시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먼저 r>g가 성립할 때, 즉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을 때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웃돌 때, 자본을 많이 소유한 상위계층이 자본수익을 통해 빠른 속도로 부를 획득할 수 있는 데 반해 자본을 거의 갖지 못한 하위계층은 경제성장에만 의존해 느린 속도로 노동 소득 형태의 부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r>g가 거의 항상 성립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경향에 예외는 없을까? 이에 대한 피케티의 답은 이 부등식이 필연적이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실증된 바라는 것이다. 피케티는 g가 오랜 역사동안 낮은 수치를 유지했다는 통계를 제시해 부등식이 성립해온 과정을 밝힌다. 그의 통계에 따르면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 각국의 경제성장률은 제로에 가까웠는데 이는 눈에 띄는 기술의 발전도 없었을 뿐더러 인구의 증가도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산업혁명 이후에 이런 양상은 변화했지만 그럼에도 g는 1% 내외에 머물렀다. 이 1%는 몇십 년에 걸친 기간의 연평균수치인데 단기적으로는 이를 초월하더라도 기술의 혁신적 변화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인구가 증가하지 않는 한 결국 낮은 성장률로 수렴하기에 얻어진 것이다. 반면 자본수익률은 긴 기간 동안 약 5%로 유지됐는데 이는 그래프①에 잘 나타나있다.

▲ 그래프① 3세기동안 유지되는 r>g 경향
▲ 그래프② 20세기 중반 예외적 상태 및 그 이후의 불평등 경향성
그래프 출처: piketty.pse.ens.fr/capital21c

그런데 만약 r>g가 항상 성립돼왔다면 앞서 언급된 논리에 따라 모든 역사가 불평등이 심화되는 방향으로만 움직여 결국은 극소수의 상위계층이 모든 부를 가졌을텐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1세기 자본』에 실려 있는 그래프②를 보면 1940년과 1980년 사이의 기간 동안 미국의 소득불평등이 크게 완화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는 유럽의 각 국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는데 피케티는 이를 하나의 예외상황으로 치부한다. 예외상황을 만든 것은 1, 2차 세계대전과 그 사이에 있었던 대공황이다. 전쟁이 건물 등 수많은 자본을 물리적으로 파괴했을 뿐 아니라 대공황으로 인한 기업의 도산과 주가의 하락은 자본의 총량을 크게 줄였고 이에 따라 자본소득에의 의존이 큰 상위계층의 부를 축소시켰다.

더불어 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에 누진세가 도입돼 불평등을 줄이는 효과를 얻었고 전후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자본수익이 줄 수밖에 없었다. 또 지구상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가속된 경제성장은 자본수익률에 근접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의 분배는 크게 개선됐다.

불평등의 확대와 21세기 자본의 미래

그러나 그래프②에 따르면 1980년대부터 불평등은 다시 확대돼 1차 대전 이전 상황에 근접하고 있다. 이는 1980년대에 이르러 예외상황을 야기하던 요소들이 힘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십 년 동안 전쟁의 피해가 복구되면서 자본의 총량이 늘었고 누진세의 최고세율이 하락하면서 자본추구의 동기가 강화돼 자본소득을 증가시킨 것이다. 또 동시에 고속성장을 끝낸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제성장률이 둔화됨에 따라 r>g의 경향이 강화됐다. 인구의 증가세가 주춤거리면서 이는 더욱 심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자본수익률에 따라 자본총량도 늘어갔고 늘어난 자본은 더 큰 자본을 모아 불평등이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피케티는 이렇듯 1980년대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불평등이 확대되는 양상을 19세기의 그것과 같다고 본다. 이런 양상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그 결과를 예측하는 데 있어 유의해야 할 점은 앞서 언급한 바와는 달리 r>g의 양상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높은 자본수익률에 따라 자본의 총량이 크게 늘어난다면 자본의 가치, 즉 이자나 지대 등이 하락하게 되고 수익률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 경우 자본의 총량이 증가하는 양상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본은 무한하게 증가하진 않는다.
이에 r>g의 상황이 완화되며 불평등 상태는 ‘평형’ 상태로 수렴하는데, 이 평형이 주류경제학자들이 피케티에 반대하는 논리 중 하나다. 피케티는 이런 평형의 존재를 인정하나, 자신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자본이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그런 평형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한다. 그럼에도 그가 파악하는 문제점은 “언제 그런 평형에 도달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며 현재의 격차도 충분히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현재의 불평등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개입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가 주장하는 개입은 누진세의 강화 혹은 글로벌자본세의 도입이다. 상위 계층에 소득이 몰리는 것이 문제라면 이를 분산시키는 누진세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말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높은 세율의 누진세가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에 의해 형성된 것을 고려하면 낮아진 최고세율을 다시 높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자본의 총량이 점점 증가하는 걸 막기 위한 글로벌자본세의 도입도 직관적인 해결방법이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이들 제도로 손해를 보는 계층이 현실을 좌지우지하는 상위 계층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자본에 대한 논란

그런 이유에선지 몰라도 피케티의 학술적 성과는 크게 환영받거나 철저히 무시 되는 양면적 모습을 보인다. 『21세기 자본』 한국어판의 뒷부분에 실린 이정우 교수(경북대 경제통상학부)의 해제는 이런 점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해제에 따르면 폴 크루그먼과 같이 피케티를 극찬하는 경제학자가 있는 반면 이를 혹평하는 보수적 경제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그의 통계자료 자체를 문제 삼았던 『파이낸셜타임스』가 오히려 해석에 있어 오류를 범해 곤란에 처했다는 해제의 사례를 보면 그가 발굴한 통계의 가치는 믿을 만해 보인다.

다만 이를 해석하는 데 있어 r>g가 과연 불평등의 심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또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피케티가 제시한 것들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19일(금) 매일경제신문 주최 세계지식포럼의 사전행사로 열린 ‘대토론 1% vs 99%, 피케티와의 대화’에서도 각 패널들은 피케티의 자료 해석과 해결 방안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제시했다. 이 행사에 패널로 참가한 피케티는 자신의 학술성과를 간추려 설명하는 한편 자신에게 제기되는 여러 반론과 의문점에 성실히 답했다.

그 중 로렌스 코틀리코프 교수(미국 보스턴대 경제학과)는 r>g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근본 원인이라는 피케티 교수의 해석을 부정하며 “부의 불평등은 단순히 소득의 불평등에서 생긴다”고 반박했다. 즉 그는 r>g의 상황이 항상 분배의 평형 상태를 상회하고 있다는 입장을 토대로 현재의 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그는 “미국정부는 이미 세제혜택, 사회복지제도 등 이전소득을 활용한 재분배 제도를 갖고 있는데 이로써 불평등은 충분히 해소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피케티 교수는 “지난 30년 동안 하위 50%의 소득은 성장하지 않았다”며 r>g의 영향이 드러나는 부분은 소득 자체이므로 r>g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를 유추할 수 있다고 답했다.

다른 한편 피케티 교수의 불평등 해결방안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신관호 교수(고려대 경제학과)는 피케티 교수가 제시한 부유세가 투자에 대한 동기를 약화시켜 성장을 위축시킬 가능성을 제기했다. 피케티의 방안이 경제성장률인 g를 줄여 오히려 r과 g의 격차를 벌여놓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피케티 교수는 “누진적인 부유세가 자본 축적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다”라며 “누진세는 오히려 부의 이동을 돕는 것”이라고 답했다. 즉 하위계층에게 이전되는 부가 이전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경제에 활력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에 실물경제의 활성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이날 토론회에선 21세기 한국에도 피케티의 분석을 적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지난 5월 한국은행이 피케티의 이론이 적용될 수 있는 통계자료로서 ‘국민대차대조표’를 제공한 뒤 한국에 이를 적용하는 것에 대한 학술적 논쟁이 첨예하게 벌어진 바 있다. 신 교수는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면 한국과 같은 개도국은 자본수익률을 내리기보다는 경제성장률을 높여야 한다”며 그 방안으로 규제개혁을 제시했다. 조원동 교수(중앙대 석좌교수)도 이에 동의하며 “성장을 촉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피케티 교수는 “이미 많은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조차 높은 성장률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다”며 “이에 대비해 누진적 부유세를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그는 “금융규제 완화와 같은 정책은 실물경제의 활성화와는 거리가 있다”며 이를 경계했다. 그럼에도 그는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함을 인정하고 이를 위해 공적 교육에 대한 투자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유종일 교수(한국개발연구원)는 이에 덧붙여 “조세 재분배와 성장은 양립될 수 있다”며 “재분배를 통해 부의 이동성을 증진시켜 성장의 여력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피케티의 이론에 대한 의견이 상반됨에도 불구하고 그가 크게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2013년 프랑스어로 처음 출간된 『21세기 자본』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때는 이듬해 영어로 번역돼 미국에 출간됐을 때다. 금융위기로 인해 심화된 불평등을 겪고 있던 미국의 상황이 피케티 광풍을 불렀던 것이다. 이런 광풍은 한국어판의 출간과 함께 한국에도 불어 닥칠 가능성이 높다. 과연 미래는 피케티의 예상대로 흘러갈까? 만약 그렇다면 그의 방안이 한국에 적용될 수 있을지 여러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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