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지 교수
노어노문학과

일전에 학회 때문에 미국 시애틀에 있는 한 대학을 다녀왔다. 여러 아름다운 캠퍼스를 많이 가 봤지만 이 대학을 걸으면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건물보다 크고 오래된 나무들의 위용과 옛 건물들의 풍취가 시골 귀족처녀의 모습을 연상할 정도로 겸손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그 자연스러움이 놀라왔다. 물론 드물게 새 건물도 있었지만 어색함 없이 녹아들었고 곳곳에 눈에 안 띄는 작은 산책길들이 많았다.

이와 비교하자면 내가 유학했던 대학 캠퍼스는 종종 영화촬영 장소이자 외국관광객들이 붐비는 곳답게 세련된 도회 처녀같이 인공적이고 상업화된 느낌이 더 많다고 하겠다. 하지만 작년 그 대학을 오랜만에 가서 보니 지진 후 오랜 기간 리모델링한 건물들의 내부는 완전히 바뀌어 새 구조였지만 외관은 전혀 바뀐 티가 나지 않았다. 유학 초기 살았던 기숙사도 새로 지어졌지만 예전과 비슷한 높이와 스타일이라 언뜻 보아 예전 모습과의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었다. 물론 이같은 건물과 자연의 조화와 일체감은 유럽의 다른 유서깊은 대학들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늘 궁금한 점은 국제화 콤플렉스를 지닌 한국 대학들(서울대를 포함한)이 왜 캠퍼스 경관 조성에서는 글로벌 기준에서 한참 멀어져 있느냐는 점이다. 내가 아는 한 ‘랭킹’ 높은 어떤 세계적 수준의 대학도 교육과 연구에 방해될 정도로 신축, 재건축 공사를 지속적으로 하는 곳은 없었고 신축 건물, 재건축 건물마다 주변 건물과 스타일이나 높이가 달라 튀는 경우도 거의 보지 못했다. 전통있는 대학일수록 내부는 편리하게 현대식으로 바꾸지만 외관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려고 한다.

물론 서울대 캠퍼스가 처음부터 건물이 아름다웠다면 우리도 보존과 내부 리모델링에만 신경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캠퍼스는 산, 그것도 서울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산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과분하게 특혜 받은 입지조건이다. 이럴 경우 최대한 자연의 결을 살려 건물은 최소한으로 짓고, 짓더라도 낮게 지어야 할 것이라는 상식을 뒤엎은 채 이제는 학교를 들어서는 순간부터 하늘과 빈 공간이 보이지 않음에 가슴이 꽉 막힌다.

또 건물 내부는 옆 건물이 더 높아지는 바람에 점점 어두워지고 바람도 안 통해 쾌적한 수업과 연구공간이 되기 힘들어졌다. 하루, 일주일의 상당 시간을 보내야 하는 연구실과 강의실 창문에서 하늘과 산을 바라보고 햇빛과 바람을 느꼈으면 하는 것이 대단한 욕심일까.

지식은 책에서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지혜는 자연의 겸손과 순리에서도 터득해야 하는 것임을 아는데 우리는 뭘 위해 끊임없이 지치지도 않고 부수고 짓고 하면서 하늘을 가리고 나무를 없애려 하는가. 때때로 컴퓨터를 끄고 책을 덮고 무거운 머리와 가슴을 식히려 캠퍼스를 천천히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해도 건축 소음 없이 조용한 건축 안식년이 없었던 이 대학 캠퍼스는 이번 학기도 역시 풍광 좋은 아름다운 가을날에 연구실과 강의실 창문을 계속 열어두기 힘들다.

건축은 한 나라의 도시뿐 아니라 대학의 격도 암시한다. 더욱이 학교 건축물은 학생들의 정서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건물의 기능과 효과만을 고려해서는 안될 것이다. 임기가 정해진 공직자들이 대표적 거리와 구시가지를 마음대로 자기 집 앞마당 바꾸듯 고쳐 무척 심란한 곳으로 만들어버렸듯 이 캠퍼스도 유한의 임기 동안만 책임과 권한을 지닌 분들이 무한히 오래 남을 캠퍼스 경관에 대해 최소한의 의견 수렴 없이 경솔한 결정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정에서 감내해야 하는 소음과 어수선함으로 인한 피해는 물론이고(최근 큰 트럭이 제법 속도를 내어 학생들이 다니는 길로 운행되는 것을 보면 아찔하다) 그 결과물은 이 대학 구성원 모두의 품격, 나아가 한국 대학 품격을 그대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캠퍼스 구석의 작은 나무들 하나하나에도 그 나무가 기억하는 이 장소의 역사와 사람과 사연이 나이테만큼 새겨져 있음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이곳의 주인공이 지금의 우리라는 생각이 대단히 위험한 착각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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