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이달의 과학자 상' 구본철 교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질문에 천문학자들은 생명을 이루는 원소들이 우주 어디에서 왔는지를 답할 것이다. 슈납스(CHONPS)로 묶이는 탄소(C), 수소(H), 산소(O), 질소(N), 인(P), 황(S)은 생명을 이루는 데 가장 필수적인 원소들이고, 그중 인은 DNA의 뼈대를 구성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다른 원소들에 비해 인은 우주에 존재하는 양이 적고 천문학적인 중요성도 상대적으로 덜해, 인의 생성 현장을 확인한 연구는 아직 없었다. 구본철 교수(물리천문학부)는 미국 토론토대 등과 진행한 연구에서 초신성 내부에 다량의 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인의 기원을 최초로 확인했다. 구 교수는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에서 시상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9월 수상자로 선정됐다.

▲ 그림① 태양 질량의 8배보다 무거운 별은 핵합성을 진행하며 위의 내부 구조를 이룬다. 중성자가 풍부한 네온연소껍질에서 중성자가 규소에 포획돼 인이 생성된다.

인은 질량이 큰 별의 내부에서 중성자 포획을 통해 생성된다는 것이 인의 기원을 설명하는 유력한 가설이다. 그림①에 나타난 것처럼 별의 내부는 각각 원소의 구성이 다른 층들로 이뤄져 있는데, 가설에 따르면 중성자가 풍부한 층에서 규소(Si)가 중성자를 포획해 인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은 별이 수명을 다하고 초신성이 돼 폭발할 때 우주 공간으로 퍼진다. 그는 300여 년전 폭발해 지금은 초신성 잔해로 남아있는 카시오페이아 A를 대상으로 연구했다. 그는 초신성 잔해에서 적외선 분광관측을 통해, 관측한 곳의 물질에서 철에 대한 인의 함량비를 측정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인이 생성될 것으로 예측했던 별 내부 영역에서 인의 함량비가 별 주위보다 100배까지 크게 나타나, 별의 내부에서 인이 합성된다는 가설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었다.

그가 연구에 사용한 적외선 분광관측이란 방법은 무엇일까? 천문학 연구에서 널리 사용되는 이 방법을 알기 위해 먼저 원자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주의 원자는 특정 환경에서 금지선(forbidden line)이라는 파동을 방출한다. 예를 들어 황은 30,000K의 온도에서 파동을 방출하는 반면 인은 10,000K의 온도에서 파장이 1.189㎛인 파동을 방출한다. 그러므로 파장이 1.189㎛인 파동이 관측됐다면 이는 인으로부터 방출된 것이고 그 파동의 세기는 인의 함량과 비례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인에서 나온 파동의 세기 자체보단 기준이 되는 다른 원소들에서 나온 파동의 세기를 비교해 구한 ‘함량비’, 즉 인이 다른 원소에 비해 얼마나 많은지가 중요하다. 단순히 초신성 잔해의 인에서 나온 파동을 관측한 연구는 있었지만 그의 연구는 파동의 세기를 정량화하고 분석해 인의 함량비를 구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원소의 함량비를 구하기 위해선 같은 장소의 원자들에서 나온 파동을 비교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원소들은 인과의 원자물리적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금지선을 방출해, 비교 대상으로 사용할 수 없다. 한편 인과 철은 비슷한 온도에서 금지선을 방출하는 등 원자물리적 특성이 비슷해, 파동을 방출하는 물리적 환경이 비슷하다. 동일한 시선 방향에 있고 물리적 환경도 비슷한 지점들은 위치도 비슷하기 때문에 동일한 시선 방향에서 관측된 인과 철을 나타내는 파동은 동일한 위치에서 기원했다고 예측할 수 있다. 두 파동의 세기 비는 인과 철의 함량비를 의미한다. 구 교수는 인에서 나온 파동의 세기를 철에서 나온 파동의 세기로 나눈 값 X(P/Fe)을 연구에 사용했고, 이 값이 클수록 철에 대한 인의 함량비가 크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철의 함량이 크게 변하지 않는 영역에서 철에 대한 인의 함량비는 곧 인의 함량과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X(P/Fe)는 파동의 세기로부터 인의 함량을 도출할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인 것이다.

적외선 분광관측을 통해 초신성 잔해의 특정 지점을 관찰하면, 그 지점의 물질의 이동속도 또한 알 수 있다. 그리고 물질의 속도를 통해 그 물질의 질량좌표를 계산할 수 있다. 별이 폭발하면 중심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날아가고 중심부가 초신성 잔해로 남는다. 초신성 잔해에서 어떤 물질의 질량좌표란 그 물질을 기준으로 내부에 위치하는 초신성 잔해의 질량을 전체 별 중심부의 질량으로 나눈 값을 의미한다. 이 과정을 통해 구 교수가 카시오페이아 A에서 얻은 자료는 그림②와 같다. 그림②의 가로축은 질량좌표를, 세로축은 그 지점에서의 X(P/Fe)를 나타낸다. 먼저 봐야 할 것은 그래프에 찍힌 점들로, 이들은 이번 연구를 통해 관측한 값을 나타낸다. 왼쪽과 오른쪽 점들의 비교를 통해 초신성 잔해의 외부보다 내부에서 인의 함량비가 최대 100배까지 크게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이로써 별 내부에 존재하는 인의 생성 현장을 확인한 것이다.

▲ 그림② 별의 중심부가 남아 만들어진 초신성 잔해에서 질량좌표에 따른 X(P/Fe)의 예측과 실제. 오른쪽에 위치할수록 초신성 잔해의 바깥 부분을 의미한다.
그래픽: 정세원 기자 pet112@snu.kr


게다가 이 연구는 별이 폭발할 때 내부 물질이 완전히 섞이지 않았음을 규명했다는 의의도 있다. 그래프의 선은 카시오페이아 A의 내부 위치에 따른 X(P/Fe)를 가설을 통해 예측한 것이다. 만약 별이 폭발하면서 내부 물질의 섞임이 없었다면 관측된 값은 선 근처에 표시될 것이고, 반대로 내부 물질이 완전히 섞였다면 별 전체 X(P/Fe)의 평균에 해당하는 A 범위에 관측된 값이 표시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관측된 값은 선 아래에, A 위에 걸쳐 분포하며, 이는 별이 폭발할 때 별 내부를 이루는 층들이 다소 섞였지만 완전히 섞이지 않았다는 근거다.

구 교수는 “이번 연구는 공동 연구자들 모두의 작품”이라며 공동 연구자들에게도 연구의 공을 돌렸다. 문대식 교수(미국 토론토대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과)가 팔로마산 천문대의 망원경으로 관측 자료를 얻었고, 구 교수의 지도학생 이용현 연구원(물리천문학부)이 자료들을 정량화했다. 또 윤성철 교수(물리천문학부)가 때맞춰 부임해 항성 진화에 대한 이론 자문을, 존 레이먼드 연구원(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연구소)이 원자물리, 충격파 물리에 대한 이론 자문을 해 줬다. 구 교수는 “어느 하나라도 없었으면 이번 연구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협업으로 연구가 이뤄진 점을 강조했다.

▲ 인(P)의 생성 과정을 처음으로 발견해 9월 '이달의 과학자 상'을 수상한 구본철 교수
사진: 김유정 기자 youjung@snu.kr

앞으로 구 교수는 두 방향으로 연구를 확장할 계획이다. 우선 초신성 잔해에서 인, 황, 철의 함량비를 구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앞서 기술했듯 인과 철은 원자물리적 구조가 비슷해 그들의 함량비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은 원자물리적 구조가 다르기에 황의 함량비를 구하는 데는 이번 연구에서 사용한 방법을 적용할 수 없고, 복잡한 계산과 보완된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폭발 당시의 물리적 상황을 좀 더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이러한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카시오페이아 A의 일부분에 대해서만 수행된 연구다. 연구의 대상을 카시오페이아 A 전체, 다른 초신성 잔해로 확장하는 것이 그의 두 번째 목표다. 그는 “극한의 천체물리 현상인 초신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