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퀴어영화 프로젝트「게이봉박두3: some」

퀴어(queer)는 본래 ‘기묘하다’를 뜻하는 형용사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의 의미에서 붙여졌던 이 단어가, 이제는 ‘유별난’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여기, 그들의 아지트인 종로에서 그들의 상징 일곱 빛깔 무지개만큼이나 각기 다른 색을 지닌 일곱 편의 퀴어영화가 모였다. 퀴어영화 프로젝트 「게이봉박두3: some」은 영화를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게이 감독들이 좌충우돌하며 만들어낸 그들만의 ‘기묘한’ 작품이다. 지난 13일(토)부터 27일까지 총 4회 걸쳐 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 등 다양한 장소에서 상영회가 열렸다.

▲ 상영관 입구에 「게이봉박두3: some」포스터가 붙어있다. 감독들은 영화를 통해 각양각색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영화가 시작하기 전, 관객들이 팜플렛을 보며 상영작 내용을 읽고 있다. 상영회가 시작되자 그들은 박수를 치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사진: 이혜빈 기자 beliveyourse@snu.kr

◇‘나’의 진솔한 이야기를 하기까지=‘게이봉박두’ 프로젝트는 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에서 주최하는 단편영화제작 워크숍으로, 벌써 3년째 퀴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행사다. 7명의 게이감독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이 프로젝트에 모였다. 공도연 감독처럼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라는 거창한 계기를 가진 사람도 있었고, 박성언 감독처럼 ‘자기 영화에 배우로 출연할 목적으로’ 참여한 사람도 있었다. 공통점은 7명 모두 영화를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초짜’들이었다는 것이다.


아마추어 감독들이 가진 그들만의 강점은 바로 ‘진솔한 이야기’.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한두 달의 시간 동안 총력을 기울였다. 7명의 감독들은 서로의 주제를 돌려보며 조언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프로젝트를 3년째 진행하고 있는 최영준 영화강사는 “동질감 때문인지, 서로에게 해줄 말이 많아 수업이 늦게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며 “같은 형식의 강의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했을 때는 이 정도로 열정적이지 않았다”고 당시의 열띤 분위기를 회상했다.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서울영상미디어센터에서 장비를 지원해줬지만, 그 밖의 촬영비는 각자가 충당해야 했다.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본업과 병행하며 영화를 준비했다. 촬영 및 편집은 물론이고 캐스팅과 상영까지 전부 그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강우 감독은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에 가까이 접해보고자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힘들었다”며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어디까지인지 보자는 마음가짐으로 프로젝트에 임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담다=이번 ‘게이봉박두’ 프로젝트에선 공도연 감독의 「GREEN LIGHT」, 김게이 감독의 「터키하늘」, 박상언 감독의 「여름밤」, 나건녕 감독의 「끝말잇기」, 강우 감독의 「아도니스 꽃도령 점술방」, 이승준 감독의 「some」, 그리고 한호승 감독의 「아! 개운해」 총 7편이 연속 상영됐다. ‘게이’가 가진 특징을 영화의 매력으로 적극 승화시키면서도, 성소수자라서 할 수 있는 고민의 흔적도 잃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그들의 모습이 반영돼서인지 영화 속 인물들에게선 하나같이 생명력이 느껴졌다.


영화 「아도니스 꽃도령 점술방」 속 청년들은 발칙하다. 그들은 게이 같은 차림을 하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끼’를 부린다. 잘생긴 남자 앞에서 벌이는 티격태격한 신경전조차 관객의 눈엔 그저 귀엽기만 하다. 이 작품은 아도니스라는 잘생긴 점술사와, 그의 방에 찾아오는 게이 손님들을 통해 빠르고 손쉬운 요즘 세상 속 간직함의 의미를 소프트 코미디로 풀어냈다. “퀴어물엔 무거운 소재를 다룬 작품이 많은 만큼 오히려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강우 감독의 목적이 성공한 탓일까. 게이에 대한 해학적인 묘사에서 관객들은 박장대소를 터뜨리며 뜨겁게 호응했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 주저없는 「아도니스 꽃도령 점술방」의 청년들과는 달리, 「터키하늘」 속 남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간다. 위장결혼을 한 상민과, 그의 옛 연인이었던 현상은 2년 만에 허름한 맥주집에서 만나 술 한 잔을 기울인다. 제목의 ̒터키하늘̓은 그들이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 향하고 싶은 막연한 이상향이다. 그들이 이상향으로 상정한 터키도 한국처럼 동성애가 금기시되는 국가기에, 이 제목은 아이러니하다. 김게이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 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다”고 영화의 의도를 전했다. ‘살이 좀 쪘네’, ‘우리 얼마만이지?’라는 형식적인 안부의 말보다 그들이 피는 담배연기가 그들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영화 속 그들이 피운 담배와 ‘터키하늘향’ 향초가 관객석까지 영화의 쓸쓸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한 개의 고정된 상이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이해돼야=대중매체 속 게이는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이라고 7명의 감독은 지적한다. 대부분의 콘텐츠가 게이라서 힘들다고 응석부리거나, 잘생긴 꽃미남들이 등장해 게이에 대한 판타지만 불러일으키는 정도에서 머무르고 있다. 이는 실제 게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온전히 비추지 못하며, 오히려 그들에 대한 편견만 심화시킬 뿐이다.


‘게이봉박두’ 프로젝트는 이에 대한 반발심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영준 영화강사는 “천편일률적인 게이의 모습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고 프로젝트를 마친 소감을 말했다. 실제 「게이봉박두: some」에는 예쁜 게이, 못난 게이, 순진한 게이, 찌질한 게이 등 현실 속에서 볼 수 있는 가지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바로 이 ‘다양한 스펙트럼’이야 말로 이 프로젝트가 가진 무기가 아닐까?


김게이 감독은 자신의 가명을 짓게 된 이유에 대해 “‘나’의 정체성 중 제일 크게 차지하는 것이 바로 성 정체성”이라며 “내 자신이 게이라고 말하는 것이 내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퀴어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회에 스며드는 그날까지, 그들의 축제는 매년 계속될 예정이다. 내년에도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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